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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환, 기대

두 번의 데뷔: SKMS 연구소, 무진도원

사이건축에서 일을 시작하던 때 내가 무엇에 관심을 두었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때는 경험도 없었고,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원 때 관심을 가졌던 단어와 내용, 논문 주제를 떠올렸었다. 그게 ‘역설(paradox)’이었다. 그것을 공간적으로 해석했던 것이 ‘반고정 공간’인데,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고,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내가 쓰는 공간도 아니고 네가 쓰는 공간도 아닌, 애매한 공간이었다. 이게 내 안에 DNA처럼 있었던 것 같고, 최근 작업에도 드러난다.

이 생각이 조금 도드라지게 드러났던 프로젝트가 이진오, 임태병 소장과 같이 설계했던 SKMS 연구소다. 땅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지 주변에 인삼을 재배하는 밭이 있었고 거기에 설치된 그늘막이 땅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데, 구조물이 이 지형에 알맞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건축물을 땅과 연결하면 반고정 공간 개념을 살릴 수 있고, 장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사진 땅을 절개해 건물을 만들고, 건물 뒤쪽 땅은 지붕과 연결되고 앞쪽 땅은 1층이자 지하로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외부에 쓰이는 재료가 내부로 개입되거나, 외부 땅의 일부가 건물 사이로 파고 들어가는 등의 접근 방식이 땅과 건물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내외부를 넘나드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 또한 반고정 공간, 역설 개념을 강화하는 장치였다.

추모 공간은 상부 일부가 완전히 외부로 뚫려 있어서 햇빛이 쏟아지는 것을 연출했다. 개구부를 통해 눈과 비도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공간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외부 공간이다. 내외부를 같은 소재로 콘크리트 마감을 했고, 처음으로 중단열 시스템을 썼다. 공간의 엄숙함,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로 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바닥과 천장 매질이 딱딱한 것을 사용했다. 원목 나무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공간에 퍼져나간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들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추모 공간은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소리를 반사하는 딱딱한 매질로 마감했다. 또한 천장 일부가 완전히 열려있어 날씨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이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내용은 지역과 빛에 관한 것이었고, 학부 때 경험이 발현되어 일부 요소가 공예적인 양상을 띄었다. 이러한 관심사가 모두 드러난 것이 무진도원 프로젝트였다. 제주도만 해도 기후나 여러 조건이 육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남태평양으로부터 몰려오는 습한 공기와 바람에 대응하기 위한 집의 구성과 형태, 군집, 건물의 낮은 높이, 지붕 아래까지 올라오는 담장 등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부터 기후에 의한 건축적 변이, 특색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역 건축의 지혜를 내 작업으로 어떻게 끌어오면 좋을지를 많이 고민했다.
설계 때는 대지 주변 구릉 레벨을 전부 조사해 그 위에 자연스럽게 건물을 얹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집 내부에 단차가 생겼고, 그에 따라 기능과 공간을 분리하게 되었다. 대지를 보존하니까 건물이 주변의 귤나무 밭, 방풍림과 어우러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스케일의 뒷마당에서 들어오는 어렴풋한 빛이 지역 특유의 정감 있는 빛이라 느꼈다. 그것을 건축 내부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많이 고민했다. 그 결과로 찾아낸 것은 ‘북쪽에서 들어오는 깊은 빛’이었고, 내부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북쪽창을 통해서 온종일 은은한 빛이 계속 몰려 들어온다. 문 손잡이는 프로젝트 마칠 때쯤 직원들과 가죽과 바늘, 실을 들고 가서 현장에서 한땀 한땀 꼬맨 것이다. 차가운 매질을 손으로 직접 잡는 것이 부담될 때가 있으니 가죽으로 마무리한 것인데, 사용자들이 계속 손잡이를 사용하여 가죽이 태닝되고 낡는 것으로부터 집과 사람이 시간을 공유해나가는 과정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부분에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지금도 그런 요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녹여낸다.


