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건축

글을 시작하며 얼핏 보기에 춤과 건축의 접점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춤은 시간이 개입된 움직임이 필수적이지만 건축은 물리적으로 고정된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접점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 영역 모두 몸을 매개로 공간을 점유한다는 점, 그리고 부분적이긴 하지만 몸과 공간 사이를 매개체로 확장이나 연결한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접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건축에 있어서도 공간만 생각해서는 접점을 찾는 결과에 다다르기 어렵습니다. 그 공간을 점유하거나 사용하는 주체인 몸이 없이는 그려나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착안하여 몇 해 전 학교에서 학생들과 몸의 움직임과 공간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며 생각 했던 내용을 이야기 한다면 춤과 건축과의 연결점을 설명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움직임과 공간

몸의 동작이나 춤을 건축 수업에 연결했던 시도는 당연히 처음이 아닙니다. 기억나기로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0년대 초 모더니즘 건축의 시발점이었던 바우하우스에서 무용가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에 의해 건축과 연계된 춤에 대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교육 철학이 건축을 주축으로 도시, 회화, 조각, 공업 디자인, 등 시각 예술 분야에 영향을 미쳤는데 그런 배경에는 음악이나 무용 등 다양한 분야와의 연결에 대한 필요성을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슐레머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추상과 기계화(메카니컬 발레 Mechanical Ballet)로 설명하며 무대 디자인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바우하우스에서 진행 하였습니다. 그러한 예술적 작업에서 무용수와 공간 사이에 놓인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무대에서 무용수의 움직임과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인간의 움직임은 중력에 영향을 받기에 그 한계를 바탕으로 무용수가 보여 줄 수 있는 회전의 횟수나 공중에서의 머무르고 이동하는 거리 등 시간과 연결된다는 점이 수업 내용 중 하나이었습니다. 우리는 수업에서 이런 점을 가지고 학생들과 동작이나 중력에 제한되는 몇몇 움직임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 동작의 움직임은 공간의 크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움직임의 범위와 함께 손이나 발 그리고 시선으로 공간의 크기를 확장하기도 하고 공간의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한명의 몸동작에서는 벽과 바닥을 사용하면서 공간을 구획하는 물리적 조건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직선으로 뻗은 팔과 다리 동작으로 강한 힘을 공간에 표현하기 하고, 둥근 호를 그리는 팔의 형상은 공간의 부드러움은 전달해 내기도 하면서 공감각적 흐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학생이 함께 표현하면서는 더 구체적인 공간의 형상과 확장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몸과 몸이 떨어지면 안과 밖의 공간이 만들어 지고 몸과 몸이 붙으면 서로를 지지하며 구조적 해결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중력에 반하여 서게 될 때 몸이 서로를 지지하면서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구조적 관점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는 건축에서도 피할 수 없는 조건이며 꼭 해결해야할 부분입니다. 학생들은 몸과 건축에서의 구조적 해결을 위해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힘의 흐름을 이해하며 인장력(당기다)과 압축력(밀다)에 대한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체의 운동 감각적 사고를 하는 것은 몸을 움직이며 그것의 이미지나 기억된 동작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업 중에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공간과 몸의 상대적인 관계 그리고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구조를 학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체 확장

춤이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춤과 공간은 휴먼 스케일이라는 감각이 함께 더해지는데 이는 몸이 공간을 감싸거나, 놓여 지거나, 접촉 할 때의 상대적 크기와 감각입니다. 물리적인 판(벽이나 바닥)에 의해 공간이 분할되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는데 몸이 개입됨과 동시에 공간은 휴먼 스케일에 의해 정의됩니다.

우리는 그 다음 단계에서 동작과 함께 연결체를 가지고 조금 더 큰 공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연결체를 생각한 것은 우리 몸에는 ‘고유 수용 감각’이 있는데 없어진 몸의 일부나 무생물체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내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리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그 후에도 계속 없어진 부위에서 통증이나 가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손이나 발에 연결체를 이용해 몸의 확장을 실험 하였습니다.

1927년 오스카 슐레머는 그가 안무한 무용 <막대춤 pole dance>에서 무용수인 아만다 폰 크라이비히의 팔다리와 몸에 12개의 막대를 묶고 춤을 추게 했습니다.




