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개인적인 업역의 변화: 일본이라는 거울






박창현
공동주택에서의 공용공간의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며 이웃에 대한 고민과 건축에서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다. 경기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17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국내외 건축가 70여 명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다양한 작업을 펼쳐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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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전문가가 부재한 40-50년 전만 하더라도 건축가는 광범위한 업무 범위를 망라했다. 질은 두 번째 문제였다. 성장의 시대는 곧  양의 시기였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양성할 교육도 부족해 건축가가 도시계획부터 건축, 조경, 구조설계는 물론 인테리어와 가구까지 디자인하는 것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일이 되었다.  경제 성장과 맞물린 사회의 전문화는 더 전문적인 설계를 요구했고 이전에 알고 있던 마스터 개념의 건축가의 상은 점점 흐려지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 협업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와 맞물려 건축가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그러나 분명 한국보다 먼저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업역이바뀌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일본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가 궁금해졌다. 나의 이전 세대가 일본 건축에서 메타볼리즘이나 노출 콘크리트를 보았다면 나는 건축의 업역 자체가 궁금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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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건축가에 대한 인식은 1980년대 버블 시대를 정점으로 몇몇 변곡점들을 겪었다. 1980년대 버블 붕괴와 함께 이전에 형성되어 온 건축가라는 이미지와 역할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이후 1995년 한신 대지진이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큰 자연재해가 일어나면서 또 한번 건축가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일본이 문화적, 경제적으로 확장 일로를 걷던 버블 시기에 건축 역시 비슷한 궤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전 모더니즘 건축에서 나타난 디자인의 합리성이나 효율성과 구분 짓기 위한 시도가 도처에 서 일었다. 일본의 건축가들은 기회를 잡기 위해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형태적으로 더 많이 튀고, 정제되지 않은 맥시멈의 이미지를 양산하는 데 몰두했다. 앞다투어 누가 더 기발한지, 누가 더 과격한지를 경쟁했다. 일본 국내 건축가뿐 아니라 해외 건축가들까지 합세해 과잉의 시대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환경에 매몰되어 그 누구도 상황을 인지하지도 못했고 자제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힘을 얻기 어려웠다.
건축평론가로 활약한 마츠바가츠키요(松葉一淸, 1953- )는 포스트모던과 건축에 대해서 “버블의 풍요로운 자금이 다양한 디자인의 모험을 가능하게 했고 도시를 활성화하는 시도가 전 세계적으로 계획되었다”라고 말했다. 건축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지목되면서 자금이 대거 유입되었다. 그것이 포스트모던 건축의 번성을 뒷받침했다. 고로 포스트모던 건축의 붐은 버블 경제의 종말과 동조하듯 그 끝을 맞이한다.{1}[1]
하지만 그런 시대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버블이 꺼지면서 부동산 불패 신화가 무너지고, 건축과 관련된 일들이 줄어들었다. 한편으로 버블 때 만들어졌던 건축가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잠정적 클라이언트가 될 일반인들은 건축가에게 일을 의뢰하기 망설였다. 버블 시대에 저질러 놓은 결과물들로 인해 건축가들은 ‘이상하고 괴상한 형태로 건물을 짓는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덮어 씌워진 것이다. 이런 시기가 지속되면서 건축가들의 일은 점점 줄었고 건축가 내부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그런 가운데 건축계 내에 영향을 미친 몇몇 글이 나오게 되었다. 이런 글 중 선구적인 것이 버블이 부풀어가던 시기에 구축이라는 문제의식을 통해 해체를 고찰하도록 한 아라타이소자키(磯崎新,1931-2022)의 『건축의 해체』(建築の解体, 1975){2}[2]다.

