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양과 둥근 모서리 : 동남아시아의 아르데코와 모더니즘 건축의 오늘> 전시에 덧붙여




아세안 국가들의 근현대 건축은 식민지배 시기와 독립 이후의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국가적 개입, 도시화 과정, 그리고 그 이후 세계화의 영향을 포함한 다양한 역사적·사회적·문화적 관심 속에서 전개되었으며, 이는 곧 로컬리티 건축의 중심으로 이어졌다. 각국은 서로 다른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서양의 건축 양식을 도입하게 되었고, 청사, 학교, 교회, 철도역 등 공공 건축 중심의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이와 함께 각국 수도에는 서양 도시계획의 주요 형식이 그대로 이식되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는 신고전주의와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물이 등장하였고, 영국 식민지였던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는 고딕 리바이벌, 신고전주의, 빅토리아 양식의 시청사와 기차역 등이 건축되었다.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와 유럽의 양식을 혼합한 ‘인도식 아르데코’ 또는 ‘인도-네덜란드 양식’이 발전하였다. 한편,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태국은 왕조의 전통 건축 양식을 유지하면서도 서양 건축가들을 초빙하여 다양한 건축물을 세웠다. 식민지시기에 형성된 이식된 건축문화는 아세안 국가들의 열대 기후와 종교적 환경 등과 맞물리며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변모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은 서구 열강으로부터 차례로 독립하였고, 이 시기 건축은 식민지 시대 이전의 전통을 되찾고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는 도구로 적극 활용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던 자국의 건축가들도 귀국하여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짧은 기간 동안 다수의 건축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는 점은 아세안 국가들이 공유한 또 하나의 특징이다. 이 시기의 건축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20세기 모더니즘과 브루탈리즘을 각국의 기후, 정치 상황, 국가 정체성에 따라 재해석하면서 독특한 건축 양상을 드러냈다. 규모가 크고 육중한 콘크리트를 거칠게 노출시키거나, 기하학적 질감이나 형식을 전통 문양이나 건축적 장치(환기구, 루버, 파사드의 조절 장치 등)를 통해 표현하였다. 이러한 시기를 지나며 각국은 세계화, 도시화, 개방에 따른 경제 성장과 함께 급속한 발전과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에 따라 고밀도 도시화와 환경 문제가 대두되었고, 문화재나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보존, 그리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재인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국가 주도로 추진되던 단순 기능 중심의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각국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 상징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흐름이 나타났다. 나아가 지역의 기후, 문화, 재료를 반영한 ‘비평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로 발전하면서 건축은 더욱 풍부한 지역성을 담게 되었다.

이러한 아세안 국가들의 근현대 건축 흐름은, 아세안문화원이 기획한 전시 《차양과 둥근 모서리: 동남아시아의 아르데코와 모더니즘 건축의 오늘》이라는 제목 아래 집약적으로 소개된다. 여기서 ‘차양’은 열대 기후에 대응하는 건축적 요소로, 자연 통풍과 일사 차단 등 지역 환경에 순응하는 공통된 형식이다. ‘둥근 모서리’는 양식적 유연성과 장식성을 표현하며, 아르데코 및 모더니즘이 지역적으로 변형된 형태를 뜻한다. 이는 서구의 직선적 특징을 유기적이고 지역 친화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양식의 혼용성(hybridity)을 의미한다. 전시 제목은 아르데코에서 모더니즘으로의 양식적 전환을 내포함과 동시에, 이러한 양식의 변화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역할과 영향을 미쳤는지를 통찰하게 해준다.

이번 전시는 생소한 동남아시아 건축을 전달하기 위해 총 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건축의 기억, 기억의 건축’, ‘위로부터의 건축, 아래로부터의 건축’, ‘가치의 지속과 확장’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전시를 구성하였다. 이런 구성의 주제 맞는 각 국가별 건축을 영상, 모형, 사진, 도판으로 전시하여 관객들이 좀더 이해하기 쉽고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국가들은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얀마,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가 참여했는데 일부 인상적이었던 국가의 전시를 전달하고자 한다.