막대의 길이는 서로 달랐지만 3m길이의 막대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 춤을 재구성한 데브라 맥콜은 춤을 추는 무용수에게 몸의 감각을 위해 막대를 묶고 연습하였는데 점차 막대가 자신의 일부로 느끼면서 불편함이 사라진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도를 바탕으로 몸의 일부에서 공간을 만들거나 분할하는 과정으로 자신의 몸이 연장되면서 그로 인해 공간의 확장까지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또한 건축에서 본다면 몸의 연장으로 일종의 가구 역할을 하는 사물도 몸에 접하게 됩니다. 바닥으로부터 떠 있게 하기 위한 장치나 벽과 접점을 만들어서 지각하는 범위를 표현하기도 하면서 학생들은 공간과 더욱 밀착되는 경험을 합니다. 결국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흔히 보는 가구는 몸과 공간을 연결시켜 주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어떤 기능을 위해 몸에 사물(가구)이 접하게 되는 순간 가구는 몸과 공간을 감싸는 공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됩니다.




그리고 필요한 기능을 위해 몸은 움직이며 공간(또는 공기)을 가르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동작으로 연결됩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가구가 직접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몸의 연장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생각한 공간과의 접점을 위한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는 기능을 위한 하나의 실험적 동작을 만들어 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형태감과 몸, 몸과 공간, 그리고 움직임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과 공간이 서로 상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양한 작용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마주한 사물의 세계로, 혹은 우리를 둘러싼 사물로서의 세계로 건축을 이해합니다. 또한 몸의 질서, 율동적인 움직임, 형태, 특히 몸이 표현하는 다양한 동작들은 공간 체험의 역동적인 배경을 이룹니다. 공간이나 건축을 인식하고 사용하는 것, 즐기는 것, 건축물의 불편함을 참는 것, 어떤 것을 측정하거나 바라보는 것, 그리고 만들고 변화 시키는 것 등 모든 것이 행위의 특성을 지닌 과정입니다.




행동 유도성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몸의 형태와 움직임의 구조는 건물의 구조와 관련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훌륭한 공간이나 건축은 신체의 움직임을 불러일으킵니다. 신체 동작을 유발하는 추동력이 바로 공간이 표현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계는 안무와도 같은 특징을 지녀야만 합니다. 즉 시간적 차원이 공간 구성에 포함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동작이 공간과 직접적인 연결을 가정한다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공간은 동작을 유발 할 수 있습니다. 공간에 의해 ‘행동 유도성 affordance'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건축의 형식을 신체 동작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동작과 공간이 요소와 요소의 결합체계 속에서 서로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간섭 원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때 사람들은 그 공간이 발휘하는 매혹적인 힘을 알게 됩니다. 특히 실제 동작, 혹은 가능성 있는 움직임 같은 행위의 측면에서 건축 공간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런 경험이 더 강렬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동작되고 그 동작이 공간의 형태와 연결되어 있다면 반대로 어떤 공간의 형태에 의해 동작이 발생되고 그것에 따라 목적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학생들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행동유도성과 공간의 관계를 함께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시퀀스

건축에서 시간과 공간은 때놓을 수 없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이러한 기본적인 경험과 관계 속에서 스케일, 비율, 평면의 배치, 깊이, 구조, 재료 등과 같은 모든 매개 변수들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것들로 생각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하나의 관점으로 이런 요소들은 묶어 줄 수 있다면 그 중 한 방법은 건축의 시퀀스 일 것 입니다.

건축에서도 각 단계별 경험의 변화나 시점 변화의 연결을 시퀀스라고 합니다. 특별한 경험을 통해 건물에 진입하고 어떤 길이로 공간을 통과하고, 올라가거나 내려가며, 드라마틱한 공간의 경험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퀀스는 전체 건물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집니다. 영화나 소설 또는 오페라나 연극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구성이 건축에서는 하나의 공간의 연결에서 각각의 이야기로 전달되는 방식입니다. 각각의 공간의 연결이 건축에서의 극적인 시나리오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몸을 매개로 춤이나 동작은 건축에서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인자이며 연결점입니다. 학생들은 긴 시간동안 동작으로부터 신체의 확장과 공간을 형성하는 방식을 인지하고 몸과 공간의 매개체인 가구와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 영역의 최대 공통점은 창의적 발상으로부터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1. 생각의 탄생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박종성 / 에코의서재 / 2007
2. 오스카슐렘머의 메카니컬발레에 관한 연구 / A Study on Mechanical Ballet of Oskar Schlemmer
3. 공간의 안무 / 볼프강 마이젠하이머 / 김정근 / 도서출판동녘 / 2007
4.건축 구성하기 / 프랑코 푸리니 / 김정은 / 공간사 / 2005
5. 건축과 감각 / 유하니 팔라스마 / 김훈 / 시공문화사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