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vie
architects_ 김수영
명료한 공간으로 만드는 su:mvie 이야기
1971년 출생, 95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97년 경기대 건축전문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 때 스승인 김준성의 사무실과 김종규 소장의 M.A.R.U.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2010년 숨비건축으로 독립했다. M.A.R.U.에서
근무할 때에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아모레 퍼시픽 기술연구원’의
실무작업을 맡았으며, 설계부터 시공되는 과정을 기록한 『CONSTRUCTING』이란
서적을 숨비에서 출간했다.
1995년 한국에서 교육받은
박창현(박): 1970년대
생은 이전세대와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전 세대는 최루탄과 시간을 보냈던 세대이죠. 반면에 90년대 학번부터는 정치적 격변의 시대가 사라지고 오렌지
세대, X세대라는 단어들이 등장하고, 이전 세대와 나눠진 386 이후의 세대. 이 세대는 적극적으로 인터넷이 실생활에 적용된
세대, 윈도우95세대입니다.
졸업을 한 시기는 IMF시기와 맞닿아 있으며, 정치적
주체가 아닌 대중 문화의 주체로서 본격적으로 해외 유학을 많이 가기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당시에 건축계에선 4.3그룹의 고민에 의해 국내에서 건축 교육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시작되었고,
이전에 유학을 갔던 세대가 한국에 돌아와 건축 교육 내용에 다양한 시도를 했었죠. 당시
서울건축학교,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선경스튜디오, 한국예술종합학교 등과 같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에 생겼던 해외 유학 규제가 1980년
해외유학자율화가 되면서 유학생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시기에 김수영씨는 대학 졸업 후 국내
여러 건축 교육의 시도 중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경기대 건축전문
대학원의 교수이자, 알바로 시자 사무실 출신의 김준성 건축가의 영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김수영(김): 학부를 졸업할 당시 바로 유학을 간다고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다. 유학을 가더라도 실무를 좀 한 후에 가야지 라는 막연함은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도 갈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졸업할 때 가장 이른 시기에 신입사원 공채가 있었던 공간건축에 지원해서 일을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12월말쯤에 건축가 김준성을 중심으로 한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이 설립된다는 사실을 접했어요. 93년도로 기억되는데 학부 때에 월간 건축과 환경에서 김준성의 특집을 보았고, 그 때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때 당시 좋아하는 건축가, 철학자, 예술가 top 10을 수시로 노트에 적어 놓곤 했었어요. 그때 당시 좋아하는 건축가 1위가 건축가 김준성이었습니다. 2위는 알바로 시자... (웃음)
박: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과 역사를 가진 ‘공간’건축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 신입사원공채가 11월로 당시 가장 빨랐어요.
박: 당시 ‘공간’건축은 한국 현대 건축의 1세대이신 김수근 선생님에 의해 시작된 사무소이기도
하고 건축 설계 사무소로서도 굉장히 의미가 있었을 텐데요?
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좋아하는 선배가 지원해서 덩달아 따라 갔습니다. (웃음) 은연중에 공간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실무라는 영역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공간이라는 걸출한 사무실에 대한 의미를 크게 두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2월에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에 대한 입학 홍보를 하기 시작했을 때, director가 김준성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공간’을 그만 뒀다. 95년 1월에 퇴사하고 김준성 선생님을 찾아갔고,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에 들어가서 4학기 중 김준성 스튜디오가 없는 학기를 빼고 3학기를 김준성 스튜디오만을 들었습니다. 그 때 당시 같은 선생님을 두 학기 이상 듣지 못하는 규정이 있지만 그냥 우겨서 3학기를 들었죠. (웃음)
학교에서 만난 김준성 건축가
박: 학교에서 만난 김준성 선생님과 잡지에서 본 김준성 선생님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입장이나 아이디어를 유출해내는 방법이 제가 알고, 배웠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허접 했던 사진첩 4권을 포트폴리오라 들고 김준성 선생님이 운영하고 계셨던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갔었습니다. 그 당시 김준성 선생님은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책상 앞에서 예쁜 오렌지색 자켓을 입고 일을 하고 계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좋아했던 분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리고 좋았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선생님께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 가려고 하는데 괜찮나, 나는 모험하는 거다. 공간을 그만두고 간다.’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답이 걸작이었어요. ‘나도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 차린 건 모험이야.’ 그렇게 시작된 김준성 선생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김: 그렇습니다. 당시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에 한국 건축계에 바람을 일으키고 계셨던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고민하진 않았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언제나 김준성이었습니다.
