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라운드건축_ 박창현


서재원(서): 소장님의 작업에 대해서 연관되는 단어를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이 ‘공예’를 떠올릴 것 같아요. 학부 때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그 또한 분명 소장님의 작업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고요. 결정적으로, 미술을 하다가 어떤 연유로 건축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그 계기가 우선 궁금합니다.


박창현(박): 미술, 가구를 하다가 건축으로 넘어온 계기는 다소 일반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전 건축가들은 집도 지으면서 동시에 가구나 조명을 만들기도 하고, 소위 마스터의 개념으로서 접근하는 건축가들의 상이 있었잖아요. 실제로도 그러했고. 그런 부분들을 보다 보니 그 결과물들 중 하나가 가구였습니다. 가구 디자이너로서 수업을 받거나 직업으로 서의 가구 디자이너가 생긴 지가 사실 얼마되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가구를 배우면서 여러 좋은 레퍼런스들을 보게 되었고 결국은 디자인한 사람들은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거죠. 그런 건축가들의 가구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가구가 놓인 건물과 공간들을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죠. 물론 당시에는 건축과 연관 지어 생각하진 않았지만, 가구를 하다 보면 형태와 디자인을 넘어 개념에 대한 부분들, 컨셉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었고요. 가구를 만들다 보면 당연히 스케일과 디테일들을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재료들 간에 만나는 방식, 어떤 하드웨어를 선택해야 할지 등. 당시에는 디테일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건축공부를 하기 이전에도 봤던 것들, 그리고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것들이 결국에는 건축과 연관이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죠. 그 와중에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이 생겨서 기회가 된 거죠.

서: 그럼 그 때 대학원이 생기지 않았거나 타 전공이 건축의 정규교육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더라면 건축을 하지 않았을까요?


박: 못 했거나 인테리어를 했을 것 같아요.

서: 약간 운명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웃음)



감성에서 협업까지 from alone to together

서: 그러면 지금 돌이켜볼 때 가구를 공부했던 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나요? 저는 소장님의 작업을 보면 감성, 감각이라는 단어가 많이 떠올라요. 단순히 감각이 있다, 없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이성’보단 ‘감성’이 먼저 떠오르고, 실제로도 감성 부분이 많이 앞서고 있고 소장님도 이를 의식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가구 중 의자 같은 경우는 사람과의 관계, 자체의 구조, 물성과 촉감 이 모든 것이 건축의 집약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소장님이 가구를 한 것이 장점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약점이기도 한 것 같기도 해요.


박: 감각이라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의 경험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하나는 대학 학부 때 우리는 가구를 공장에 맡기는 게 아니라 모두 직접 만들었어요. 대패질은 물론 톱도 쓰고 하드웨어를 만들기도 하고, 모든 걸 직접 손으로 모두 만들었어요. 이렇게 손이 기억하고 몸에 습득된 경험들이 지금 감각으로 남아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가지는 대학원에서의 경험인데,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한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던 것이었어요. 이성보다는 감성을 가지고 혹은 감각을 가지고 풀어나간 결과물들이 훨씬 더 풍요롭다는 이야기와 그 스튜디오에서의 경험들이 저에게 강하게 남아있어요. 물론 이론적이거나 논리적으로 무언가를 접근하는 것에 약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접근한 결과물은 한계가 있다고 봐요. 이러한 경험들이 지금까지 일부 이어져오고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저는 개인의 성향과 감각들이 결과물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걸 선호하고, 체내에 녹아져 있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끄집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을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서: 한편으로 건축은 가구나 도자기를 만드는 것과는 다르게 자본의 규모가 훨씬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개입되다 보니 건축가만의 감각 발현이 힘들고, 감각만을 가지고 소통하기가 무척이나 힘든 부분이 있잖아요. 감성은 누구나 있지만 다 다르고. 저는 감성이 어느 순간 ‘감각’이라고 명명될 때는 어떤 이성적인 공통분모가 작동한다고 보거든요. 오히려 감성을 바탕에 두면 자신의 한계에 다가오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박: 하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을 해요. 많은 사람들이 개입된다고 해서 성격이 없거나 감성이 녹아져 있지 않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것이 가능한 프로젝트의 영역들을 찾아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상대적으로 성격과 개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영역을 보고 그 일을 하는 거죠. 물론 규모에 대한 한계가 있을 수 있죠. 작은 규모 혹은 개인 클라이언트 이런 쪽으로. 어떤 조건이나 상황들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접근해서 결과물을 전개하는 프로젝트보다는 결국 우리의 정체성을 잘 녹아들 수 있게 하는 결과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추구하고 있어요.