전환작: 나무282, 조은사랑채

전환의 시점은 저층형 집합주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다. 2010년에 성산동에 처음으로 다세대 주택을 설계한 데 이어 망원역 바로 옆에 위치한 나무282를 설계하게 됐다. 이때 관심은 주변 다가구 다세대 주택 시공 업체와의 경쟁이었고, 미션은 시공비를 그 수준에 맞추는 것이었다. (건축주는 설계비를 좀 더 줄테니 수익률을 최대로 올려달라고 했다.) 내가 이 시장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다른 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공용 공간인 복도와 계단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한 층에 네 집이 있는데, 각 집 출입구를 한 뼘씩 밀어넣어 공용 공간을 조금 더 넓혔다. 그리고 계단실 맞은 편의 두 집에서는 40cm씩 빼내어 공용 공간의 열린 틈을 만들었다. 이 사이 공간에 창을 내 빛과 바람이 들어오고, 이로 인해서 공용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입주한 사람들은 각자 필요에 맞게 화단으로, 자전거 주차장으로, 택배함으로 썼다. 우리가 그렇게 의도치 않았는데도 잘 쓰는 것을 보고, 더 세심한 계획이 필요함을 느꼈다. 심리학의 행동 유도성(affordance)이라는 개념을 따라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상황을 제공해보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용자가 우리의 의도대로 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사용자에 의해서 기능이 도드라지기도 하고 새롭게 탄생될 여지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공용 공간 설계에 어떤 가능성을 심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운 좋게 공사비를 거의 맞췄고 (그 당시에 평당 450만 원 정도였다.) 각 집마다 주변 시세에 비해 거의 150~180%에 달하는 세를 받을 수 있었다. 보증금도 생각보다 많이 들어와서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나무282 프로젝트에서 용기를 얻어, 다음 작업에서는 공용 공간을 조금 더 개선해보고 싶었다. 그것이 ‘최대 면적이 최대 수익을 가져다 준다’는 공식을 깰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생각했고, 조은사랑채 프로젝트를 하며 확신하게 됐다. 프로젝트 대지 주변에 비슷한 임대 면적 규모의 주택이 많았고, 시세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집은 공용부 퀄리티가 재화로 직결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전용 공간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외부나 공용 공간도 균형을 맞춰야 더 시너지가 나겠다 생각했다. 내부 공간에 고급 재료를 쓰지는 않았지만, 남쪽 천창, 서쪽 작은 창 등을 통해 떨어지는 빛과 난간의 조명이 시간에 따라 공간을 달리 밝히면서 변화무쌍한 인상을 만든다. 이런 공간이 매력적으로 만들어지면 입주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대작: 써드플레이스 홍은 연작

써드플레이스 홍은 연작은 우리 팀이 기획 단계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대지 선택, 부동산과의 연결, 각 동네 특징 조사, 지역에 어울리는 프로그램 개발, 그것을 연결할 수 있는 조직 구성 등을 우리가 맡아서 하고 있다. 홍은 1과 2는 완성됐고, 3부터 8은 진행 중이다.

서울시 도시 정책 변화에 따라 도시 재생 사업이 많아졌고, 가로수길, 망리단길 등 갖가지 길이 생겼다. 이는 동네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주로 선형인 길을 중심으로 가로변 상가가 동네 활성화의 중심 역할을 한다. 그런데 몇 가지 의심이 들었다. 저 상가의 주인은 저 동네 사는 사람들인가? 저 상가를 경험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동네 주민인가? 둘 다 아니다. 외부인이 와서 장사하고, 외부 방문객이 찾아오고,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났다. 이 길들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네’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결국 동네 사람들이 장사하고, 동네 사람들이 소비해야 한다. 동네에 여러 장소가 점점이 포진되어 역할과 기능을 하고, 각 점이 확장되어 서로 겹치는 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홍은동에서 장기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이곳이 어떤 동네였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현 상태에 이르렀는지, 다른 동네에 비해서 이 동네는 어떤 특징과 아이덴티티가 있는지, 물리적인 것, 문화적인 것, 주변 상황 등을 오랜 기간 조사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하나씩 이어나가고 있다.

홍은동은 지도 상에서 작은 계획도시처럼 보이는 곳이다. 기존 동네와 직교 체계 도로가 혼합되어 있고, 4m, 6m, 8m 도로가 스케일에 맞게 놓여있고, 블럭마다 집의 개수가 정해져 있으며 면적도 40~70평 사이로 거의 균질하다. 4m 폭 도로는 차가 천천히 달려야 한다. 그러면 교통량이 줄고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또 6m 도로는 보차분리가 되어있다. 그러다보니 공공 공간에 식재가 가능해지고, 공공 공간과 사유 공간 사이 경계가 흐려지는 것도 이 동네의 특징이다. 근래에는 담장이 있던 4m 도로변 필지들이 담장을 허물면서 담장 안쪽에 있던 사적 공간과 바깥 도로가 약간의 경계만 남긴 채 혼재되었다. 공공 영역의 확장인지, 개인 영역의 확장인지 애매모호한 상황이 되었다. 이런 도시 상황에서 동네에 앵커를 만들 수 있는 건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홍은 1과 2를 계획했다.