박: 제가 기억하는 김준성 선생님은 현상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했어요. 모던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태가 active하거나
역동적인 건축을 했습니다. tectonic에 대한 얘기도 많이 언급이 있었습니다. 수업 받았을 때 받은 영향이나 좋았던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그것을 건축적인 결과물로 끌고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박: 건축의 프로세스를 말하는 것인가요?
김: 그렇습니다.
박: 학교에서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프로세스 도출에 대한 베이스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김: 아이디어를 어디서, 어떻게 도출하느냐의 문제인데 그것은 수업 중 김준성 선생님이 예로 든 스티븐 홀의 스콜로프 피난처 계획안<image3>에 대한 설명을 통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장의 스케치는 도시가 보이는 강에서 배 저어 네 개의 텅 빈 유리블럭의 탑으로 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수면에서 4센티 아래에 위치한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어 들고 바지를 걷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두 장의 스케치를 보여주시며 땀 흘려 노를 저어 피난처에 도착하여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는 행위 자체가 아이디어라고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처음으로 접하는 접근방식에 놀랐을 따름이었어요. 이것이 기존에 생각했던 프로세스와 다르다고 말했던 부분입니다. 학부 때에는 주어진 프로그램을 가지고 매스 스터디를 통해 형태를 예측하고, 평면을 구성하며 동선을 풀어내는 과정의 반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준성 선생님은 출발 자체가 다른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원리나 영화 같은 다른 장르에서도 건축적 접근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런 것을 현상학보다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런 경험을 통해 건축적 아이디어를 도출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 실무를 경험하고 난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김: 글쎄... 실무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건축을 바라보는 입장이 변하긴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 당시 때만큼 김준성 선생님께 광분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웃음)
3명의 스승
박: 그런 다양한 건축적 접근을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그
당시에는 많았습니다. 한국의 기존 건축이 가지고 있던 접근의 무거움이나 중압감에 의한 결과들과 시작에서
차이가 컸죠. 완전히 다른, 생각과 접근의 대조가 심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그 다른 것이라는 차이에 의해서 봤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에 많이 휩싸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와서 본다면 어떤 차이일지, 그리고 가능성은 무엇인지, 그것이 나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김: 아마도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질문처럼 건축설계라는 과정에 대한 지루함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크기만 다를 뿐 항상 같은 프로세스에 비슷한 결과물들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학교에서는 건축물이 어떻게 지어지는 것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결과물이 예쁘게 보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기존에 협소했던 건축적 언어들이 김준성 선생님을 비롯한 유학1세대들을 통해 훨씬 더 다채롭게 전해졌었습니다. 신기했다고 해야 할까... 그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문장이 ‘재료의 물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장에 빠져서 도면 한 장 없이 졸업작품<image4>을 마칠 수 있는 무식함을 보였으니까 말이죠. (웃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현재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건축을 바라보는 패턴을 좀 더 확장시키는 계기가 된 것 만은 확실합니다. 학교 때 김준성 선생님을 만나 실무를 시작하고 김종규, 알바로 시자와 작업을 하면서 건축물을 바라보는 관점뿐만 아니라 건축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해온 것 같습니다.
김: 좋은 질문입니다. 저는 좀 전에 언급되었고 직접적으로 함께 작업을 하였던 세 명의 스승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준성, 김종규, 알바로 시자입니다. 숨비건축에서 보이는 건축적 영향이나 작업의 종류에 대해서는 별개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현재 건축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스승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상황에서 결정을 하기 전에 ‘이 스승은 어떻게 할까? 아님 저 스승은?’이란 상상을 통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갑니다. 다른 젊은 건축가들에 비해 창조적인 결정이 부족할 지는 몰라도 숨비건축이 하고자 하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긴 실무과정을 지나고 비교적 늦게 독립해서 이것저것 실험을 하기 보다는 완성도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다음 질문들 가운데 있을지는 모르지만 숨비건축이 지향하는 바는 진짜(?) 젊은 건축가들과는 다릅니다.