(도판) 아라타이소자키, 『건축의 해체』 (1975)

『건축의 해체』는 1960-70년대 일본 사회와 건축계에 만연한 모더니즘 건축의 이상주의와 규범성을 비판하고 건축가라는 존재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 책은 경제적 재건과 근대화에 주력하며 대규모 개발과 도시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에 발표되었다. 동시에 전후 복구와 근대적 이상을 기초한 모더니즘 건축의 역할이 한계를 드러내는 시기이기도 했다. 특히 메타볼리즘과 같은 일본 현대건축 운동이 과도한 기술 낙관주의로 비판받고, 사회적 불신과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소자키는 건축가의 고정된 역할과 이상을 모두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소자키는 이 책에서 건축가가 절대적 권위를 가진 위치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자신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건축을 독립적인 예술로 보지 않고 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사회적 구조와 연결된 실천으로 보고 건축가의 역할이나 위치도 그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은 버블 시대를 건축가의 위기로 자각한 글로 건축가의 역할과 건축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재고 할 기회가 되었다.  두 번째 영향을 미친 글은 1997년 12월 『현대건축선언문집, 1960-2020』에 게재된 건축사무소 미칸쿠미의소가베마사시(曾我部昌史,1962-) 외 3인이 쓴 「비작가성의 시대에」라는 글이다.

공동으로 설계를 하는 동안, 점차 다섯 명에게 공통되는 어떤 지향성이 분명해졌다. 한마디로 말해서 보통 감각으로 주택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다. 주택을 설계하면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제안을 한다던가, 개성적인 형태를 도입하는 등의 독특성(uniqueness)이 없으면 건축가로서의 존재의식이 없다는 식의 사고는 우리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독특성이 과격해졌을 때 나타나는 기이한(eccentric) 작가성에 위화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주택에 작가성이 나타나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하고, 사전에 탈색된 작품을 만들려고 고민한다. 작가성, 즉 건축가로서의 과잉 표현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미칸구미의 공통된 지향성이고, 이는 보통 감각으로 만든다는 것을 말한다. 보통 감각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취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매개변수(parameter)의 풍부화’이다. 범위를 압축시킨 조건을 예리한 개념으로, 마치 날이 잘 드는 칼로 단번에 두 동강 내듯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명쾌한 건축을 낳는다. 전후 주택 건축사를 돌아보면 그러한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 기라성 같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복잡함이 늘어난 현대사회에서 그런 단순 명쾌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취해야 할 길은 복잡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매사를 판단해 가는 것이다. 매개변수를 풍부화 하는 것은 복잡한 시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 시대에 어울리는 설계 방법을 모색하는 것과 연결된다. {3}[3]

(도판) 이가라시 타로 + 키쿠치타츠야, 『현대건축선언문집』 (1997)