저층형 집합주택의 장점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세대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관계 형성에 적합한 인원 수가 5~10명이다. 또다른 장점은 1층 근린생활시설에 동네를 연결하는 앵커 프로그램을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다가구 다세대 주택의 1층은 대부분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뿐인 삭막한 공간이 되었다. 예전 동네에는 2층 불란서 주택이 주를 이루고, 1층에는 주로 세탁소나 문방구가 있었다. 우리는 써드플레이스 홍은 연작의 1층에는 반드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근생을 넣는 것으로 계획했다. 그것이 동네를 연결하는 해결점이라고 생각했다.

써드플레이스 홍은 2의 1층에는 와인바가 있다. 골목 안쪽에 위치하다보니 외지인은 찾기 어렵지만, 동네 사람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와인바를 가겠다는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입주자를 위한 작은 라운지를 두어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라운지 안쪽에는 주방, 화장실, 건조기도 있다. 요즘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입주자끼리 사용 시간을 정해 쓸 수 있고, 서로 빨래를 가져다주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입주자들이 같이 식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는 입주 조건이기도 하다. 같이 밥을 먹기 위해 공용 텃밭에 채소를 기르고 요리를 한다. 식사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서로 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갑자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청할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큰 장점’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계단, 복도 같은 공용 공간은 대부분 외부 공간으로 되어 있다.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빛과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더 많이 넣고 있다. 전용공간의 외부 발코니를 없애는 대신 공용 공간이 그 기능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용 공간을 법적 기준보다는 조금 더 넓게 계획했다. 그래서 그 공간에 화분도 두고 테이블을 꺼내서 차를 마시거나 작업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다. 대지 밖의 건물과의 관계를 조절하기 위해 일부는 타공판을 쓰고, 일부는 식재로 차폐해서 내부지만 외부와 같이 느껴지는 효과를 냈다.

세 번째 집은 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이다. 그래서 한 집의 구성이 평면이 아닌 형태로부터 출발했고, 그것의 조합으로 한 건물이 만들어졌다. 설계를 역순으로 하다보니 시공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한 집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게 설계했다.

대로변에 위치한 써드플레이스 4의 프로그램은 슬로우 리빙이다. 여유 있고 천천히 가는 삶, 간소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여기에서는 공용 공간의 확장을 생각했고 공용 공간과 전용 공간의 마감을 바꿨다. 내부는 콘크리트고 공용 공간은 목재로 만들어서 내외부의 재료가 뒤바뀌면서 실제 기능이 어떻게 반응하고 변하는지 보려고 계획했다.

써드플레이스 5는 일하는 공간과 사는 공간을 하나씩 묶어준, 직주접합 공간이다. 공용 공간을 통해서 위층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복도에서 일하는 공간이 보이고 일하는 공간 뒤쪽에 자기의 집이 있다. 옛날 시장에 가보면 점포주택이 있는데, 이걸 입체적으로 쌓아 올렸다 보면 된다. 복도와 계단을 산책하듯이 거닐면서 작업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써드플레이스 6은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홍은동은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는 동네였다. 그런데 신축 건물이 생겨나면서 동네의 가드닝 문화가 점차 사라져갔다. 그런 풍경을 되살릴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1층에는 식물 가게이자 식물 상담소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기획했다. 주차장을 포함한 모든 공용 공간을 정원으로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공공적 개념의 정원을 1층에 만들고 2층부터는 공용 공간과 전용 공간을 넘나들면서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해서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동네 지도를 보면 1부터 6까지 점점이 분포해 있고, 최근 7과 8 대지를 계약했다. 시간이 지나면 각각의 역할을 확장해 나가면서 프로그램이 연계되기도 하고 각 집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프로그램을 경험하기도 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연결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게 동네에 생기기 시작하면 점차 변화를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와 의심을 하며 작업하고 있다.