서: 제가 이야기하는 뉘앙스는 의뢰인의 요구사항에 맞춰주면서 자기 색깔은 쭉 빼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요. 완전한 내적 상황에서 모든 걸 자기 안쪽에서 끌어낼 것인가, 혹은 여러 조건 상황들을 역이용해서 필연적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 그 감각이라고 하는 것이 완전히 몸의 감각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감각이 있을 수 있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면, 지하 골방에 우연히 떨어진 빛과 같이 때론 건축가가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어느 순간 그 빛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죠. 한 작가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발현시킬 때도 물론 좋지만 한계가 있을 것 같고, 너무 그렇게 됐을 때는 오히려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박: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받아들일 부분들은 받아들였어요. 알다시피 건축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고, 가구는 혼자 예술 작품처럼 만들고 이를 아름답다고 느낀 누군가가 구매하겠지만, 건축은 엄연히 클라이언트가 있고 여러 명이 협업을 해야 하는 조건에서 나 스스로 완벽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대신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고 조율을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코어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서: 저는 약간 이해가 어려운데, 일반적으로 예술은 다른 산업에 비해서 타자와 교류하면서 무언가를 만들기보다 내적 자아에 몰입하는 부분이 많고, 그에 반해 건축은 가장 교류가 많은 산업 중 하나인데, 혼자서 가구를 만들다 건축 실무에 나와서 갑자기 쉽게 교류를 하고 마음을 열 수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소장님을 보면 전체적으로 사고가 굉장히 열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축가들을 꾸준히 인터뷰하는 것도 그렇고, 마스터 로서의 모습보다 직원들과 평행한 관계를 추구한다는 점이나, 보통은 나이가 들어가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박: 그 또한 여러 경험이 있는데, 제가 실무를 시작한 첫 사무실이 그런 분위기였어요. 건축가가 있고 담당이 있으면 그 관계가 온전히 수평은 아니더라도 1:1의 관계였어요. 딱딱한 조직 구조에서 일을 하지 않다 보니까 처음부터 그런 수평적인 구조가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 사무실을 열면서도 혼자 시작하지 않았고요. 에이라운드 건축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대문자 A를 쓰지 말자, 어라운드에서 에이를 띄고 에이를 소문자로 한 것도 우리의 기본적인 철학이나 자세가 담겨있어요. 마스터로써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같이 무언가를 하고 그 구조에서 각각의 영역들, 스텝과 시공사, 건축주, 협력업체들 모두와 어느 정도 동등한 밸런스를 맞춰가면서 하자고 했어요. 혼자 하는 것은 건축의 구조에서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 명이 하면 한계가 있다고 봐요. 반대로 조금 더 열면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개입할 여지들이 훨씬 더 많아진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른 성격들, 이슈들, 결과물들이 나오면서 그것들을 뭉쳤을 때의 다양함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러한 구조를 잡고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프로젝트마다 관심사가 조금씩 달라도 전체를 묶을 수 있는 주제나 방향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 또한 시기에 따라 조금씩 바뀌죠.


공예에서 공유로 a social share with handcraft


서: 2014년 소장님을 처음 만났던 때는 주로 공예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2-3년전부터는 공예보다는 ‘공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물론 공예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공유에 대한 관심은 어떤 계기로 시작된 건가요?


