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지 않음과 드러냄의 경계
뮤엠사옥은 파주 출판도시 2단계에 세워져 있다. 출판도시 2단계는
출판도시 1단계와 연접해 거대한 도시를 이루기 위한 폭을 넓혀 가고 있지만 1단계, 2단계에 걸친 전체를 아우르는 맥락은 읽히지 않고 개별의 표현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에서 도시적 접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와이즈건축은 2000년 초부터 시작된 헤이리 마을, 파주출판도시 1단계, 판교주택단지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개별 건축가 욕구의 장이 나타난다고 읽고, 그러한 조건을 정반대의 대응으로부터 출발했다. 파주출판도시를 이루고 있는 건물이 형태적으로 드러낼 때 반대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평소 와이즈건축은 파주출판도시를 도시적 맥락보다 개별 건물에서 보이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에 대한 교과서로 삼고 있다. 이미 기존에 지어진 건물은 재료가 시간에 따라 변화되어 남아 있는
가치나 가능성, 그리고 건물과 대지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의 씨앗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뮤엠사옥 주변에 앞서 지어진
건물 외벽에 벽돌이 많이 쓰이고 있어 다시금 벽돌이 외장으로 선택된 것은 어쩌면 앞으로 생길 비어있는 주변 땅에 대한 연결을 말하려 하는 것 같다.
와이즈건축에서는 이미 이전부터
계속 벽돌이라는 재료를 탐구해 왔다. 초기 작업인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서는 벽돌 한 장, 한 장에 의미를 담는
무게를 보여 주었으며, 벽돌 표피의 두께를 수직적 레이어로 표현했다.
이 또한 입면 레이어를 겹침으로써 중간 공간을 만들어 깊이를 드러냈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이후 벽돌의 이미지를 얇고 가벼운 감각으로 연결시키면서 좀 더 경쾌한 의미를 지니는 대신 재료의 물성에 대한 가능성에 더욱 치중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실재 벽돌의 조적이 판으로 사용된 경우가 ‘ABC 사옥’에서 나타나고, 게다가 비워 쌓기로 그 면의 밀도를 낮추었다. 그러다 보니 겹의 조적 판이 다양한 표정을 만든다. 이것은 재료가
달라 지면서 ‘DID 북촌’에 레이어 겹침에 의한 다양한
표정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연결된다. ‘성북동 주택’이나 ‘ㄱ, ㅁ 주택’에서 벽돌이
덩어리 양감의 표현으로 쓰였다면, 뮤엠사옥에서는 벽돌을 ‘휘어진
조적’과 ‘떠 있는 조적’으로
이전과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휘어진 조적은 이전에 시도되었던
분리된 대지와 건물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대지와 건물의 접점에서 나타난다. 건물이 앉혀지는 ‘판으로서의 대지’ 위에 ‘볼륨으로서의
건물’이 올려지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대상물인 건물과 대지를 통합하여 하나로 읽고 바닥에서 건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면으로 일체화했다. 이러한 일체화는 건물에서 느껴지는 물질성과 촉감성의 감각, 질감과 무게, 공간의 밀도를 강화함으로써, 관능과 육감이 건축에 다시금 깃들게 하려는 시도다. 또 한가지는
벽돌이 가지고 있는 구축의 이미지를 탈피했다. 이는 투명성이나 무중력의 느낌, 부유감으로서 근대 예술과 건축이 추구한 주요 주제에 동참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재료를 통해 반사, 투명성의 그라데이션, 중첩, 병치와 같은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건축 이미지들이 등장했는데 뮤엠사옥에서는 벽돌 조적에서 보기 어려운 부유하는
벽과 내부로 휘어진 벽에 의한 빛의 움직임에 따른 미묘한 변화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새로운 감수성으로
인해, 비물질적이고, 부분적으로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결과가
긍정적인 공간 및 장소의 경험으로 바뀔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면을 조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구조적 과잉, 그리고 구조체와 표피의 관계 역전이 건축적으로 부담을 느끼게 한다. 와이즈건축에서 탐구하고 있는 벽돌과 조적에 대한 스터디는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벽돌에 대한 스터디의 개념은
그 속에 모든 것이 완전히 포함된 결론의 형식을 취해야 하며, 계속 덧붙여가는 것만으로 결론에 이를
수는 없다. 결론은 덧붙이기가 아니라 이야기이기에 이에 대한 개념을 보고 싶다.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면서
외부와 내부와의 관계는 마치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문법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외부에서 보이는 여러
시도 내부에서는 메스의 단단함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내부를 진행하면서 외부와의 내용상 연결이 단절되어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로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의 단절이 있었다. 그것은
외부 재료와 연결된 내부 출입구에 쓰인 형태, 재료 그리고 스케일의 변화가 급작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1층 로비공간은 외부와 2층과의
분리를 더욱 가중한다.. 1층에서 2층으로 연결되는 접점은
계단뿐인데 이곳에서도 1층 공간과 2층으로 연결되는 변화의
방식이 크게 느껴진다.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 단절된 것이 1층의
기능이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그렇지만 2층부터
시작된 공간은 수평적 공간 다음 바로 수직적 공간으로 바뀌면서 그 의도를 더 분명히 한다. 수직적 계단이
있는 공간은 매개공간으로 업무 공간과 휴게공간을 분리하기도 하고 연결하기도 하는 변화를 주고 있다. 각
층은 위로 올라갈수록 외부 조경면적은 넓어지면서 빛이 들어올 가능성을 염두했다. 그러나 가둬진 인위적인
조경은 흡사 외부와의 단절을 인정하는 조건이 되어버려 외부에서 보이는 도시의 삭막함이 가중되어 버렸다. 내부
재료에서는 전체 색감은 잘 정돈되어 있지만 이곳의 기능이 사무공간과 교육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매질이 전반적으로 단단하여(유리, 콘크리트, 벽돌…) 소리가 울려 심리적으로 부담이 느껴졌다. 그리고 일부 천장의 곡선
형태와 건물 내부 모퉁이에 위치한 1/4원형 회의실은 외부에서 시도된 곡선을 받아주기에 어설퍼 보여
아쉬움을 더한다.
건축에서의 시각적
편향은 지난 반세기 동안 더욱 분명해졌다. 이제 눈에 띄고 기억에 남을 표피적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건축은 하나의 유행을 넘어 유형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시각 중심적인 데이터와 이미지가 떠돌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나 이미지는 창의적인 사건을
만들지 못하며 그것은 미래를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데이터와 이미지의 빠른
교체에 편승하기 위해 구속된 범위 내에서 많은 결정을 하고 있다.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이미 미리 정해져 있는 가능성에 대한 선택으로 전락하여 사색적 결론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자본을 위해
일하는 시대가 되었고, 건축가의 생각과 의지보다 자본에 의해 생성된 경계가 더 두텁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좀더 치열하게 자본의 구속력과 자신들의 생각 사이를 넘나들며 치우치지 않는 머리와 가슴을 유지하여야
하는 상황이다. 와이즈건축이 지금처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젊은
건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권력에 예속된 세련된 적절함보다 그들이 추구하려고 하는 시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강력한 어휘를 가지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건축가는 건축의 결과에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을 읽고, 그것에 대한 해석과
관점에 대한 태도가 작업 속에 스며들고 그것이 읽힐 수 있다면 건축가로서 더 큰 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앞으로의 행보에 더욱 기대를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