이 글은 건축가의 ‘비 작가성’(non-authoriality) 개념을 제시하면서 이전 건축이 보여준 과잉 표현의 억제와 매개변수의 풍부화를 이야기하면서, 개인의 자아를 표출하기보다는 건축가의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전에 비판 받아오던 건축가의 영웅적이고 권위적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실용적이고 다양한 접근으로 설계를 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전에 ‘건축가’라고 하는 아비투스를 유지하거나 확장하는 것이 아닌 사람과 현장에 귀 기울이며 설계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갔다. 사상적인 전환과 맞물려 대형 자연재해에 대하는 태도의 변화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1995년 한신 대지진 때 이토 토요(伊東豊雄,1941-)는 건축가로서 일종의 죄책감을 토로했고, 쿠마켄고(隈研吾,1954-)는 “종래의 의미의 건축가는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건축가들이 실향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를 설계한다든지, 삶의 기반과 사람들의 관계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카페나 여러 프로그램을 건축가들이 기획하고, 실제로 제작해 함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고 치유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이다. 빨리 간단하게 직접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식이 재난 상황에 적합했고, 그런 결과물을 위해 건축가들이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직접 만들고 시민들과 대화하면서 함께 극복해 나가는 역할까지 한 것이다. 이런 역할은 아마도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기술일 것이다. 재난에 맞서 건축가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 나가면서 현장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해 나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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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전에는 없던 건축가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접근들이 생기게 되는데 타니지리 마코토(谷尻誠, 1974-)가 있다. 타니지리는 건축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분야, 예를 들면 옷과 음식점, 도서관과 여관 등과 같이 서로 다른 기능이 연결되어 새로운 역할을 하는 고정관념을 깨는 기획을 한다. 클라이언트로부터 의뢰받은 일반적인 기능을 소화해 내는 것을 벗어나 좀 더 깊숙히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건축적 접근 이전에 이 위치에 어떤 용도의 건물이 좋은지, 또는 새로운 콘셉트의 조합에 의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설계가 진행된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막연하게 주거, 또는 근린생활시설이 아닌 건축가의 구체적인 제안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건축가가 제안하는 감각은 현재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이나 변화에 대해 주도할 수 있는 안목과 관심이 있어야 하지만 건축가의 업역에 기획이라는 적극적 참여는 좀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눈여겨 볼 또 한 명의 건축가가 있는데 야마자키 료(山崎亮,1973-)다. 2019년의 경우 1급 건축사가 약 37만 명, 2급 건축사는 77만 명으로 합치면 100만 명 이상의 많은 인원{4}[4]이 유지되는데, 료는 일거리가 줄어드는 일본의 사회적 변화에 따라 건축가의 업역에 변화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90년대 이후 인구가 줄고 지방 소멸의 시기로 접어들며 일이 줄어 들고 있다. 지방은 사람이 없고 빈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다양한 사회문제가 생기면서 지방에서는 사람을 끌어 들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지자체와 건축가가 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료는 건축가이자 커뮤니티 디자이너로 ‘짓지 않는 건축’을 실천하며 건축가의 역할과 새로운 업역을 개척하고 있다. 료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디자인에 집중한다. 그는 건축과 조경 설계 경험을 살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고 실행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지역 재생 마을 만들기를 위해 워크숍을 열거나 지역 재생에 대한 강연을 통해 지역 사회의 활성화를 꾀하기도 한다. 이런 활동들은 전통적인 건축가의 역할을 확장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건축가가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삶과 커뮤니티를 디자인하는 역할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전에 바바마사타카(馬場正尊, 1968-)나 시마다 요헤이(嶋田洋平, 1976-)를 인터뷰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이전과 달리 직접 할 수 있는 일로부터 시작하자는 의식이 생겼다는 것이다. 민간이나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유휴지를 조사해 중계(연결)해주는 일을 한다든지, 사업적으로 오래된 공동주택을 직접 임대해 세입자와 함께 인테리어를 해 나가는 기획 및 시공까지도 리노베이션의 과정에 포함하는 예를 보아도 건축가의 일은 점점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의 인구는 2007년을 기준으로 해서 이전까지는 증가했고, 이후부터는 감소할 뿐만 아니라 고령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도 같은 상황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안에서는 기존의 건물들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의 물량까지 더해지면서 빈집들이 점차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중 도쿄나 후쿠오카와 같은 도시들은 아직은 인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도시는 굉장한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빈집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태껏 건축가들은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을 우선적으로 본업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무분별하게 새로운 건물을 지어도 괜찮은가’ 같은 생각을 하는 건축가 세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즉 현재의 일본에서는 감소하는 인구, 쇠퇴하는 지방도시, 줄어드는 세금 등과 같은 사회적으로 쇠퇴하는 상황 속에서 올바른 건축의 모습이나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공공공간에 흥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방치되고 있는 집합주택이나 대규모 단지 또는 폐교되는 초등학교가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낮은 출산율이 원인이 되면서 초등학교가 비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현상으로는 시청 등과 같은 행정 건물들도 공실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서관 같은 경우를 들여다보면, 시설들이 상당히 노후화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곳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한 도서관이 있는 그 지역에서는 행정적으로 처리할 비용이 없기 때문에 투자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죠. 즉,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서 관리 비용을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공공공간이 남아돌고 있는데도 말이죠. 저는 이런 사회적인 문제들과 함께 공공공간들을 재생할 수 있는 제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종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 바바마사타카와의 인터뷰, 2015년

사진1,2 / 시마다 요헤이는 오래되어 공실이 장기화되고 있는 도심 맨션을 임대해 입주자와 함께 인테리어를 맡아 프로젝트를 직접 공사까지 진행한다.

최근 일본도 신축 건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인구가 줄어들고 빈 집이 늘어나는 와중에 새로운 집을 더 지을 필요가 있는가 라는 문제 의식도 늘고 있다.