박: 그 전에 진행해오던 프로젝트들은 주로 개인 주택이나 성격이 조금 다른 용도의 건물들이었다면, 2010년대 초반부터 다가구, 다세대주택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서 장점과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다가구, 다세대주택을 놓고 이런 저런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공용 공간 부분에 개선의 여지가 많아 보였어요. 퀄리티가 있는 쾌적한 공간들을 공용공간에 계획하기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 집 전체가 좋아지는 상황을 봤고요. 의도치 않았던 잉여의 공간들을 사람들이 다양하게 썼는데, 예를 들면 집과 집 사이를 살짝 벌려 창이 있는 알파 공간을 만들었는데 공간이 참 애매했어요.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기능을 넣을 수도 없다 보니, 완전히 기능 없는 공간이 만들어진 거죠. 그런데 얼마 지나고 보니, 각 층마다 그 영역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 영역은 기능을 생각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의도치 않게 나온 잉여의 공간인데, 그 잉여의 공간을 사람들이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건축가가 모든 걸 계획해서 만든 게 아닌 잉여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척이나 잘 사용하고 있구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깥으로, 공용공간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죠. 이런 영역들이 일본에서는 ‘아후레다시’(溢れ出し안에 있는 삶이 넘쳐 밖으로 보인다)라 불리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후레다시가 뭐냐 하면, 일본의 집이 워낙 좁다 보니 자기네 짐들이 안에서 넘쳐나 바깥 공용부로 하나 둘씩 나오게 되는 것을 말해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들었던 잉여의 공간들을 이와 비슷한 개념이라 보았고, 그 후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때부터 행동유도성affordance, 예를 들면 맥주가 있고 옆에 놓인 숟가락으로 맥주를 따게 되면, 옆의 숟가락이 맥주에 의해서 전혀 상관이 없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는 점, 즉 어떤 행동에 대한 방향이 생기면 전혀 상관없는 무엇을 연결시킬 수 있는 힘, 이것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 순간부터 어떤 기물이나 오브제들이 개입되기 시작했어요.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무언가. 그것은 우리가 특정한 사용성을 의도해서 만들어 놓은 게 아닌, 사용자가 어느 순간 필요에 의해서 사용하게 되고 그로 인해 기능이 규정되는 것들을 공용공간에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나아간 것이에요. 어느 사람에겐 그저 신경 쓰지 않는 오브제나 형태로 끝날 수도 있지만, 어떤 순간에 접점이 생기면 그 사람에 의해서 특별한 기능으로 순간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서 그것들을 사용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사람들 간에 서로 접점이 생기고 더 나아가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관심사가 생겼습니다. 그게 요즘의 우리 주된 관심사입니다. 단순히 공용부에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고 그 공간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그 단계에서 한 발짝 더 넘어 어떤 가능성이나 여지를 줄 수 있을까 하는. 하지만 기능을 특정해 두지 않기 때문에 동시에 어렵긴 합니다.

서: 그러니까 이게 좋게 말하면 행동유도성이고, 안 좋게 말하면 공용공간에 조금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보면서 상황을 지켜본다?


박: 상황을 지켜본다!


서: 과연 이것이 사람과 사람을 매개하는 것이 주 목적인가 혹은 미학적 목적이 우선인가 하는 생각은 들어요. 궁극적으로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자 한다 거나 그런 건가요?


박: 어떤 것이 먼저라고 얘기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사회를 매개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요.