관계적 건축

관계 설계

건축가가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기획부터 관리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가장 요구되는 것은 기획력이다. 건축가는 물리적 공간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구체적으로 1층 근생에 입주할 업종을 고민하고, 적절한 입주자를 섭외하는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를 구성하는 차원에서 이 건물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를 건축가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사업성 분석 결과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상가나 상점을 입주시키는 게 아니라, 동네를 다시 만들고 이웃 관계를 재조직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일종의 큐레이션을 하는 것이다. 건물 프로그램에 따라서 건물 디자인은 물론이고 구성, 유형, 쓰임, 모두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 관심의 범주는 개인의 관심사보다는 훨씬 더 넓고, 사회적 관점이 강하게 들어간다. 통칭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건축’, ‘관계 조직에 일조하는 건축’이 우리가 취하는 태도이자 방향, 관심이다.

문도호제의 임태병 소장이나 스테이폴리오와 접점이 있는 것 같고, 두 팀에 비해 나는 소규모, 공공 영역에 좀더 관심이 있다. 공공을 논할 때, 국가, 지자체는 관계가 옅거나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을 포함한 공공 영역에서 건축을 관장한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훨씬 규모가 작고, 사용자 간의 관계가 좀 더 밀접한 집단의 공용 공간이다. 구체적으로 2~3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갖고 있는, 잘 아는 사람은 아닌데 자주 마주치는, 인사하기는 애매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닌, 또는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친밀감이 있는,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데 연락을 할 때에는 살짝 고민되는 정도의 범주다. 그런 영역은 건축가가 공공재로서의 건물을 디자인할 때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차원에서 교집합이나 레이어를 섬세하게 나누고, 관계를 연결하고 분리하는 조절자 역할을 해야한다고 본다.
다가구 다세대 주택 설계를 의뢰하는 분들의 목적은 대부분 수익이다. 세대를 몇 개 더 만들지, 전용 면적을 얼마나 더 확보해야 수익률로 넘어가는지와 같은 숫자 놀음에서 온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건축가는 공공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계획하여 건축주를 설득해야 한다. 건물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건축주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명확하게 전달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시도조차 없다면 건축가는 자본에 귀속된 하수인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건축주를 설득하려면 경험치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도 첫 출발이 힘들었다. 지난 10년 동안 저층형 집합주택 프로젝트를 이어오면서 욕심 내지 않고 조금씩 실험했고, 작은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다음 프로젝트에 다시 적용하고 거기에 새로운 것을 더하는 식으로 진화시켜왔다.


협력 관계

건축을 하면서 내게 남은 재산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다. ‘좋은 프로젝트를 할 것인가’와 ‘좋은 건축가로 남을 것인가’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후자에 가깝다. 개별 프로젝트의 성패에 매달리는 것보다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스탭, 동료, 협업자들과 시간이 흐른 뒤에도 얼굴 보고 웃고, 만나서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협력자를 떠올려보자면, 먼저 20년 동안 함께하고 있는 가구회사가 있다. 가구는 실제 사용자와 건축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하기도 하고, 건축의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물건이다. 따라서 완성도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그것이 어떻게 계획되고 제작되어 어디에 놓이는지에 따라서 건물이 생각한 대로 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 건물의 가치를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건축에서 말하는 공간 개념을 가구로 조금 더 실체화할 수 있게끔 가구의 쓰임을 포함해 소재, 디테일 등 계속 새로운 것을 가구팀과 함께 논의하고, 현실적인 해결법을 거쳐 생산한다. 한편, 가구는 순서상 건축 공사가 끝나는 마지막 시점에 놓이기 때문에 타이밍과 규격이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마찰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 팀과는 함께 오래 일하다보니 호흡도 잘 맞는다. 사장님과는 일로 만나긴 했지만 그의 인생을 다 같이 공유하고 있고, 작업을 할 때도 많이 의지한다.