일본 주택의 착공 건수는 제가 대학에 들어온 1995년 당시 연간 160만 건 이상이었는데, 이것을 미국과 유럽에 비교하면 10배 정도로 많은 주택을 지은 것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80만 건인데 제가 대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해서 건축가가 돼야지 하고 생각했던 때로부터 일이 반으로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렇지만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80만 건의 주택을 만들고 있는 것이 지금 일본의 현상입니다. 짓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도 말이지요. 당연히 빈집은 점점 더 늘어나서, 아마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는데, 일본은 지금 820만 호의 빈집이 있습니다. 전국으로 말하면, 일본 전국의 13.5%입니다. 일본의 빈집들이요. 이대로 계속 새로운 집을 만들어 간다면, 20년 후 정도에는 빈집의 비율이 40% 정도 된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 시마다 요헤이와의 인터뷰, 2015년

과거에는 새로운 건물을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지어왔기 때문에 설계를 한다고만 하면 건축가의 일이 계속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현재는 전국적으로 거의 신축이 없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자기 자신의 업역을 잘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저는 어쩌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재미 있고 질 좋은 공간들이 많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아졌으니까요. 공무원은 좀처럼 재미 있는 시나리오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건축가에게는 한 집에 어떻게 하면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등과 같은 풍경의 구상력 또는 풍경의 상상력이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보다는 건축가들이 그리는 미래가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 바바마사타카와의 인터뷰, 2015년

게다가 금리 0 퍼센트의 시대도 끝나자 이자를 내면서 내 집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회의감이나 반감도 일었다. 공공분야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1990-2010년대까지 이어진 문화회관, 미술관, 박물관, 관공서 건립 열풍도 이제는 무너져 가고 있어 더욱 신축 일이 사라져 버렸다.

국가가 제시한 시뮬레이션인데, 사회자본 투자액이라는 것은 일본의 건물, 도로, 교량, 터널, 공원 등 사회적 인프라에 들인 전 금액을 말하는 것입니다. 1995년의 버블 경제 당시에는 일본 전역에 19조 엔 정도의 투자액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데, 국토 교통성이라는 일본 정부 기관이 2010년부터는 새롭게 지을 건물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만들어 온 건물들의 유지 보수 비용을 8조 엔 정도로 처리해야 하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본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2035년부터는 유지할 수 없는 인프라가 생겨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인구가 줄어들고 세금도 줄어들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들어온 인프라 중에 유지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지방의 도로나 터널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 다리들은 그대로 방치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새로운 건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로서 업무를 생각해 보았을 때 지금까지의 건축가들은 새로운 건물을 만드는 것이 주요한 업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주요 업무라고 생각하면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보면 이것은 주택에 해당하지만 6,000만 호 정도가 지어져 있습니다. 이것들이 매년 80만 호의 페이스로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지어진 건물들을 잘 활용하는 업무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건물을 세워 나가는 시대에서 사용되지 않는 건물들을 어떻게 활용해 나갈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 시마다 요헤이와의 인터뷰, 2015년

최근에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가가 직접 할 수 있는 일과 시공 가능한 결과물을 무기로 다양하게 업역이 넓어지고 있다. 오사카에서 일하고 있는 건축가인 키시가미 준코(岸上純子, 1979-)는 오래된 자신의 집을 인부를 쓰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직접 고치고 그 과정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자신이 살면서 필요로 했던 내용을 어떻게 설계했고, 제작(시공)하는지를 매일매일 올리며 공유한다.
(사진) 오사카의 오래된 시장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소이자 집이 너무 낡아 새롭게 고치는 프로젝트를 목수, 전기업자, 설비업자와 함께 자신이 직접 철거 및 시공까지 해내고 있다.

