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que Magazine
인터뷰어 : 연암빌딩은 본래 현재 바로 옆에 있는 건물과 쌍둥이 건물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나요?
박창현 : 이전 60년만 하더라도 개인 건물 짓기가 쉽지가 않다 보니 시공사들이
주변 건물들을 함께 시공하는 예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동네에 가면 비슷한 유형의 건물들이
군집을 이루는 예를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곳도 당시 유행하던 유럽식 주택의 유형을 가지고 있는데
반지하와 입구 계단, 그리고 기와 지붕은 70년까지 유행하던
단독 주택의 유형이었습니다. 이곳 필지에도 옆 필지와 같은 크기와 조건에 의해 대칭 형식으로 똑같은
건물이 지어졌고 남겨진 옆 건물과 새로운 건물과의 연계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설계를 진행 했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옆 건물은 세 개의 회사가 들어와 사무실로 임대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어 : 벽돌이라는 소재 선택과 층별 화단 조성은 과거 건물의 외관과, 바로 앞에 심어져 있었던 목련나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간의
기억성을 보존하는 작업이라고 읽혔는데요. 에이라운드 건축에게 어떤 의미의 작업이었나요?
박창현 : 건축은 다른 예술과 다르게 대부분 누구나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건물 앞을 지나다녔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강한 인상을 주는 요소는
시간이 지나도 지워 지지 않습니다. 좁은 도로 앞에 도로의 스케일과 다른 아주 큰 목련 나무는 이 골목을
표현하는 이미지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억의 중첩에서 여러 요소들, 산재된 재료와 형태들은 이 골목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격이며 모두의 기억입니다. 우리는 그런 기억의 잔재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요소와 새롭게 들어가는 요소 사이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결국 건축의 값어치를
결정짓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요소를 어떻게 재 구성하고 재 해석하는가에 대해 몇 가지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부분이 작은 영역에서는 동네와 넓게는 도시를 이루는 중요한 인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희의 작업의 시작은 어떤 스타일을 표현하는 건축 언어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고 단지 땅의 구체적인 문제나 구축적인
언어를 주변에서 찾아 변화를 제안합니다. 이런 방식이 일의 방향과 폭넓은 논리적 결과로 진행될 수 있고
공간에 대한 기억의 연결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인터뷰어 : 연암빌딩 외장 소재인 벽돌은 여섯가지 방식으로 활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여섯가지 방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박창현 : 글쎄요 여섯 가지라는 가지 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앞서 이야기 했던 내용과 같이 우리가 이 골목에서 찾아낸 요소를 바탕으로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전부터 있던 벽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다른 재료와 변화되는 현실과 관계 맺어 왔고 우리는 그 벽돌을
다시 새로운 현실과 연결시켜 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료와 재료가 공간과 만나면서 여러
요소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재료를 쓰기보다는
몇 가지의 재료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재료의 좋고
나쁨의 가치는 정할 수 없고 그 재료가 잘 드러나는 특징을 표현하는 것으로 출발했습니다. 벽돌은 쌓는
재료이며 흙을 소성해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에 착안해 쌓을 때 나오는 줄눈의 간격이나 수평성을 강조하기 위해 수직 줄눈을 없애는 것이라든가, 줄눈에 일부 질감을 넣어 빛에 반응하는 결과를 보기 위해 거칠게 표현 하거나,
줄눈에 색을 넣어 일체감이나 양감을 주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워서 나온 결과물이라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에서 벽돌의 절단면을 보여 주고 이것은 얇기 때문에 쌓지 않고 면에 붙여서 표현하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벽돌의 물성을 보여주면서