서: 제가 이것을 집요하게 물어보는 이유는 지금 나누고 있는 공유, 행동유도성이라는 화두의 시작점이 다분히 작위적으로 보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잉여공간, 사물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더 나아가서 그것이 사회와 매개하고자 함이, 만약 후자가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전자의 이유는 약간 이율배반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전자의 방법은 마치 유투버가 길거리에 의외의 것을 던져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유희적인 실험으로 보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박: 늘 두가지 모두를 충족하는 게 목표입니다. 물론 우리의 개입이 얼마나 더 적극적이었지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더 사회적인 이야기를, 어떤 경우에는 더 미학적인 접근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죠. 결국 어느 순간에는 결정을 하긴 해야 돼요. 무엇을 두기 위해선 어느 정도 규정이 필요해요. 고리를 좀 더 크게 만들 것인가? 결국에는 보다 구체적인 생각을 하는가 혹은 좀 더 추상적인 상태로 두는 것인가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서: 공용공간 혹은 공예의 퀄리티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가요? 사람들을 더 매개하는 것과 공유공간의 공예적 퀄리티가 필수불가분의 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


박: 완벽한 퀄리티나 기대하는 수준의 질이 나오길 집착하진 않아요. 동시에 그간 누적되어온 경험들과 지식들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뭐든 간에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을 점점 가지면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어요.


서: 소장님이 공용공간에 만들어 나가는 것들이 사실 되게 공예적이고 예술적인 장치이다 보니 공유라는 사회적인 책임감 등과 같이 맞물려 있는 상태에서 약간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좋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하다 보면 과연 이것이 작가가 자기 작업을 하기 위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가, 혹은 정말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거든요.



박: 두 가지 관심을 다 가지고 있어요.

서: 유일주택에서 난간에 T자로 칠한 주황색은 어떤 의도인가요?



박: 그건 집안에도, 공용부에도 있어요. 어느 층에는 한쪽에 쏠려 있기도 어느 층에는 가운데 있기도 하고, 개인의 영역에서는 또 그 위치와 상관없이 있습니다. 이건 기능과는 상관이 거의 없죠. 근데 실제로 두 집의 사람들이 나왔을 때 변화 없는 영역에서의 변화가 되게 궁금해요. 아직 확인은 못했어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무척 크다고 봐요. 사용자한테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에요. 실제로 사용하면서 어떤 영향을 준거야? 와 같은 질문과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서: 예전에 김헌 선생님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살면서 건축가가 숨겨놓은 것들을 하나씩 발견할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한다’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박: 그래요? 저도 그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해요(웃음). 저는 이걸 경험으로 알게 됐는데, 양평에 지은 주말주택에 우리가 창을 뚫고 빛이 어느 위치에 언제 어떻게 떨어지게 하고, 어느 순간 우리가 놓은 기물과 딱 맞아떨어지게 만든 것이 있습니다. 건축 전체의 이야기와는 연결되진 않는 우리의 재미였기도 하고 굳이 건축주에게 설명은 하지 않았어요. 근데 몇 년 후에 건축주께서 우리가 의도했던 그 장면을 보고 연락을 주신 거예요. 그리고 그게 의도된 것인지 물어보셨죠. 그 순간 제가 낚시꾼이 된 기분이 들었죠. (웃음)

서: (웃음)미끼를 딱 물은 셈이네요.



박: 네. 이게 시간의 폭 안에서 건축주와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일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부분들이 그 사람이 건물을 사용하는 기억과 중첩되는 것이겠구나, 건물과 사용자의 연결고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긴밀해질 수 있는 장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 이해가 되면서도 그 방법이 누군가는 기호와 상징으로, 누군가는 모양을 숨겨놓기도 하고, 누구는 빛이 떨어지는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러한 여러 가지의 방법 중에서 소장님의 선택은 빛과 실제로 만지는 촉감들인데, 저와는 많이 다른 방향인 듯해요. 저는 감각에 호소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예요. 저는 제가 숨겨놓은 기호와 상징을 건축주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거든요.



박: 방식이 다르지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조금 더 직접적인 것은 사물로서, 물체로서의 건물, 사용자로서 사람과 건물과의 접점은 결국 감각에 대한 부분이라 생각이 들어요.