알바로 시자를 만나고
박: 제가 느끼는 것은 아무리 김준성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시자와 김준성의 성향은 많이 다릅니다. 결국 추구하는 목적, 결과물이 많이 다르게 될 것입니다. 영향을 받고 맨 마지막으로 연차가
올라가면서 디테일에 대한 부분을 하면서 시자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왜 궁금한가 하면, 학교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내용들이나 시도들을 접근을 많이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준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서, 결국엔 알바로 시자와 연결된 것이죠. 알바로
시자는 역사적으로 본다면 훨씬 고전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모더니즘에 가까운 작업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작업하는 것들이 그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다시 모더니즘으로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알바로 시자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지나고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김: 맞습니다. 현재의 영향에 절대적인 부분은 알바로 시자입니다. 후배의 표현에 따르면 ‘씨빠’이죠. 숨비건축이 다른 사무소와 차이점이 있다면 첫 작업이 책이었다는 것입니다. ‘Constructing’ 제목으로 전 사무실(MARU)에 있을 때 알바로 시자와 작업을 하면서 설계부터 시공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결과물입니다. 보통은 사무실을 시작하게 되면 하나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에 반해, 숨비는 먼저 알바로 시자의 어깨에 올라타서 건축적인 스테이터스를 먼저 밝히고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첫 건축 결과물인 화인링크에서도 다수의 지인들을 통해 알바로 시자의 영향이 보인다고 들었을 뿐만 아니라 저 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숨비에서 밝히고자 했던 것은 한국에서 건축물이 구축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와 한국 건축가의 책임과 역할에 따른 지속 가능성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숨비에서 지어지는 건축물은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통해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보이는 모습이 알바로 시자이든 김준성이든 김종규든 개의치 않습니다.
박: 건물이 구축된다는 것을 포함해서 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에 대한
것이 있었나요?
김: 사실 알바로 시자라는 건축가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있었지만 책을 만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가장 곤욕스러웠던 것은 건축적인 언어의 부재였죠. 한국이라는
땅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며 Architect라는 직능을 수행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한국에 지어진 건축물에
대해 알바로 시자의 시선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들이 부족했습니다. Constructing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건축물이 구축되는 과정을 설명한 책입니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5개의 장들도 역시 구축(tectonic)을 염두에 둔 단어들 이죠. 어찌 보면 이를 관통하는 주제는 구축을 위한 치수의 원칙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설계와 시공의 과정 내내 치수와의 싸움이었고, 이 책을 통해서 밝히고
싶었던 것도 구축, 즉 tectonic이라는 것이 하나의
건축물이 세워지면서 필요한 모든 부분들의 치수들을 모아서, 배치하고,
연결하고,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하며, 이를
수행하는 직능이 Architect라는 것입니다. 가장 크게
배운 건 건축가로서의 책임과 역할들을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컨트롤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나머진
디자인 언어들에 대한 것이죠. 구축을 통해 디자인 언어들이 따라온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박: 알바로 시자는 진행해 왔던 프로젝트든 개인적인 관심사든, 삶이든 처해져 있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사회적인 관심과 이슈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를 맡아서 했습니다. 포르투갈 같은 경우에 1974년 민주화 운동인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혼란의 시기였고, 독재와 맞싸워서 작업들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프로젝트에서도 그런 것들이 쌓여
있을 텐데, 그것과 연결되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김: 알바로 시자의 배경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포르투갈에서 건축가의 위상은 사회적으로 상당히 견고하고 믿음직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이 보였죠. 아마도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 질문과 같이 험난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건축가의 견고함과 사회적인 험난함이 부딪치면서 서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뭐 현재 포르투갈의 안 좋은 상황을 보면 다른 관점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이란 곳에서의 건축가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그 모습은 사회적으로 볼 때에는 빈약하기가 이를 때 없어 보입니다. 역할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무튼 알바로 시자와의 작업을 통해서 건축물과 건축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었습니다.