조금 거칠어도 나만의 기능과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리노베이션으로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어. 어렵지 않아. 원하면 내가 도와 줄께. 함께 만들어봐’라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일본에서 최근 인기 있는 건축 DIY 가능한 제품이나 소품을 파는 ‘toolbox’의 매출은 몇 배나 올랐다고 한다. 그만큼 공사비 상승과 어려운 시기를 대중들과 가까워지고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분위기는 위기를 타개하고 전복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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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는 그 바닥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미증유의 팬데믹, 세계 곳곳의 전쟁, 민주주의의 종말과 극우의 부상. 게다가 기후 위기와 지구 종말 시계는 우리를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최근 불거진 정치적 불안정이나 위협들은 삶의 안정성으로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가 가중되는 것이 현재 한국의 상황이다.
민간의 소규모 프로젝트는 거의 사라지고 대형 프로젝트는 해외 스타 건축가들이 휩쓸어 가는 것을 한국 건축가들은 자조하며 받아들일 뿐이다.
앞서 봤던 일본의 상황을 비춰 보면 이런 절망적 상황은 어쩌면 한때가 아니라 굳어지는 우리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의 미래의 삶마저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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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 변화의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불안정(예측 불가능)하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 우리는 어떤 생각과 활동들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오고 있는 일들은 이전 일의 범위에서 점점 변화되고 있다. 좀 더 유연하고 확장성을 가질 방법은 없을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하게 되었다.
앞에서 기술한 내용 같이 일본이 처한 환경의 변화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일본의 흐름은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흐름과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속에서 고민하고 업역과 건축가의 역할을 고민해 왔던 내용들은 일부 한국의 근미래에 닥치게 될 거울과 같다.
일본에서 건축의 업역의 확장 이유를 보면 한국의 건축 업역 범위에 대해 단순히 설계 자체로만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은 그 자체가 포괄적 양태를 띠어야 하며 그 범위는 확장할 개연성을 열어두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파악하고 흐름을 인지해야 한다. 필요한 결과를 얻기 위해 설계와 분리해 별도의 파장되는 일을 만들게 되었는데 스터케스틱(stochastic){5}[5]한 방식으로 시작되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파장되는 일들은 먼저 경험한 일본을 통해 일에 대한 가치와 생각의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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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을 시작하면서 시간이 생겨 그 이전에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설계 외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 이전부터 알고 있던 후지무라 류지(藤村龍至, 1976-)가 『1995년이후』라는 책을 출판해 보내왔다. 일본 건축가를 포함해 조경, 구조, 비평을 하는 다양한 업계 종사자들을 인터뷰 한 책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일본의 1971년 이후 세대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흥미롭게 느꼈고 한국에서도 건축가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인터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볍게 주변 친구들로부터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질문하는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할 수 있을 만한 건축가들의 리스트(4.3그룹 이후 60년대생부터 80년대생)를 100명 정도 리서치했다. 인터뷰는 서울에서 시작해 부산, 대구 건축가들을 찾아가며 3년에 걸쳐 진행했다. 한국 건축가들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당장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는 나의 생각과 다른 답을 한다고 해도 서로가 공유하고 각자 고민해야 할 질문들을 자기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리고 난 이후 해외 건축가들(일본, 프랑스,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대만)의 인터뷰로 연결되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가 가진 좁은 시야의 한계와 확장 가능한 시장성에 대한 기회도 느껴졌고,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생기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도판) 에이라운드건축 홈페이지. 그동안 진행했던 일부 인터뷰가 아카이빙 되어 있다.

일본은 건축 시장도 크고 건축가도 많다 보니 다양한 건축 행사들이 많다. 그중 소규모 집담회나 세미나 또는 포럼 등이 자주 열리는데 이런 행사들은 보통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성을 가지고 진행된다. 행사에 건축가들이 모이면 다양한 세대나 연령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주제를 가지고 발제 한 내용에 대해 긴 시간동안 발전시켜 나가는데 이런 문화가 부럽기도 했다. 시장의 규모는 일본에 비해 작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다양한 건축 문화가 지속성을 가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2023년부터 박선영 소장님과 함께 <언형세미나>를 기획하게 되었다. 팬데믹 시기 동안 단절되었던 오프라인의 건축 세미나를 다시 열어 화자와 청중간의 대화가 질문과 답을 통해 서로 얻고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언형세미나>를 통해 나에게는 이론적 깊이와 건축가들의 새로운 시선을 경험하게 되어 사무실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도판) 그동안 진행되었던 언형세미나의 포스터들,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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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비작가적 태도를 유지하고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며 일을 하고 있다. 그 바탕은 아라타이소자키의 글과 미칸쿠미에서 발표한 「비작가성의 시대에」에서 밝힌 내용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설계 과정에서 좀더 많은 물리적, 시간적 요소 들로부터 단서를 찾고 각 요소에서 어느 한가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가며 일을 한다. 지금은 정보의 과밀화와 실현해야 할 내용이 많은 시대이고, 그것을 최대한 반영해 밸런스를 갖춰 나가기를 요구한다. 절대적 기준보다는 동네와 주변 리서치를 통해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려 설계에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실패를 통해 권위적 위기의 건축가가 아니라 좀더 사람에 초점을 둔 건축가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야마모토 리켄(山本理顯, 1945-)의 건축이 호평을 받는 이유는 건물보다 사람을, 경제적 관점 보다는 사용자의 삶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연재해 속에서 두려움과 절망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손길로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야 말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태도다. 그런 모습을 통해 한국의 주거 문제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지금의 주택시장과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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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몇몇 새로운 시도를 해오고 있다.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한 영업을 하지 않았고 그 시간에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더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일들은 주로 우리에게 의뢰가 들어와야 시작하는 방식이다 보니 의뢰가 없으면 일이 없는 상황이 된다. 또한 주어진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기획과 시행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가는 일본의 젊은 건축가들의 용기와 변화를 보고 좀더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할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설계한 건물들이 상업적으로 성공되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설계 이외의 일들을 클라이언트 대신 얻게 된 경험들이 용기로 이어졌다. 