그 가치를 극대화 시키고 싶었습니다. 이중 몇몇 부분은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훗날 확신을
가지고 진행하다 보면 현장에서 수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사 중에 지켜보면서 벽돌공과 이야기 하면서
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여지를 남겨두는 편입니다. 어려운 점은 작업에서 어느 부분을 남기느냐를
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인터뷰어 : 한 가지 소재를 활용한 건물의 다양한 얼굴을 만드는 작업이 흥미로웠습니다. 최근 건축 입면이 매끈함을 지향하면서 도시의 기억이 지워지고 이야기하신 바 있는데요. 소재의 다양한 활용과 도시의 기억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박창현 : 저희의 작업에 사용되는 재료 중에 비싼 재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미 늘 사용했던 재료를 시대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는 결과물을 더 선호합니다. 그래서 이전에 써왔던
재료를 그 프로젝트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재료는 점점 더 표준화 규격화 되다
보니 생산자 입장으로 재료가 많이 생겨납니다. 더 질감도 없어지고 표면이 매끈한 재료와 설치 방식이
많아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시의 색깔이나 모습도 그와 같은 모습이 되고 재료에서의 이야기는 점점
사라져 가는 삭막한 결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 얇고 더 투명하고 더 매끈한 재료는 그만큼이나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워진 기억 속에서 우리는 점점 역사에 대한 중요성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인터뷰어 : 연암빌딩 내부공간, 특히 복도와 계단참에서 빛과
어둠의 조절을 통한 농담의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공간의 어둠이 거주자와 방문자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셨나요?
박창현 : 일반적으로 분위기는 결국 요소들 사이의 관계와 영향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내부가 시작되는 이곳 입구에서는 감정적인 질서 그리고 심리학적 질서 관계가 주는 풍부함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건축에서 빛은 공간으로부터 결코 떼어 낼 수 없는 중요한 경험입니다. 그런
빛은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다음 공간으로 연결하거나 또 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전초가 되기도 합니다. 어슴푸레한
빛으로 꽉 찬 공간을 지나다 보면 공간이 밀도 있게 느껴지며 멀리 계단 윗 쪽에 있는 빛을 향하게 됩니다. 심리적으로
압축된 느낌이며 높은 천장은 그런 심리적 변화를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만 있습니다. 밝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도시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 처음 방문할 경우 어둠에 대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4층까지 도달하게 되면 그 기분은 좋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어두운 공간을 빨리 지나 다음 목표하는 공간으로 가고 싶은 심리가 그 거리를 짧게 만들어 주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눈에 보이는 밝은 영역까지 도착해서 계단을 돌면 다른 풍경과 다른 빛이 맞아줍니다. 처음
대문을 거쳐 들어오면 실내로 인식되던 공간은 어느덧 외부와 맞닿게 되고 바람과 찬 공기가 우리를 인도합니다.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과정은 하늘이 보이게 되면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연결되며 4층은
내밀화된 외부 공간으로 사적 영역이 됩니다. 이 공간은 모두 빛과 공간의 개방성으로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처음 어두웠던 공간은 4층에 오게 되면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됩니다.
인터뷰어 : 연암빌딩 1층은 플렉시블한 공용 공간인 제로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깊이감이 돋보이는 공간이라고 생각되었는데요. 제로투원
설계 시 핵심적인 요소는 어떤 부분이었을까요?