서: 근본적으로 박소장님은 따뜻한 사람 같습니다. (웃음)


공간상자 그리고 꽉 찬 밀도 a lightbox and heavy density

서: 소장님이 예전에 출강하던 학교에서 수업하는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큰 모형을 학생들이 모두 머리에 쓰고 공간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소장님의 관심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번 소장님이 ‘형태에 관심 없다’는 발언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었는데(웃음) 저는 이해가 됐던 것이 외부에서 보이는 매스의 세밀한 조절, 비례에 대한 집착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보여요. 그렇다면 소장님의 주 관심은 무엇인가 했을 때 저는 볼륨이라 생각되요. 볼륨은 공간의 네거티브 스페이스라면 매스는 밖에서 보는 덩어리인 셈이죠. 특히 최근에 소장님은 외부형태보다 내부공간을 먼저 상상하는 것으로 보여요. 예전의 작업들의 평면도를 보면 어느 정도 완결된 질서를 가진 상태를 추구했다고 하면 최근 도면들은, 특히 양평 신화리 주택은 규칙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약간 어수선해 보이고. 일부러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박: 기하학적인 규칙이라기 보다, 움직이는 판들을 잘 작동하고자 하기 위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치수들이 정해졌어요. 긴 판들도 있고 짧은 판도 있고 힌지의 위치도 서로 제 각각이고, 이 판들은 모두 제각각 따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 판들이 딱 맞아떨어져요. 이것들의 구조적인 규칙이나 비례, 형태를 형식에 맞춰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형식에서 보다 자유롭게 가고자 합니다. 물론 규칙도 있긴 하지만.

서: 둘 다 하면 안 되나요?


박: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경직되어 보이고 어느 순간 답답하다고 느껴졌어요.

서: 몇 년 전 이탈리아 건축가와 같이 소장님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가 생각나네요. 우연히 두 건축가의 평면에 박스가 여러 개 놓인 비슷한 유형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건축가는 기하학의 연장선들이 또 다른 완결성을 가지는 반면, 소장님의 평면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는 그때 소장님의 중요했던 키워드는 프로그램, 내부공간, 분위기, 감각, 지금은 공예, 공유로 이어진 것 같아요.


박: 다 나왔네요. (웃음)

서: 신화리 주택의 실들이 생각보다 작았던 것에 반해 장치들이 꽤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스케일에서 뭐가 너무 많다고 해야 하나? 부분은 잘 컨트롤 되고 있는 반면 전체를 다루는 데 약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전체를 볼 때 너무 부분들이 너무 산발적인 건 아닌가 생각도 들고요.


박: 클라이언트의 성향에 따라, 당시 사무실에서 프로젝트 담당이 누구였는지에 따라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여러 개입들에 의해 그런 것 같아요. 건축주가 타일이며 조명이며 직접 모두 골랐어요. 우리는 결정할 수 있는 틀만 만들어주고, 기능이나 영역에 대한 구획도 모두 맡겼어요. 축구를 예를 들면 저희는 축구장의 크기를 정하고 경기를 위한 선수 인원과 경기의 룰을 만들면 사용자는 그 틀 안에서 다양한 경기(사건)를 하는 것과 비슷한 내용이라고 봐요. 당연히 크기와 룰이 바뀌면 아주 다른 게임이 가능하겠죠. 이런 다양한 조건에 의해서 건물의 성향이 다르게 나와요. 홍은동에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경우도 너무 중구난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 신화리 주택이나 여러 작업들을 보면 Smallness에 대한 생각이 납니다. 공간들이 생각보다 작은데 요소 또한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공예에 의해 밀도가 높아 보이는 이유도 있겠지만 공간을 크게 구획하기 보다는 아기자기한 크기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정확히 어떤 요구사항이 있었는지 모르기에 이게 속단할 수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작업하신 다가구 주택 프로젝트들을 봐도 그러한 성향들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공용공간의 이야기도 그렇고, 이러한 것이 혹시 일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 영향을 받은 것도 있는 건가요?