시공사는 바뀌더라도 금속, 목공, 전기 기술자들과는 같은 팀과 일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쓰는 디테일에 어느 정도 경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팀이 우리 디자인을 맡으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부터 고민해야 하는데, 기존에 함께 해온 팀들은 이미 해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거의 20년 정도 같이 일한 인테리어 팀이 있고, 그들이 함께 일하는 목수와도 2~3년에 한 번씩은 일을 같이 한다. 전기팀도 같은 경로로 알게 되어 함께 일한지 15년 정도 되었다. 그리고 조명 가게도 한 곳 있다. 우리가 원하는 디자인의 조명이 있으면 바로 구해준다. 창호도 국내에 들어온 PVC 창호 회사가 많은데 디테일, 내부 구성, 금액 등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일곱 개 회사의 창호를 여러 프로젝트에 다 써보고 시공, 관리, 전반적인 하드웨어, 내구성, 디자인 해결 능력 등을 확인한 뒤 최종 한 팀과 계속 일하고 있다.

이런 협력체계를 만들기까지 15~20년 정도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시공사 한 곳을 알기 보다 외장, 창호, 골조, 전기, 설비, 금속, 목공 등 시공의 개별 영역에 속하는 팀들을 알고 있다. 이들로부터 도움과 힘을 얻는다. 우리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주위에서는 ‘언제 시공사 차릴 거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그리고 그동안 두 명의 사진 작가와 함께 일해왔다. 사진 작가는 협업자라기보다 우리가 기대는 조언자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가 대신해서 사진으로 말해주고,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전반기에는 진효숙 작가와 주로 작업했고, 후반기에는 김주영 작가와 작업하고 있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김주영 작가는 2D 그래픽,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사진은 취미였다. 그런데 창의적인 시선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건축에서 찍을 법한 뷰가 아닌 낯선 장면이 많다. 그 중에 ‘이런 새로운 시각으로 찍었네?’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있고, 왜 찍었는지 의문이 드는 장면도 있긴 하다. 어쨌든 그 와중에 보석 같은 장면이 탄생할 때마다 서로 좋아하고 만족한다. 사진 작가들도 우리의 성향, 방향, 내용 등 이해가 맞아 떨어져야 잘 표현하거나 볼 수 있는 사진을 만들어낸다.





확산하는 관심

공예와 조형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내 성향이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다. 사이건축에서 SKMS 연구소를 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원에서 배운 피상적인 개념을 앞세워 설계했었다. 그 다음에는 가구, 조명, 손잡이, 디테일처럼 손으로 만들거나, 다양한 재료에 대한 쓰임을 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형대학 학부 시절, 큰 기계 톱으로 나무와 쇠를 자르고, 돌을 깎고, 흙으로 도자기 빚는 작업을 4년 내내 하다보니 그런 것이 내게 친숙했고 점차 건축과 접점을 살리게 된 것이다. 빛을 쓰는 방식과 조형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런 접근법을 통해 시각적으로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드러나기도 하고, 쓰임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 자극적이어서인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최근 지인들이 나의 예전 작업에서 두드러졌던 공예적인 부분을 짚으며 ‘그런 접근법을 좋게 봤었는데 왜 더 이상 하지 않는 거야?’라며 아쉬워하곤 한다. 분명한 것은 그 관심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새로운 관심사와 중첩되거나 조연처럼 뒤에서 받치고 있을 뿐이다. 매 프로젝트마다 조형에 대한 관심이나 표현, 제스처가 분명히 있고,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조형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동네 안의 경계들

나무282와 조은사랑채 작업을 하며 관심사가 또 한 번 바뀐 셈인데, 이 작업들을 통해 동네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를 들어 실제 구성원인 가족 관계와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건축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논하고 작업으로 풀어간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 낼 때 건물 내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공용 공간인 도로와 건물 사이, 대지 경계석이 있는 안쪽이면서 건물 외벽의 바깥쪽인 사이 공간에 관심이 많아졌다. 이런 땅은 대부분 관리하기 편한 재료로 포장하고 끝낸다. 나는 개인의 영역에서 공공에 대한 관심을 드러낼 수 있는 접점으로 보고 더 많이 신경쓰려 한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홍은동의 경우, 이 동네에 40~50년 산 연로한 분이 많은데, 길을 걷다가 쉴 수 있는 장소가 없다. 그래서 우리 대지의 적절한 위치에 식재하여 그늘을 만들고, 조명이나 의자, 평상 같은 어반 퍼니처를 두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그런 것은 국가나 지자체에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할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힘이 미치기 어려울테니 우리가 내어줄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실천하려 한다.


