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말하는 공동체적 삶이란
: 동네와 이웃으로부터 시작되는 집, ‘써드플레이스’
당신의 이웃은 안녕하신가요?
층간 소음과 주차 문제로 인한 이웃 갈등, 무관심과
단절이 부른 고독사 등 주거 공간에서의 사회문제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이웃이란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싶은 존재가 아니라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러한 여러
가지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한 공동 주택이 등장해 눈길을 끕니다. 바로 공동체
주택입니다.
공동체 주택이란
공동체
주택은 1인 가구 증가와 주거비 상승, 공동체 해체로 인한
고립 등을 개인이 아닌 입주자들이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주택 내에 입주자가
모일 수 있는 공용 커뮤니티 공간과 공동체 규약을 갖추고 입주자들이 공동 관심사를 매개로 공동체 활동을 하도록 하여 이웃 간 유대를 증진할 수
있게 돕는 것인데요. 입주자들은 한 달에 한 번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기나 텃밭을 가꾸는 등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수행합니다. 현재 공동체 주택은 서울시가 만든 서울형 공동체주택 인증 기준을 따르며, 민관협력형(토지임대부)과
민간임대형, 자가소유형 등으로 나뉩니다. 인증을 완료한 사업자는
대지를 매입하거나 건물을 지을 때 대출과 이자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입주자에게 주변 시세의 95%로 임차를 제공합니다.
이웃과 연결되는 제3의 공간, 써드플레이스
박창현 에이라운드 건축 대표가 이끄는 ‘써드플레이스’는 이와 같은 공동체 주택을 포함한 다양한 공동 주택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회사이자, 그들이 만드는 공동체 주택의 이름입니다.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전반적인 PM 역할을 수행하며, 완공 후엔 입주자 선정과 건물 유지 보수도
맡습니다. 써드플레이스는 그간 박창현 소장이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며 쌓아온 저층형 집합주택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설립 계기가 됐습니다. 공동체 주택 심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인증의 지표를 만들었던 경험 또한 그 바탕이 되었어요.
써드플레이스는
직역하면 ‘제3의 공간’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는 그의 저서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에서 삶의 제1의 장소인 집과 제2의 장소인 일터와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레이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장소는 집과 일터 사이에 타인과 접속하는 중간 공간을 말하는데, 써드플레이스도
그와 의미를 같이 합니다. 제3의 장소를 통해 고독감이나
소외감을 해소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집은 동네와 이웃으로부터
이러한
지향점은 프로그램과 공간 설계에서도 나타납니다. 써드플레이스가 기획하는 공동체 주택 1층에는 공용 커뮤니티 공간인 라운지뿐만 아니라 근린생활시설도 마련되어 있어요.
이는 이웃과의 연결을 돕는 매개체이자 나아가 동네의 거주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지어진 다세대주택들은 법정 주차 대수를 충족하기 위해 1층을 필로티로 만들어 비워 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이와 같이 1층이 비어 있는 경우 자연히
보행 환경도 저하되기 마련이죠. 공동체 주택은 이와 같은 1층의
주차 대수를 일부 완화하는 대신 입주자와 동네 이웃을 위한 라운지로 활용할 수 있어요. 즉 1층 공간을 회복시킴으로써 입주자와 이웃들이 보다 활발하게 연결되고, 주차장
일색으로 어두웠던 길가가 환하게 바뀌는 등 주거 환경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개별
주거 공간은 일률적인 설계를 지양하며 마치 단독 주택처럼 각자 개성과 특색을 가지도록 설계했습니다. 현관
앞, 복도 등 공용 공간에서도 단차를 두거나 의도적인 빈 공간과 동선을 만드는 등 입주자들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어 각자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지금까지 써드플레이스가 기획한 공동체 주택은
설계 및 공사 중인 건물을 합쳐 10여 개 남짓. 2월부터
홍은동뿐만 아니라 신림동, 개포동 등지에서 7개 사이트가
순차적으로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고 집짜 나를 찾는 집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공간과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먼저 2020년
완공되어 본격적인 시작점이 된 <홍은2>는 입주자들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함께 요리를 하고 밥을 먹는 ‘일월일식一月一食’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또한 외부 공용공간에 정원이 마련되어 있는데,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를 기를 수 있는 텃밭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홍은3>은 작가나 디자이너 등 공예와 예술에
관심 있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집으로, ‘핸드메이드Handmade’를
콘셉트로 기획했습니다. 라운지에는 여러 가지 공구가 갖춰져 있어 목공 작업까지 할 수 있는 작업실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주거 공간은 단독주택과 같이 각자의 개성을 살린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천장고가 비현실적으로 높은 집, 테라스가 있는 집 등으로 다양한데, 각 집은 크기와 형태, 지향하는 주된 집의 기능, 외부와의 조건 등이 서로 달라 새로운 유형의 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홍은4>는 ‘슬로우 리빙Slow
Living’을 주제로 했습니다. 소박하고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집으로, 라운지에서는 요가와 명상, 영화 상영 등이 이루어집니다. 주거 공간은 앞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세대별로 형태와 크기가 전부 다르고, 외부
공간과의 연결 방법 또한 모두 다르게 설계했습니다. 4층과 5층은
필요에 따라 벽을 터 두 세대를 합쳐 한 집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두었어요. 입주자의 결혼이나
출산 등 변화하는 라이프 사이클에 대응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죠. 인상적인 것은 내부에는 콘크리트, 외부에는 목재를 적용하여 마감재를 반전해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이로써
외부도 내부만큼 내밀한 공간감을 가지면서, 훨씬 다양한 범위의 활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했어요.
<홍은5>는 주거 공간과 업무 공간을 결합한 ‘직주 근접’을 제안합니다. 주거
공간마다 작은 오피스 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현관 쪽에 배치해 공용 복도와 연접되도록 했어요. 복도에
면한 오피스의 벽은 유리로 되어 있어 개방적인 성격을 가지므로, 필요에 따라 재택근무를 하거나 손님을
맞는 응접실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호 오피스로서 1인
미용실이나 책방, 안경점, 잡화점 등 다양한 상점이 들어올
수도 있겠죠.
<홍은6>은 ‘식물
에고’를 주제로 하여, 식물 애호가나 조경가 등 식물에 관심이
있거나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집입니다. 홍은동은 예로부터 감나무와 정원을 가진 단독주택이
많았어요. 그런 동네 분위기를 되살려 사적 영역에서 구현한 공원(公園)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정원이 있는 집으로 계획했습니다. 1층 외부공간은 공공적 성격을 가진 정원으로, 완공할 때 미리 식물을 식재하지 않고 향후 입주자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정원으로 꾸밀 예정입니다. 1층 근린생활시설에 식물 관련 가게가 입점한다면 더욱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간 설계는 일본의 나카스튜디오와 협업했습니다. 나카스튜디오의 건축가
나카 토시하루는 판교 하우징과 강남 하우징 등 이웃과의 관계에 집중한 설계로 잘 알려진 야마모토 리켄과 다수의 작업을 함께한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살고 싶은 집은 동네와 이웃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