규모가 크든 작든 시행의 프로세스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 비슷한 단계를 거친다. 프로젝트 기획, 파이낸싱 방법, 예산 경험, 세금과 절세 방법, 주택법과 도시법과 같은 법규, PF 보증의 절차와 방법, 시공사 선정 및 감리 등등 건축과 연계된 타 영역들을 조금씩 하게 되면서 일의 범위가 확장되었고 지금은 별도의 회사인 써드플레이스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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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집 짓는 일을 영조 또는 영건이라고 했다. 영조와 영건은 집 짓는 기술과 건설 행위 그리고 지은 후 경영(유지관리)한다는 뜻이다. 영조와 영건이라는 말은 건축물 자체를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 삶의 경영, 즉 거주를 강조한다.{6}[6] 우리는 사용자가 좀 더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설계를 통해 전달한다. 설계 내용에는 당신의 삶은 어떠했고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담게 된다. 사람들의 사고와 시대를 반영하는 기능은 언제나 바뀌고 바뀌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변화에 사용자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필요하고 많은 변화가 생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은 사용승인이라는 행정절차가 끝나면 대부분 프로젝트가 끝난다.

하지만 우리는 거주자들의 ‘삶의 경영’을 피드백 받기 위해 사용승인 이후 건물의 운영 및 관리의 역할을 프로젝트로 함께 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기획한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인지? 그리고 설계나 시공상 어떤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보완해나가고 있다. 물론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도 들겠지만 그 부분을 피해가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기에 지금도 여러 완공된 건물들을 운영,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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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일들을 예측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근거는 더욱 단순한 답을 선호하는 오컴의 면도날이라 불리는 성향과 규칙적이었으면 하는 희망에 불과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다음에 오는 사실을 결코 손에 넣을 수는 없다.{7}[7]또한 다음에 오는 사실은 언제나 우리들을 한 단계 더 높은 복잡한 수준으로 이끌고 갈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처음 시작은 스터케스틱하게 출발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스터케스틱 연쇄가 일어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처음 하고 있던 일과 연계되면서 일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어쩌면 일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전문성이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각각 연결된 일들이 서로 보완하며 일의 전문성이 이 시대에 맞게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빠른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먼저 가능성이 보이는 방향을 바라보고 행동으로 옮긴 다음 생각한다. 그러면서 정리하고 수렴한다. 건축은 많은 영역과 연결되어 있고 그런 타 영역과 결합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많은 인자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일은 항상 본래의 일과 다른 종류의 일이 결합됨으로써 생겨나기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기대하게끔 한다.





[1]마츠무라준, 『건축하지않는건축가』 (인벨로프, 2024), 198쪽.

[2]가라타니고진, 『은유로서의건축』 (한나래, 1998), 58쪽.

[3]이가라시타로 + 키쿠치타츠야, 『현대건축선언문집』 (창국사, 1998), 304쪽.

[4]마츠무라준, 『건축하지않는건축가』 , 34쪽.

[5]그리스어로는 ‘stochazein’. 목표물을어림잡아활을쏜다, 즉사건을어느정도무작위로상정하고그중에서몇개기대되는결과를노린다는의미. (출처: 그레고리베이트슨, 『정신과자연』 (까치, 1990), 374쪽.)

[6]이상헌, 『한국건축의정체성』 (미메시스, 2017), 24쪽.

[7]그레고리베이트슨, 『정신과자연』 (까치, 1990), 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