제주의 기후 - 대지 주변의 형태는 평평하고 단단하다. 오랫동안 남태평양에서 불어온 거친 바닷바람은 이곳 대지의 형상을 다듬어 왔고 그에 따라 주변 자연의 형태는 단순하고 탄탄하게 다져져 이어왔다. 제주의 풍경은 지역에 따라 공통점도 있지만 그곳만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이곳 대지가 위치한 판포리는 제주도에서도 풍력발전기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그만큼 바람이 강한 곳이다. 이곳의 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방식으로 몇 가지 출발점을 가지고 시작한다. 한가지는 대지 경계에 바람에 대응하기 위해 다공성 돌담을 계획하였고 또한 대지의 레벨을 주변 대지 보다 낮추어 바람과 싸우지 않는다. 두 번째는 남쪽으로는 넉넉한 빛을 받을 큰 창이 있고, 서 측으로 2m 이상 길이의 캐노피를 각층에 두어 빛과 싸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건물의 동쪽과 북쪽으로는 도로와 접하는 쪽에 채광과 환기에 도움이 될 벽을 세움으로 어둠과 습기와 싸우지 않는다. 이는 이곳 제주의 특징이기도 한 기후를 관찰하고 그에 따라 디자인에 반영하였다.
감각의 층위 - 도심지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각들을 우리는 이곳에서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시각 중심의 관점에 갇혀 우리가 느꼈던 여러 감각은 서서히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로에서 입구를 거쳐 점점 내려가는 좁고 긴 공간은 마치 악기와 같다. 딱딱한 매질에 의해 소리가 증폭되고 자연과 재료가 만나며 다양한 표현으로 다가선다. 또한 하나의 재료는 100가지 이상의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재료들끼리 상호작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양한 검은색으로 마감된 각기 다른 재료(콘크리트, 현무암, 금속)들은 시각적 우위를 차단하고 물성을 드러내는 출발점이 된다. 단단한 재료들 사이로 작고 긴 물길은 낙차에 따라 각 위치에서 소리가 달라지고 그 소리는 입구로 우리를 안내해 준다. 부드러운 콘크리트 질감과 현무암 돌담의 질감은 비슷한 듯 다르다. 그 두 재료를 연결해주는 것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넝쿨 식물들이다. 남측 벽을 타고 들어오는 빛은 이 식물들에는 유일한 온기이다. 입구에 다다르면 제주 삼나무로 만든 큰 도어가 따스함을 더해준다. 이 삼나무 사이로 통과하는 바람의 소리가 이곳의 성격을 말해준다. 내부 마당은 딱딱한 바닥 위로 햇볕이 드리운다. 그리고 방 안쪽으로는 수공간에 반사된 일렁이는 형태가 고요함을 깨운다. 마당의 바람은 낮게 앉혀진 마당과 담장으로 들어오고 서 측 수목들은 빛과 바람을 동시에 막아준다.
관계의 설정 - 주변 대지는 평평하고 아직 집들이 많이 들어서지 않았다. 주변 대지에 집들이 생기는 것을 예상하고 각 면에 대응하는 방식을 달리 설계 하였다. 도로 쪽과 북측 집 쪽의 마당을 고려해 시각적 차폐로 입면이 구성되었고 나머지 두 면은 우리 마당에 의해 거리가 확보되어 많은 창과 오픈 공간을 배치하여 상반된 관계를 설정하였다. 남측으로 열린 공간은 앞집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높은 벽을 설치하였고 낮은 빛이 들어오는 서 측은 수목들로 공간을 느슨하게 열어두면서 서로의 관계를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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