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Design
함께 살아가는 커뮤니티형 주거 써드플레이스



한때 제3의 장소로 스타벅스가 화제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집이나 일터가 아닌 중간 지대라는 포지션으로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닌 문화를 파는 곳으로 마케팅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제3의 장소가 점점 더 세분화 다양화하는 추세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코워킹·코리빙 스페이스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에이라운드건축 박창현 소장이 제시하는 ‘써드플레이스’는 새로운 유형의 주거 모델이자 제3의 장소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거주 형태와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문을 연 써드플레이스 전농(유일주택) 홍은 홍은2는 에이라운드의 실험을 담은 결과물이다 일반적으로 주거는 그 형태에 따라 크게 아파트 단독주택 그리고 저층형 집합 주택(다세대·다가구 주택)으로 나뉜다.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박창현 소장은 저층형 집합 주택 설계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이웃 간의 커뮤니케이션 단절 문제를 건축적으로 풀어보려고 시도했다 적은 투자로 최대 면적과 최다 수익을 추구하는 건물주 입장에서는 방 면적을 줄이는 대신 복도나 진입로 등 주택의 공용 면적을 넓히려는 그의 아이디어가 터무니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용부에 투자를 하니 주변 시세와 비교해 평당 20% 비용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입주하고 싶어 하는 세입자들이 나타났다 박창현 소장은 자기 집 현관이 아니라 건물의 출입구부터 내 집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읽었다.

그래서 2019년부터 ‘써드플레이스’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공동체의 회복을 꿈꾸는 실험에 착수했다. 써드플레이스 초기 프로젝트 전농(2019)과 홍은1(2020)이 그의 아이디어에 공감한 건물주와의 협업으로 완성했다면 가장 최근에 완공한 홍은2는 조금 더 특별하다. 완공 이후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안 되면 입주자 간의 커뮤니티 형성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박창현 소장이 직접 건물주가 되어 부지 결정, 건축설계부터 입주자 모집, 커뮤니티 프로그램까지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 홍은2이기 때문이다. 서울형 공동체 주택 인증을 받은 써드플레이스 홍은2는 서울시로부터 사업 자금에 대한 금융 지원을 받았다. 공동체 주택 입주자에게도 다양한 혜택이 돌아가는데 주변 시세보다 보증금은 높지만 낮은 금리로 전세 대출이 가능하며 월세도 무척 저렴하다. 사회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심리적 경계proxemics 이론에 따라 써드플레이스 홍은2의 복도 출입문이 마주보지 않게 각도를 조정하고 단차를 둬서 각 세대만의 영역을 만들었다.

건축가는 사적 공간(내부)과 공적 공간(외부)을 나누고, 공적 공간 안에서도 다층적 레이어를 만들어 세대별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를 세분화했다. 예를 들어 바로 옆집과 공유하는 현관 앞, 한 층의 모든 세대가 함께 쓰는 복도, 전 세대가 공유하는 1층 공용 라운지 등 교집합되는 공간을 현관문이 열리는 각도를 조정하거나 단차를 두는 등의 건축 디자인 장치를 통해 구현한 것이다.
써드플레이스에서 건축ㆍ디자인으로 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커뮤니티의 효과를 검증했다면, ‘일월일식一月一食’은 홍은2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프로그램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모든 세대원이 라운지에 모여 다 같이 밥을 먹는 모임이다. 정기적으로 한자리에서 동일한 멤버들과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고 신뢰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한 건물에 사는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갖게 된다. 우리가 도시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경험의 창구가 바로 ‘일월일식’ 프로그램인 셈이다. 그렇기에 입주자들이 꼭 참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집 시 사전 안내를 해서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만 신청할 수 있었고, 3회 이상 빠지면 입주 보증 기간인 2년 이후 계약 연장이 안 되는 다소 엄격한 규정이 있다 그래서 써드플레이스 홍은2는 입주자를 모집할 때 무척 신중했다고. 박창현 소장은 입주 신청서를 통해 서울시 공동체 주택에 대한 자신의 생각 유사 커뮤니티 활동 경험 입주 희망 이유, 공동체 활동 계획을 물어봤다. 이후 직접 입주 희망자를 만나 대화하면서 커뮤니티 생활에 적합한 인물을 가려냈다. 입주자들은 도시 정원을 가꾸는 방법을 알려주는 세미나를 듣고 직접 텃밭을 가꿀 1년 계획을 함께 짜보기도 하고 베이킹 수업에도 참여했다. 홍은1과 거리가 가까워 두 곳에 사는 입주자들과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앞으로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동네 주민들에게 간단한 식사를 챙겨주는 ‘아침 든든’ 프로그램도 진행해볼 예정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 같지만 더 살기 좋은 커뮤니티를 꿈꾸는 써드플레이스에서는 모든 게 다 가능하다 도시에 이와 같은 모델이 많아질수록 거주지를 자산 가치로만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 공간으로 이해하는 인식이 자리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