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박창현의 영감노트



몇년 전 겨울 이탈리아에 머물다가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 두었던 스위스 시골 작은 마을에 있는 온천장에 들렀었는데 그 경험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 당시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건물에 대한 관점이 너무 편협 되어(경제적, 시각적 관점)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 건물을 경험하면서 좀 다르게 건물을 접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도 하다. 다양하게 접근한 건물이야 말로 문화적 가치를 더한 산물로 이어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스위스 은둔의 건축가 ‘피터 춤토르’에 대한 이야기이다. 춤토르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춤토르가 태어난 곳은 알프스 산맥과 연결되어 있어 지형이 험준하고 동네 접근조차도 쉽지 않은, 어쩌면 고립된 동네일 정도로 다른 도시들과 단절될 마을이었다. 당시 스위스 산지에 있는 마을들이 거의 같은 상황이기에 작은 동네에서는 거의 자급자족하듯 살아왔고, 그런 상황이 각 동네의 특징을 좀더 보존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춤토르도 잠깐 동안의 해외 유학 시절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을 자신의 고향인 ‘쿠어’에서 살면서 지역 건축물을 설계해 오며 자신만의 성격을 다져온 건축가이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몇가지 중요한 내용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첫번째는 건축물이 대지 위에 어떻게 점유할 것 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건물과 지형을 포함한 대지와 관계 맺어주는 점유의 방식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자연 조건인 대지 위에 인공의 힘이 가해짐으로 실재 공간을 점유하게 되는데 지형적으로 공간이 조직되는 과정을 건축화 하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단지 대지 위에 건물을 얹는 방식이 아니라 대지의 지형을 파악하고 대지와 건물이 긴밀하게 조직해 대지와 건물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지의 지형, 지질, 역사적 변화, 대지 주변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시선, 지형지물(바위, 나무, 바람, 계절에 따른 변화)에 대한 파악 등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런 조건들이 건물과 맞물려 더욱 대지와 건물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속에 건물은 형태가 구체화되고, 기능이 포함되고, 재료가 결정되는 것이다. 서양에서 건물을 오브제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설계 방식인데 이와 다르게 춤토르는 주변에 대한 배려와 수용에 의해 만들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동양적인 접근과 닮아 있다. 즉 공간의 본질을 건축 과정에서 나타낼 때 추상화된 건물의 형태보다는 조직으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직조와 유사하다. 한국에서는 옷을 짓는다, 농사를 짓는다, 건물을 짓는다는 모두 ‘짓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조직하여 만들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건축도 주변 또는 대지와의 연결성의 관점으로 본다면 직조로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처음 춤토르가 설계한 발스의 온천장 건물에 가서 받은 첫인상은 건물이 지어진 대지와의 연결성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경사진 대지에 순응하듯 대지의 지형을 그대로 사용해 반쯤 건물을 땅속에 뭍어 그 모습이 지형과 이어지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그리고 건물의 안밖으로 사용된 재료도 그 지역에서 멀지 않은 지역의 판석을 사용해 쌓아 올렸다. 그 지역의 색을 유지하는 데는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의 색을 담고 있는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진정한 로컬리티를 만들어 낸 건물이 되었다. 수만장의 판석은 이질적이지 않고 그 자연속에 멋지게 스며들어 지어졌다.