동아시아의 건축가들

2012년 말, 에이라운드건축을 시작하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 중에 건축가 인터뷰를 가장 먼저 실천했다. ‘하다가 재미없으면 그만 두면 되지 뭐’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인데 여전히 하고 있다. 한국 건축가 인터뷰를 일본어로 출판해서 일본 서점 책꽂이에 꽂겠다는 무모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일본에 방문했을 때 서점 한쪽 서가에 일본 건축가 인터뷰 책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 상황이 너무 부러웠다. 물론 그만큼 소비되는 시장이 있으니까 수많은 책과 매대가 만들어졌을 테고, 나는 그곳에 내가 만든 인터뷰 책을 두고 싶었다. 아직 출판하진 못했지만, 기회가 있다면 진행하고 싶다.

인터뷰의 맛은 시점(時點)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한 시점을 중심으로 앞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까 사람에 따라서 그 폭이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계획 단계에서부터 한 건축가를 5년 정도의 간격으로 세 차례 정도 만나려 했다. 장기간 동안 만남을 거듭하며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묻고, 현재와 미래를 말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노출된 이들은 제외했고, 나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었고, 내가 인터뷰를 하자고 했을 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도 중요했다.

처음에는 선배 건축가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건축 매체는 아무래도 신인을 발굴하는 것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고, 새로운 얼굴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자연히 중견 건축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목천건축아카이브에서 구술집을 지속적으로 발간하여 몇몇 원로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그것은 옛날 이야기를 한 번에 풀어놓는 것이라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시간 간격을 두고 인터뷰를 여러 차례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섭외에 어려움이 있어 김준성 선생 정도만 진행했었다.

일본 건축가 인터뷰를 하면서는 여러모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의미가 깊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2012년 한일 현대건축 교류전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연락하게 되었고, 나루세 이노쿠마 건축과는 인터뷰를 한 인연으로 같이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또 그들의 친구와 연결이 되기도 한다. 스키마타 건축의 나가사카 조, 디앤디파트먼트와 같이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를 디자인하기도 하고, 네덜란드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만나기도 했다. 계속 접점이 생기고, 자극도 된다. 그들이 유럽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 건축계를 다시 돌아보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건축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진행해 일단락 했다. 제주 무진도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색다른 기후와 건축의 관계를 생각하다보니 남쪽에 있는 해양국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과 일본 중심에서 동남아시아로 관심을 확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건축계는 동남아시아 시장, 문화, 건축에 관심이 전무하다. 반면 일본 건축계, 기업, 비평가 들은 동남아시아에 관심도 많고 정보도 많다. 사람과 관심이 차곡차곡 모이다 보니 이 지역의 건축 관련 이슈를 선점하게 되었다. 우리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2020년 초부터 동남아시아 5개국을 지정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획에 많은 시간을 투입했고 리서치도 많이 했다. 어느 나라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 왜 그 나라를 선택해야 하는지, 그 나라에 어떤 건축가를 인터뷰할 것인지 등등 모든 단계가 고민의 연속이었다. 각 나라에 건축가가 수천 명이 있을텐데 그 중에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어떤 데이터를 통해서 적합한 사람을 찾을 것인지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건축가가 국가대표까지는 아니더라도 향후에 어떤 대표성을 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뷰나 아카이브 사업을 수행하는 목천김정식문화재단, 서울대학교 등의 인터뷰 프로젝트를 들여다보았다. 아쉽게 그들도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했고, 우리도 자체적인 기준을 세워 진행했다. 그러던 차에 「SPACE」로부터 1년 연재를 제안 받았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니 여러 장벽에 부딪혔다. 우선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서로 서투르다보니 내용의 이해나 전달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인해 서면 인터뷰 방식을 택했는데, 이 방식이 갖는 한계가 명확했다. 많아야 두 번 정도 서신을 주고 받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럼에도 인터뷰 덕분에 동남아시아 건축계의 분위기나 관심사를 알게 됐다. 한국과 약간의 교집합도 있고, 그들이 한국 건축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보이고, 자극도 되고 반성도 됐다.
인터뷰 프로젝트는 내 나름대로 건축계에 자극을 주는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방식이다. 건축가 대 건축가로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각자가 생각을 거듭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드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남아시아 건축가 인터뷰가 끝났으니 김수영(숨비), 서재원(aoa), 김사라(다이아거날써츠), 이정훈(조호) 등등 예전에 만났던 국내 건축가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지역의 건축가 리서치도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