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 Living



주거공간

Q 오랜시간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실내 공간 특히 ‘집'에 대한 요구가 더욱 구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체감됩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네 집에 필요해질 공간과 요소들을 꼽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혹은) 코로나 이후, 우리의 ‘집'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요? 특히 공동주택 평면에서 가장 크게 바뀌게 될 부분을 예측해본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박창현 ㅣ 우리는 집에서도 홀로 남겨져 있다고 느끼는 불안을 동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프라이버시의 강조는 이웃과의 단절로 이어지고 고독감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사회적 관점에서 혼자가 아님을 설명해주고, 이는 주거에서도 더욱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타인은 나의 실존에 필수적이고 내가 나를 알아가는 앎에서 집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펜데믹 이후 함께 사는 집의 모습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심리적 끈을 가진 이 시대에 필요로 하는 이웃의 개념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용공간이 더욱 중요하게 되겠지요. 이전의 공용공간인 복도와 계단은 통과하기 위한 공간으로 밖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공동주택에서의 필수 기능인 복도와 계단은 좀더 머무를 수 있고 통과하는 기능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옆집, 윗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 되어 ‘우리’의 개념이 좀 더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생기는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방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화시대

Q 과거에는 TV를 중심으로 가구 배치부터 가족구성원들의 위계, 관계 등이 정의내려지곤 했습니다. 이제는 각자가 자신의 공간, 개인의 TV 스마트폰을 가지며 중앙 집권적인 공간 구성도 변경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기존 공간이 개개인의 필요를 반영하도록 변경될 필요도 있어보입니다. 이처럼 개인화가 가속화되면, 우리의 ‘집’은 어떤 모습으로 재편될 것이라 예측하나요?

박창현 ㅣ 가족의 해체와 개인화의 가속은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만듭니다. 앞으로의 집은 단지 효율성과 경제성을 따지던 집의 모습에서 개인의 색깔을 들어낼 수 있는 도구 중 하나로 변화 될 것입니다. 입주자의 성격과 특징이 부각되고 그것을 더 잘 설명하고 그런 삶과 연결되어 있는 집은 다양한 방법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개인화의 추세는 각 개인의 성격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인류

Q 최근 친구, 연인과 함께 거주하며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거나, 홀로 살면서 동물, 식물과 반려하는 등 ‘가족’의 개념이 바뀌는 모습이 보입니다. 또, 마음에 맞는 이들끼리 함께 살기 위해 동호인 주택을 짓거나, 공유주거로 거취를 옮기며 새로운 공동체를 가족처럼 받아들이는 사례들도 보입니다. 실제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며 이처럼 신개념 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든 사례가 있나요? 그때, 공간을 다르게 디자인하거나 개념을 다시 설정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박창현 ㅣ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시대는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주택의 유형중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와 다가구 다세대와 같은 공동주택은 한 층의 평면이 반복적으로 쌓아 만든 획일화된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물며 서울이나 대구나 제주나 지방의 소도시에 지어지는 아파트의 평면은 어디를 가나 거의 같습니다. 그런 결과는 사용자의 입장이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는 공급자의 니즈나 관점에서 공급되고 그러다 보니 더욱 획일화된 방향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최근 지어진 신화리 주택은 부부와 어린 자녀로 구성되어 있는 두 친구가 하나의 대지를 구매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이 주택은 두 건물로 나누어 져 있지만 마당을 공유하기도 하고 옥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두 집은 하나의 공간으로 계획되어 있고 각 영역별 기능은 움직이는 커다란 벽으로 나누어 지기도 하고 형태가 바뀌기도 합니다.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건물은 짓고 서로의 프라이버시는 지키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아빠들은 아빠들끼리 만나 장을 보러 가기도 하면서 함께 살아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으로 묶여 있던 개념이 좀더 유연한 방식으로 ‘식구’가 생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연

Q 숲세권 집의 가격이 점점 높아지고 발코니, 테라스에 작은 정원을 꾸려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 주중에는 도시에 살지만 주말에는 바다, 산 등 자연과 가까운 지역으로 옮겨 생활하는 ‘반반 생활자’도 등장했습니다. 자연 가까이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이러한 욕망이 집의 형태에 영향을 미칠까요? 바꾼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모시킬까요?