두번째 춤토르가 이야기 하는 내용중 하나는 ‘건축적 분위기’이다. 이 내용은 춤토르의 책 ‘분위기’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분위기는 재료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건물은 많은 재료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재료들끼리의 하모니가 중요하다고 한다. 재질성을 가진 소재는 그 건물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그 다음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재료들끼리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러 재료들은 그 공간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작용을 하는데 서로의 재료들이 모여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인자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는 ‘사운드’이다. 건물에서의 사운드는 보통 음악홀이나 음향과 관련된 건물에서만 생각하게 되는데, 모든 공간은 커다란 악기와 같다고 춤토르는 말한다. 공간은 사운드를 모으기도 하고 강조하거나 전달한다. 모든 건물은 재료에 의해 둘러 쌓여 있어 사운드와 연결될 수 밖에 없는데 건물의 재료는 사운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건물에서는 ‘온도’의 중요성도 말한다. 공간의 온도는 각각 그것에 맞는 온도가 있는데 온도는 육체적으로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건물에 들어 섰을 때 느껴지는 보는 것, 만지는 것, 발로 접촉하는 것 모두가 온도와의 접점을 가지는 도구이며 이것으로 인해 건물의 분위기는 한층 더 직접적이게 된다.

춤토르의 온천장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직접 전달된다. 동네에서 얻은 판석들로 둘러 쌓인 건물은 내부로 들어가면서 특별한 경험을 극대화 시킨다. 온천장에 들어 가기 전에 옷을 벗고 수영복만 입은 채 들어서는데 온천장의 첫 공간의 느낌은 아주 차가운 공간이었다. 3층 높이의 탈의실에서 나오면 1층까지 하나의 높은 공간에서 들어서게 되고 딱딱한 재질의 돌은 나의 벗은 몸과 대조적으로 더욱 차갑게 느껴지게 되는 공간이었다. 공간이 크고 높은 곳에서 온천물이 있는 욕장으로 가기까지 한참을 계단으로 내려와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발에서 전달되는 차가움은 시각적인 차가움을 배가 시키고 내부로 내려가는 시간적 경험을 더 길게 느끼게 만들었다. 한참을 내려가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근 순간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차가웠던 경험과 감각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게 만든 것이다. 그런 시간적 감정과 감각은 사진에서는 전달 할 수 없을 것이다.

온천장의 공간은 하나의 재료로 만들어 졌지만 공간의 형태와 성격은 다양하게 설계되었다. 좁고 높은 욕장, 물속에서 골목 같은 공간을 통과해 큰 공간으로 연결된 욕장, 향과 온천물이 조명에 의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욕장, 외부의 풍경과 직접 마주하는 야외 욕장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중 각 공간마다의 특징에 의해 내부에서 나는 소리 또한 다 다르게 경험된다. 좁고 높은 욕장에서는 소리가 내부에서 울려 악기통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하고, 외부 욕장은 자연의 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릴 수 있도록 조정되어 있다. 한마디로 발스의 온천장은 사용자의 오감과 심리적 치유를 위한 장치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설계되었다. 감각의 긴장과 이완, 가까움과 먼 거리에 의한 친밀감, 빛에 따른 표면의 광택과 반사에 따른 조율, 무엇보다도 재료의 하모니와 아름다운 형태는 자연 속 건물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다양한 위치에 다양한 용도에 의해 지어지는 건물들 중 사용자와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건물이 얼마나 될까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떤 건물에 들어가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변화나 감각의 변화를 일으켜줄 수 있는 건물이 있다면 그 건물은 물리적으로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말을 우리에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건물 중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건물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앞으로의 건물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발스온천장1 : 발스 온천장의 내부는 콘크리트와 돌 그리고 금속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공간이다. 하지만 이공간을 거쳐 온천을 하는 경험은 인간의 오감을 극대화 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발스온천장2 : 온천장의 물은 시각적인 차가움과 달리 따뜻하다. 그리고 내부의 조명은 정제되어 공간의 특징을 사용자들에게 전달한다.



발스온천장3 : 천장에서 떨어지는 자연광은 지붕의 틈을 통해 벽을 따라 떨어진다. 이 계획된 빛은 내부의 어움과 잘 어울린다.



발스온천장4 : 발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온도는 온천의 물의 온도와 차이를 느끼게 한다. 내부의 사운드는 돌에 의해 만들어진 딱딱한 매질에 의해 울려 마치 동굴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참고 : 페터 춤토르 ‘건축을 생각하다’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