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택 감수자의 말



우리는 스스로 집을 짓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동물들은 자기를 보호하거나 필요에 의해 집의 위치를 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짓는 반면 인간의 대부분은 산업화 이후 자신이 직접 집을 짓는 일은 불가능 해졌다. 우리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다. 서울은 70년대부터 시작된 인구증가와 개발 붐에 수많은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경제성이나 시공사의 이윤을 목표로 지어진 아파트는 개개인의 상황이나 목적에 맞게 지어지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경제성, 편리성, 환금성으로 이제 다른 유형의 집을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품으로써의 주거는 장점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한 어떤 폐단이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

몇 년전부터 뉴스에서 들려오던 층간소음 문제는 이웃들간의 다툼이 번져 이제는 일상이 되었고 이웃을 알지도, 이해할 필요도 없는 관계가 되어 더욱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같은 아파트에서 사망한지 몇 년 된 사체가 발견되는 등 고독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런 뉴스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우리는 눈 앞의 사고 수습에만 급급하고 근원적인 문제와 그 해결책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회 문제들은 가족과의 단절, 이웃과의 단절로 이어져 우리 사회의 피로와 문제점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들은 과연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삶이여야만 하는가?

1인 세대의 비율은 점점 늘어가고 이웃이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저층형 집합주택으로 바뀌고 있는 동네의 1층은 필로티로 되어 어둡고 삭막한 주차장으로 모두 변했고, 같은 건물에 사는 다세대 건물에서는 옆집이 누가 사는지 몰라 더욱 두려운 대상이 된 지 오래되었다. 집은 더욱 더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게 생각해 폐쇄적인 집으로 변해 가고, 그런 밀실화 된 집에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외로움이 밀려오는 끝없는 어두운 터널과 같다. 그렇다면 여전히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분리 시키고 있는 집에 혼자 지내야만 하는가?

우리는 집으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 나가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지금의 주택 구조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이어져 오게 되었는지를 보면, 우리가 선택해서 지금의 집이 만들어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공급자의 입장으로 지어지고 있는 집은 수요자의 삶은 배제된 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현 시점에서의 이웃을 개념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주체적으로 관심을 가져야만 하고 그래야 바뀔 수 있다. 삭막한 도심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외로움으로부터,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탈피할 수 있을지 그런 방법을 건축가 역시 고민해야 한다. 이런 변화의 시점에서 공동주거에 대한 방향과 제안들을 위한 건축가들의 대화는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단지, 설계자는 용역을 받아 공급자(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춘 최대 수익을 내는 도구로 집을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집합주택에서의 함께 사는 방식이나 동네를 생각하는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접근이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서울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다양한 포럼을 통해 현 시점의 문제점과 다양한 제안들을 함께 이야기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 중 몇몇 제안들 중에 필자가 만들어 나가고 있는 <써드플레이스>는 건물에 국한된 관계를 넘어 몇몇 건물들이 모여 오래된 동네를 변화시키는 시도로 진행중이다. 각 건물의 공용공간은 동네의 길의 연장으로 복도나 계단이 형성되고, 그 사이사이는 입주자들이 사용하거나 만날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생겨 중간 영역으로써의 기능을 한다. 건물과 도로 사이는 삭막한 입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나 바람, 시각적인 자연스런 분리를 위한 조경 영역이나 반외부 공간으로 그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연결시킨다. 써드플레이스에서 진행되는 각 건물의 입주자 프로그램은 입주자 뿐 아니라 주변 동네 사람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새로 이사 온 사람들과 기존 동네 사람들과의 연계를 도모 하고 있는데, 이런 작은 활동을 통해 동네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 알고 지내게 되면서 안전에 대한 믿음도 형성되고 있다. 집과 집, 건물과 건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만들어져 동네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되고 함께 만들어 나가는 주체적 동네 만들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를 만들어 가고있다. 이런 써드플레이스를 시작할 때 사례로 야마모토 리켄의 ‘강남 하우징’과 나카 토시하루의 ‘식당이 딸린 집’에 영향을 받았다. 필자가 고민하던 사회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바꾸어 나가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예를 들어 보여준 다양한 사례들은 규모에 국한 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이웃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유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지와 욕구가 있어야 가능 할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그런 상황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건축적 제안들도 많이 생겨나길 바라며 미래의 세대가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나가면 어떨까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사회적, 건축적 고민들을 이웃 일본의 건축가는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규모로 여러 대안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작을 바탕으로 우리 주거 환경이나 삶의 질도 높아 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