박창현 : 1층은 이전의 건물에 반지하가 있었고 그 레벨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도로에서 연결되는 1층의
입구는 작은 화단으로 연결되고 문을 열면 낮은 레벨의 바닥이 인지됩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높이는 자신이
자연스럽게 높은 레벨에 서있는 상황이 되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 높이는 계단 4단으로 그리 깊지 않은 높이 인데 1층 공간의 전체 길이와 폭에 의해
높이를 정하게 됩니다. 폭과 높이의 비율은 1:1이며 폭과
길이는 1:3의 비례로 짜여 지게 됩니다. 좋은 비례는 공간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자연스러운 형태에 대한 요구는 언제나 있지만 공간의 비례는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연결시켜주는 매개이기도 합니다. 공간의 깊이감을 드러내기 위해 앞과 뒤에 큰 유리를
두고 양쪽 벽면에는 창이 없는 솔리드 한 공간을 만들어 그 공간감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인타뷰어 : 에이라운드 건축이 그간 펼쳐온 작업에서 조경은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암빌딩 역시 제로투원의 뒤편과 층별 화단 등 다양한 곳에 조경을 배치했는데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박창현 : 이번 조경 작업은 안마당더랩의 이범수 소장님과 함께 했습니다. 바로
직전에 양평에 있는 <신화리 두 집>의 조경 작업을
해주셨는데 건축의 완성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있던 목련나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었고 건물의 입면에 깊이감과 함께 질감 그리고 움직임을 주는 방법으로 식물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다만 각 단의 높이와 깊이는 설계 단계에서 결정하고 조경에서 내외부에서
보는 식물이 각각 다른 풍경과 계절감을 전달해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결과로 각
층의 빛의 양과 높이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질감의 식물들을 계획이 되었고 지금은 식물을 가꾸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식물과 대화하고 가꾸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식물이
있는 각 공간은 그 높이와 길이가 달라 외부에서 보는 층의 개념이 사라지게 되는 효과도 건물의 인상과 닮아 있습니다.
인터뷰어 : 연암빌딩의 출입문, 복도 계단참의 창틀, 건축주 가족 주거 공간의 등에 목재 루버를 사용하여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시야는 열려 있지만,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시선은 차단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을까요?
박창현 : 재료의 선택에 있어서도 처음 이야기 드렸던 것과 같이 기존 건물에서 사용된 재료로부터 연결됩니다. 벽돌과 함께 70년대 많이 사용되던 목재가 실내에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재료가 주는 따뜻함은 지금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목재를 사용하되
주변 재료인 콘크리트와 벽돌, 그리고 작은 자갈 바닥과 어울릴 수 있도록 목재를 사용하였는데 특히 빛이
직접 접하는 부분에 사용하였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은 루버로 된 목재 질감 사이를 통해 잘게 분할된
빛으로 내부로 들어옵니다. 하나의 큰 덩어리의 빛 보다는 세밀하게 나눈 빛이 주변과 더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방향성을 주기 위해 목재 루버의 각도를 조절하면서 빛이 들어오는 시간대에
따라 내부로 들어오는 빛도 조절하게 되었고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단이나 연결도 의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연이 주는 일상의 모습을 다시금 일깨워 줄 수 있는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저희가 하는 작업에 틀림없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뷰어 : 연암빌딩 설계 시 건축주의 핵심 요구 사항은 어떤 게 있었나요?
박창현 : 사실 건축주와 처음 시작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골목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누구의 관점을 우선적으로 할 것인가? 공적
영역에서 바라볼 때 이 건물은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대신 4층을 오르는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재료의 선택은 어떤 기준으로
정 할 것인가? 등 구체적인 요구 보다는 고민 해야 할 영역을 정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정하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그런 큰 틀을 정하고 나니 나머지는 그 기준에 따라 자연스럽게 요구사항들이
정리되었습니다.
인터뷰어 :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과 그 해결과정이 궁금합니다
박창현 : 아시다 시피 건축의 과정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만들어 집니다. 혼자만의
판단이나 결정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저희 사무실이 일하는 방식과 연결되는데 건축이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결과에 이르기까지 저를 비롯해 프로젝트 스텝, 건축주, 시공사가
비슷한 비율로 결과에 참여합니다. 그것을 조절하는 역할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능하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선택을 남겨 둡니다. 중요한
결정들이 만들어 지고 난 이후 상황을 살펴가며 결정되지 않은 선택들을 하면서 마무리가 됩니다. 건축이
쉬웠던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점점 어려워 집니다. 그리고
건축은 모순과 모순되는 이익에 관한 작업입니다. 시공사와의 조율에서는 그 부분이 가장 어렵고 그런 이유로
건축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양한 제약과 모순 덕분에 현장에서 상상력이 발휘 되고, 해결책마저도 상호 마찰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만큼이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