태국 출신의 베라팟 파카양쿤의 <지금, 그 모퉁이에서는>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방콕의 오래된 건물의 리노베이션 한 내용을 영상으로 담았다. 손자, 손녀는 1910년대에 지어진 건물에서 오랫동안 할아버지가 활발하게 운영하던 신발 공장이 멎게 되면서 리노베이션을 통해 기존 건물의 역사적, 유산을 이어 가기로 결정한다. 오래된 4층 건물은 일방통행의 피타야 사티안 다리와 접하게 되면서 곡선의 형태가 건물의 특징이 되었다. 그리고 건물의 창에는 기후에 따른 차양이 형태적으로 표현되어 구조와 함께 독특한 태국 만의 건축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비와 햇볕에 대응하기 위한 처마가 주변 건물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기후가 주는 건축적 특징 중에 하나이다. 도로의 형태에 의해 생기다 보니 땅의 코너에 위치하게 되어 ‘코너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리노베이션 하는 과정에서 기존 건물의 구조를 지키고 과하게 보이는 부분을 철거하며 건물의 특징을 살려 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진행하다 보니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기도 하고, 내부가 단순하게 정리되는 과정이 건물을 더욱 가치 있게 재해석 되었다. 새로 짓기 보다는 그 장소에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던 건물을 유지하고, 그 곳에서의 기억을 이어 나가는 것이 ‘코너 하우스’의 장점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건물 주변의 상권과 함께 연결하기 위한 노력도 커뮤니티의 방향성에 중요한 내용 중 하나이다. 과거 공간을 사용했던 사람들과 가치를 이어 나가고 미래 세대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창의적인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아냈다. 이 영상 속 젊은 손자 손녀는 이전부터 이어오던 장소의 기억을 공유하고 유지하면서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적 접근방법과 기능을 건축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건축이나 노후화된 건축물을 거부하거나 소거하지 않고 그것을 더욱 가치 있는 방식으로 이어 나가고 있다. 이런 관심은 태국의 현대 건축이 가지고 있는 유연함과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라오스 출신의 타누펫 온마봉의 <백 투 더 퓨처>는 ‘건축의 기억, 기억의 건축’이라는 전시의 소주제와 연결되는 작품으로 “건물은 그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기억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같은 건물일지라도 용도가 바뀌면, 그 건물의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영상에 등장하는 라오스의 대통령 궁이었던 호캄(Ho Kham)은 그러한 건축의 의미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건물은 식민지 이전에는 왕실의 기능을 수행했으며, 프랑스 식민시대에는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이후 태국 군정 시기를 거쳐, 현재는 라오스의 대통령 궁으로 기능하고 있다. 호캄은 하나의 물리적 공간 안에 복합적인 역사와 시대의 기억을 담고 있는 건축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체이자, 각 시대의 권력과 기능 변화가 켜켜이 축적된 장소라 할 수 있다. 이 영상은 이러한 건축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세 명의 안무가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건물과 상호작용하며 안무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가 바뀌고 기능이 변하더라도, 물리적 건축물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미래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건축이 가지는 시간성과 기억, 그리고 장소성의 가치를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한편 아시아의 근대 국가형성 과정에서 건축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0년대에는 건축 이데올로기가 유행하며, 각국은 국가와 전통을 건축과 연계시켜 국가를 대표하는 표상적 건축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대형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시기는 국가 정체성과 건축적 표현에 대한 실험과 논쟁이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에서도 ‘한국의 전통’ 혹은 ‘한국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고, 이는 건축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은 흐름은 한국의 김수근, 일본의 단게 겐조, 스리랑카의 제프리 바와, 캄보디아의 반 몰리반과 같은 건축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각국의 전통을 현대 건축과 접목하여 근대 국가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인물들이다.