박창현 ㅣ몇 년전 서울에서 일터와 집 사이를 다니며 살아왔던 중년의 부부로부터 주말 별장을 의뢰 받았습니다. 그들은 일에 지쳐 주말에 쉴 수 있는 산속에 대지를 구입해 산에서 사는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 주말주택은 주변에 두세집만 있는 조용하고 나무들로 둘러 쌓여 있는 장소였고 저희는 지형과 주변 나무들을 최대한 그대로 두고 그 사이사이를 이용하고 경사를 이용해 높이가 다른 3개의 레벨로 이루어진 집을 지었습니다. 온전하게 일과 도심에서 벗어나 숲과 그 곳에서의 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얻게 되었죠. 처음 2, 3년 동안은 주말에서 지내다가 서울에서의 일 양을 조금씩 줄여 지금은 목,금,토,일,월까지 4일을 머무르는 장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일로 지친 마음과 육체를 숲속에서 치료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건물은 그곳에서 집안일을 줄이기 위해 작게, 숲을 조망하거나 빛을 받기 위해 커다란 창을, 그리고 외부에서의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건물과 외부 사이 공간을 풍성하게 계획한 것이 앞으로의 주말주택의 방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코노미

Q 지난 2020~2021년은 집의 재테크, 부동산 가치가 유독 대두된 한 해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인테리어와 리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였기도 하지요. 자산의 양(Quintity)과 삶의 질(Quality)이라는 두 가치는 특히 도시에서는 비용을 수반하는 문제인지라, 대개의 사용자는 한쪽을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집의 재산적 가치와 삶의 질적 측면이라는 양극단의 가치를 쫓는 지금의 현상을, 공간을 디자인하는 전문가로서 어떻게 바라보나요? 또, 이런 현상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측하시나요?

박창현 ㅣ 단순하게 양과 질로 나누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점점 1인 세대로 나아가고 있어 자기만의 삶을 위한 집이 앞으로 더 요구되는 시대가 될 것 같습니다. SNS나 시각 매체가 일상화되면서 각자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그만큼의 요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되니 자신을 잘 들어낼 수 있는 특징이 있는 집이 더 필요로 하게 되고, 집의 일부는 공유하면서 경제적 부담도 줄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Q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박창현 ㅣ 타인의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경청’하는 것이 장점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경청하는 능력을 갈수록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점점 더 에고에 집중하는 것이 사회가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이 더욱 경청을 하기 어렵게 내몰게 됩니다. 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언어와 고민을 듣고 일을 진행 해 나갑니다. 결국 디자이너는 혼자만의 작업이 아닌 협업의 관계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Q 자신의 캐릭터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물건이나 색, 아이템을 꼭 하나 꼽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창현 ㅣ 부모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작은 도자기입니다. 오래된 무심하게 생긴 도자기는 매끈하고 완벽한 형태와 마감과는 동떨어져 편안한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줍니다. 부모님이 오랜 시간 봐왔던 그리고 애정을 가졌던 그 물건에서 부모님의 따뜻함이 느껴져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전해오는 온기는 다른 물건에서는 얻을 수 없는 유일한 물건이기에 더 애착이 갑니다. 보잘것 없지만 툭 만들어진 편안함을 닮고 싶습니다.



Q 최근 공간디자인 트렌드는 건축, 인테리어, 산업디자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문가로서 의견이 궁금합니다. 또한, 건축과 인테리어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도요.

박창현 ㅣ 그런 각각의 영역은 우리들이 임의로 만든 결과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경계는 애초에 없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목적과 방향에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각각의 영역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관점에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건축과 인테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경계는 이미 사라졌고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너무 많아 졌기 때문에 그것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Q 나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과 이유는? 사람과 사물, 브랜드나 매체 등 분야와 관계 없이 자유로이 답변해주세요.