박: 의식해서 그것들을 접근하거나 연결시켜서 한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스케일에 대한 것으로 연결 지을 수 있을까 이것도 잘은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신화리 같은 경우 특히나 그런 편이었지만, 판포리 집 같은 경우는 완전히 미국집 같거든요. 엄청 기하학적이고 딱딱하거든요. 평면을 보면 오밀조밀함과는 거리가 멀고 상대적으로 큼직하게 했던 집이에요. 결과적으로 보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신화리 주택에서 스케일에 관해서 생각해왔던 것은 아이들이 몸이 작기 때문에 몸이 작았을 때 경험했던 그 작은 스케일이 몸이 커지면서 그 스케일의 변화가 무척이나 클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그 차이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서: 일본어를 할 줄 알다 보니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가요?


박: 그렇죠, 아무래도 언어가 되면 좀 더 관심이 생기게 되죠.

서: 일본 건축가들도 인터뷰를 많이 했잖아요.


박: 일본 건축가들도 신기해할 정도로(웃음)

서: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얘기를 듣다 보면 이 생각도 들고 저 생각도 들고,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고, 이 사람 의견도 공감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 작업을 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돼요. 한국 건축가뿐만 아니라 일본 건축가들과도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그것이 본인의 작업이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나요?


박: 전 인터뷰를 시작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선배 건축가들이 먼저 간 길들에 이런 저런 조언이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그리고 같이 공유를 하면 좋겠다라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그 분들이 ‘니가 뭔데’ 이럴 거 아니에요. 처음부터 선배님들을 하기에는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주변에 있는 동료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에요. 토탈 갤러리에서 했던 전시에서도 일본어를 할 줄 알다 보니 통역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일본의 다섯 팀과도 친하게 됐고요. 도움이 된 것은 다양한 시각으로 건축을 접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공용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일본 건축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기도 해요. 일본의 경우 지진이나 원전과 같은 큰 사건 때문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경험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도 건축계에서도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닌 같이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이를 드러내거나 표현할 수 있는 건축적 실험들이 쭉 있어왔어요. 이제는 한국도 이와 완전히 동떨어진 상황이 아니겠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겠다 싶었어요. 또 포르투갈의 건축가 부부를 인터뷰하면서 잡지, 교육과 관련된 부분들을 어떻게 자신들의 작업에 연결시키고 무엇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지를 듣고 느낀 바가 많이 있었죠. 이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영역들을 알게 되면서 저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죠.



센서빌리티와 센서빌리티 Sensibility and sensibility

서: 소장님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무척 여성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작업들도 그렇고.


박: 서호동 주택을 보고 공간을 여성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 그때 이야기가 처음이고 서소장님이 두 번째로. (웃음) 신화리 주택을 보면 여성적인가? 아기자기하면 여성적인가? 스케일이 작아서?

서: 아기자기하고 그런 것도 있지만 빛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런 것 같아요. 빛을 다루는 방식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빛을 건축의 장엄함을 만드는 수단으로 이야기하지만 소장님의 빛은 장엄함 보다는 감성적이고 구석에 들어와 텍스쳐를 비춰주는 촉지적 수단으로 이야기하거든요.


박: 맞아요. 우리가 예전에 정말 마음에 들어 했던 빛이 하나 있어요. ‘깊은 빛’이예요. 움직임이 거의 없이 저 너머에서 천천히 스며들어 오는, 움직임이 없고 강도가 약한. 북쪽에 만들었던 고측 창에서 스며 나오는 은은한 빛, 그 빛이 우리가 생각하는 강렬한 빛이에요. 처음에는 스펙터클하고 그런 빛이었다면.