특히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았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는 식민 건축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독립 이후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건축을 적극 활용했다. 그중 캄보디아의 사례는 매우 상징적이다. 건축가 반 몰리반(Vann Molyvann)은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건축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은 후,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 2년 뒤인 1955년 귀국, 당시 총리로부터 ‘국가 건축가(National Architect)’로 임명되었다. 그는 ‘인민 사회주의 공동체’ 시기 동안 프놈펜의 도시 계획과 전국적인 건축 개발을 주도하였다. 그가 설계한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지금도 캄보디아의 국가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독립기념탑을 시작으로, 일반 시민을 위한 주택 프로젝트인 ‘100개의 집’, 실험적 공동주거인 화이트 빌딩과 그레이 빌딩, 국력을 과시했던 국립 올림픽 경기장, 외국어 대학교, 그리고 짜토목 극장 등은 모두 공공성과 시대정신,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을 시각화한 건축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캄보디아 출신 세라이랏 멕의 <사라진, 여전히 건재한: 반 몰리반의 유산> 영상을 통해 반 몰리반 사후, 그의 건축이 오늘날에도 시대적 정신을 보존하고 있으며, 여전히 공공성과 공동체적 목적을 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짜토목 극장’의 모형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직접 그의 건축적 언어와 형태를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영상의 마지막 장면처럼, 과거 반 몰리반이 살던 가옥이 현대의 카페 공간으로 재해석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다시 떠올리고 국가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베트남 건축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은 기후, 식민지배, 그리고 종교와 연결된 베트남 고유의 문화적 요소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하노이에 위치한 건축사 사무소인 ‘Rb 하우스’에서도 드러난다. 전시 중인 사진을 보면, 다양한 건축물의 입면이 식물과 독특한 문양의 차양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Rb 하우스’는 각 층마다 서로 다른 입면을 구성하고 있는데, 일부는 매스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구조를 보이고, 또 일부는 난간이나 식물을 이용해 외부화 된 입면을 드러냄으로써 건물의 경계를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도시의 입면 역시 한층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구성된다. 또한, 층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계획함으로써 구조가 단순하지 않고, 더욱 복잡하고 풍부한 공간감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베트남의 현대 건축은 과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공간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기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방향성을 지닌다. 이러한 시도는 베트남의 건축을 정의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건축사사무소인 트로피컬 스페이스의 ‘WASP 하우스’는 베트남 호치민시에 지어진 주택으로, 이 프로젝트를 설계한 건축 그룹 트로피컬 스페이스는 지역적 소재를 활용해 열대 주거 환경에 적합한 현대적인 건축을 제안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주택은 도로 쪽으로 폭이 좁은 ‘냐옹’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도로에 면한 입면은 벽돌로 조적 되어 외부의 강한 빛을 차단하면서도 일부 공간에서는 빛을 실내 깊숙한 곳까지 유입시키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콘크리트, 금속, 벽돌 등 제한된 재료를 활용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주거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게 제한된 재료는 오히려 공간의 물성과 구조적 특징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며, 내부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재료와 상호작용하며 실내 공간에 다양한 분위기와 빛의 효과를 만들어 낸다. 트로피컬 스페이스와의 몇 년 전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작업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특히 베트남의 세장형 도시주택인 ‘냐옹(nhà ống)’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었다. ‘냐옹’은 본래 운하나 강 주변에서 시작된 주거 형태로, 초창기에는 지금보다 건물의 높이는 낮고, 깊이는 더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일부 ‘냐옹’은 건물의 길이가 100m에 달하기도 했으며, 1층은 상점으로 사용되며, 도로, 보행자, 상인과 구매자가 긴밀하게 소통하며 밝고 활력 있는 시장 공간을 형성했다. 하지만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구조적 특성상, 자연광이 내부 깊숙이 들어오기 어렵고, 동선이 비효율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대한 건축적 해결책으로 중정(안뜰)을 두어 채광을 확보하거나, 입면에 벽돌을 구멍 내어 빛과 공기를 유입시키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밤에는 내부의 불빛이 외부로 은은하게 퍼지도록 하여 도시 경관에도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된다. 이처럼 ‘냐옹’은 독특한 베트남의 건축 문화를 형성하며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진 주거 형식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도시 인구 증가와 도심 집중화로 인해, 기존의 2층 내외 주택이 7층 이상의 고층 주거지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합리적 대안들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결국 기후 환경, 역사적 도시 이미지, 그리고 식민시대를 거치며 발전한 '냐옹'과 같은 고유한 주거 형태는 현대 베트남 건축의 중요한 방향성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건축적 특이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베트남의 응우옌 유이 안 감독의 <브리즈 솔레이와 빛의 은닉처>는 사이공 모더니즘 건축의 특징적인 브리즈 솔레이에 주목한다. ‘브리즈 솔레이(Brise-Soleil)’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용어로, 열대 지역 건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루버나 스크린을 의미한다. 이는 건축물의 외피와 연결되어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미학적 관점에서 건물의 입면 디자인 요소로도 작용한다. 이 장치는 단순히 내부로 유입되는 빛을 조절하는 기능뿐 아니라, 외부에서 보았을 때 입면의 미적 표현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로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러한 장치는 내부로는 햇빛을 차단하면서도, 내부에서는 외부의 시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빛과 시선의 흐름을 조절하면서 외피에 부착된 형태로 적용된다. 이와 같은 요소들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안과 밖의 관계를 뒤집거나 전복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모호한 경계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성은 기후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적절한 차단과 연결을 동시에 실현하는 건축적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브리즈 솔레이는 식물과 결합되면서 더욱 극적인 형태로 표현되며, 베트남의 트로피컬 기후를 상징하는 건축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지역성과 기후의 특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입면 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출신 무하마드 우말 악말의 <베이비 블루에 흐르는 금맥>은 오래된 문화유산인 센트럴 마켓을 보존하고 성공적으로 리노베이션 해 낸 과정은, 정부와 지자체를 설득하며 건축을 지켜낸 사례를 잘 보여준다. 초기에는 센트럴 마켓이 오래된 문화유산으로서 보존되어야 한다는 인식조차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이를 설득하고 제도적 규정을 마련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행정의 역할과 설득의 중요성을 깊이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단지 말레이시아만의 사례는 아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개발 중심의 사고방식과 분위기는 역사와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보다 앞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존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건물의 지속 가능성을 가능하게 한 핵심 요소는 ‘재사용’을 통한 새로운 관점의 제시와 이를 뒷받침하는 설득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 사례는 단순히 리노베이션의 성공 사례를 넘어서, 도시의 역사성과 건축의 가치를 어떻게 현재와 미래로 연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