박창현 : 영감을 받는 것은 일상에서 항상 받게 됩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순간들은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있어 왔습니다. 최근 피아노 연주자인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바하 곡 연주를 들었는데 그동안 들어왔던 곡과는 전혀 다른 그 만의 해석으로 접근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느끼면서 자극도 되었고 또 다른 관점의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Q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요? 도시가 주는 의미나 맥락에 대한 답변도 좋고, 개인적인 취향이나 에피소드가 묻어나는 코멘트도 환영입니다.

박창현 ㅣ 서울의 아이덴티는 역사와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도시라는 점이 가장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고 있는 한강과 북한산 자락은 어느 도시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외국 친구가 와서 서울을 경험하는 과정에서의 북한산은 도시라는 매력을 색다르게 경험하게 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Q 현장, 사무실 이외에 자주 찾는 공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창현 ㅣ 한강입니다. 저는 부산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바다의 스케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바다에 비할 수는 없지만 폭이 1km가 넘는 큰 강은 도시속에서의 답답함을 잊게 해줍니다. 그리고 한강 변을 따라 자전거로 달리다보면 다양한 경험과 기분전환이 되기도 합니다.



Q 가장 최근에 마무리한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박창현 ㅣ ‘연암빌딩’입니다. 2018년 설계하면서 3층까지의 근생과 4층5층에는 클라이언트가 사는 집이 있었는데 2층으로 사무실을 옮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9년 겨울 건물이 완공되면서 건축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희에게 2층에 입주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먼저 해 주셨습니다. 설계한 건물에서 살아보거나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먼저 제안해 주셔서 그동안의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에이라운드건축이 1층과 2층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설계할 때 의도했던 내용을 계속 경험하면서 저희가 생각하는 방향이나 내용에 좀더 힘을 실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좋았던 경험입니다.



Q 그간 작업해오며 당신에게 인사이트를 준 클라이언트가 있나요? 어떤 영감, 에피소드였는지 독자들과 함께 공유해주세요.

박창현 ㅣ 아주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그중 한 분은 구미의 삼일문고 클라이언트입니다. 처음 만나서 서점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걸겠다고 이야기하시면서 1년후 서점 리노베이션 설계를 위해 다시 오시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1년뒤 두꺼운 책2권을 만들어 오셨는데 그동안 자신이 직접 가본 전국의 서점 주인과의 인터뷰 기록과 사진, 그리고 해외 사례에 대한 리서치를 모은 책을 직접 만들어 오시면서 좋은 서점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했던 구미가 마음에 계속 걸리고 구미에서 앞서 했던 사업의 수익을 어떤 방식으로라도 구미 시민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서점을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에 저는 마음이 빼앗겨 버렸습니다. 서점은 책을 파는 일이 주된 기능이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문화 활동을 위한 강의실, 작은 전시실 등 다양한 문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지역서점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슬럼화 되었던 동네가 지금은 삼일문고가 생기면서 동네가 변화하고 있고, 무엇보다 구미 시민들이 좋아하는 공간으로 사랑받는 지역서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자신만의 디자인 1순위 원칙은 무엇인가요? (디테일, 비율, 체적, 쾌적함 등)

박창현 ㅣ디자인의 1원칙을 정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디자인 과정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해결과 관점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에이라운드건축에서 생각하는 1순위 원칙은 ‘사람의 경험’입니다. 사람들의 경험과 경험으로 인한 변화는 일을 해 나가는 출발점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은 다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Q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감재, 창호, 가구, 조명 브랜드가 있나요? 어떤 브랜드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창현 ㅣ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브랜드는 특별하게 생각나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계획하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디테일과 물건을 만들어주는 ‘oo금속’입니다. 몇 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저희가 생각하는 많은 부분을 만들기 위해 디테일을 함께 고민해주고 손으로 직접 만들어 주는 협력업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