서: 그런 빛을 만드려다 보니 그런 건지 인테리어 작업이 굉장히 많아 보여요. 예를 들어 빛의 광원이 안보이게 하기 위해 벽을 의도적을 둔탁하게 하거나 원하는 어떤 장면, 순간을 만들려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석고보드 작업도 많아지는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자연스러운 빛은 누워있는데 어느 순간 들어오는 빛일 수도 있는 것처럼.


박: 만들어낸 빛이긴 하죠. 상황에 따라서 다르긴 해요. 이번에는 이런 빛을 해야지 하는 건 아니고, 어떤 장소에서 채집했던 빛. 무진도원에서 나왔던 집의 경우, 엄청나게 많은 귤 밭 안에 있는 집인데, 해가 질 무렵에 산란돼서 들어오는 그 빛이 되게 포근한 빛으로 느껴졌어요. 이게 제주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빛의 질감이라 느끼고, 그걸 어떻게든 내부로 끌고 들어올까 하다 보니 만들어진 것이었고요. 그런 반면에 의정부에 했던 주택 프로젝트 같은 경우 그건 완전 다른 빛이에요. 위에 있는 천창과 돔, 그 내부에 쏟아지는 빛이 내부를 감싸거든요. 그건 무진도원에서 얘기했던 빛과는 온전히 다른 종류의 빛이에요. 그건 건축주의 성향에 따라서 또 달라요. 빛에 대한 관심도는 어느 프로젝트에도 다 들어가요.

서: 빛을 가지고 결과를 설명할 때 건축이 돋보이게 하는가 아니면 텍스쳐,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중시하는가의 차이에 있어서 후자를 더 중시하시는 것 같아요. 


박: 그런 면에서는 남성적이진 않죠

서: 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도 여성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모형마다 모두 나무가 꽂혀 있고. (웃음) 단순히 식물이 외부에 남는 공간에 조성하는 것 넘어서, 전시도 식물 가지고 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사무실에 식물도 많고(웃음). 식물에 대한 애착이 특별히 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


박: 어느 순간 계속 옆에 두고 싶은 거 같아요.

서: 젊었을 적에는 사람을 좋아하고,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동물을 좋아하고, 더 나이가 들면서 식물을 좋아하고, 결국에는 수석처럼 무생물까지 넘어간다는 순리를 따르고 계신 건가요? (웃음)


박: 오브제, 오랜 시간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형태들, 돌에 담겨 있는 시간이 느껴 져서 너무 좋아요. 그래서 돌에 물도 주고 씻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홍은동 주택 프로젝트에서도 땅을 파면서 나온 돌들을 모두 가져다 놨어요. 주택이 완성되면 저는 저 돌들을 어떻게든 다시 가져다 놓을 거예요. 그렇게 움직임이 없고 액션이 없는 것들, 토템 같은 것들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이우환, 이타미 준에 의한 영향도 있었어요. 이우환 작가의 책들을 보면 무생물 가지고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서: 소장님을 보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따뜻하고, 회의보단 가능성을, 작업에 대해서도 폐쇄적이기보다는 열려 있고, 남들과 교류도 활발하고, 그건 단순히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닐 것 같은데, 유년시절의 환경에서도 영향이 있었나요? 어릴 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 어느 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막바지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바닷가에서 살았어요. 이 차선도로를 지나면 바로 해변이었던 집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바다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바다 소리며, 냄새, 습한 공기를 느끼며 자랐죠. 서울에 오면서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이거 하나였어요. 스케일에 대한 것. 해봐야 일 킬로미터짜리 한강 폭, 하지만 바다의 스케일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런 환경이 저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주말이면 매일 아침마다 해변에서 운동했고, 오랫동안 광안리 바닷가를 봐왔어요. 바다가 주는 압도감과 두려움이 공존 되고. 해풍의 질감이나 향에서 느껴지는 이런 오감이 삶에 침투해져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그게 지금의 작업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물론 무관하지는 않겠죠.

서: 오늘 이야기가 다 풀리는 것 같네요. (웃음)



인터뷰: 2020년 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