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인데 건축물이 구축되는 것이란 것과 건축가는 지어지는 것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연결시키는 역할이란 것입니다. 그것이 디자인이고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물을 구성하기 위한 모든 협력관계, 즉 구조, 기계, 전기, 토목, 각종 재료 및 제품과 관련된 협력업체들과의 관계에서 디자인이 형성된다는 것이죠. 이것이 구축인 것 같습니다.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등 모든 것을 건축적인 토대 위에서 형성해가는 것이 구축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건축에 있어서 본질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제 겨우 하나의 건축물을 만든 마당에 너무 많은 확신을 해서 좀 민망하네요. 다시 주워 담아야겠습니다. (웃음)
공간의 명료함이 만들어지는
박: 건축 과정 전반에 걸쳐 협업자들과의 관계와 진행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내용들입니다. 협력업체들과 어떤 관계, 어떤 위치에서 조정
또는 진행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김: 모든 부분에 있어 우리가 하고 싶은 공간에 대한 센스,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지어지는데 필요한 모든 것에 정확한 치수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놓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숨비에서는 가능한 건축물에 관련된 모든 부분을 실제 스케일로 도면화해서 내보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외국과 같이 건축가를 중심으로 건축주, 시공사, 협력업체들이 끊임없는 협의를 통해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돈과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현장조정이라는 것이 말같이 쉽지가 않죠. 현장에서의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변경을 가능한 줄이려고 합니다. 대가가 되면 이런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을 지 몰라도 현재는 아닙니다. 능동적으로 건축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시공사나 협력업체가 적기 때문에 더욱 명확한 치수원칙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공사나 협력업체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가 갑니다. 시공사는 저가수주에 시달리고, 협력업체는 저가 설계비에 시달리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능동적으로 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건축가의 위상도 빈약한데 협력업체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점점 빈약해져만 가는 건축생태계를 생각하면 고민이 많이 됩니다. 이 모든 출발이 건축가의 역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박: 그런 움직임에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 나갔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잠깐 언급했지만 모든 설치물의 위치, 높이 등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천정고가 2400이면 그 높이를 맞추기 위해 모든 협력업체들이 움직였죠. 시자에게 받았던 큰 인상 중에 하나는 치수에 대한 명료함이었습니다. 마치 실재 스케일의 건축물을 들여다보면서 스케치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스케치를 반드시 모델작업으로 확인한 후 결정을 했지만 경이에 가까웠고 어떤 원칙에 따라 치수를 정할지 늘 궁금했었습니다.
박: 실무와 연결해서 계획과 관련된 질문을 한다고 하면 그 부분이
화인링크에서도 많이 연결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나타난 치수들이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 여기서 보여준, 제가 느꼈던 공간감과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공기는 많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잘 정리되어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기뻐했었습니다. (웃음) 아까 얘기했던 2400나 2150
같이 이런 류의 치수들이 알바로 시자선생은 어디로부터 온 건지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바뀌어질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 치수들을 다 외워서 똑같이 적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상황상 창이 어디에 그려져 있고 색이 어떻게 바뀌고 질감이 어떻게 달라지냐에 따라서 치수는 계속 변화를 줄 수 있는 요인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그 치수들은 어디서 오는지? 경험인지, 감각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훈련되어왔던 그런 치수에 대한 데이터일지는
그 세가지가 각각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김: 중요한 질문입니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들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건축가들의 치수가 그려진 도면들입니다. 틈만 나면 천정고는 얼마인지, 모듈은 몇 인지 등 도면에 표시된 치수를 모두 암기(?)하려고 합니다. 알바로 시자는 물론이고 치퍼필드, 올지아띠, 마끌리 등 소위 명확한 건축적 어휘들을 구사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건축가들의 도면들을 통해서 건축물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편입니다. 사진에서 읽히는 것도 있겠지만 왜곡되는 면이 있어 가능한 도면으로 건축물을 읽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나는 좋은 공간에 대한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떠한 공간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국내의 건축물도 그렇지만 국외의 것들은 거의 가보지 못하였죠. 물론 다른 나라에서 좋은 것이 한국에서는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탓에 화인링크에서도 그 치수에 대한 영향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죠. 헌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좀 전에 나열하였던 건축가들의 언어들은 재미있게도 고전적이고 예전부터 있어왔던 보수적인 언어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건축언어들을 현재의 상황과 건축가의 선택에 따라 변형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변형 또한 건축적인 명확한 원리에 따라 발견된 것이지 발명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최근 치수 즉 스케일에 대해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스케일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와 의미가 있다면 ‘어떤 스케일이 발견될 수 있는가’ 입니다. 뭐 건축을 하는 동안이면 계속해서 들게 될 ‘풀리지 않는’ 생각이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박: 그렇게 나오는 치수들, 공간과
공간을 연결시키는 방법, 그 다음에 한 번씩 한 번씩 정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돌발적인 그런 것들이 나오는
내용들을 포함해서 라파엘 모네오가 하는 시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침묵적 서정성’, ‘응축된 공간’이라는 표현들을 씁니다. 그런 것들이 설명한 알바로 시자의 정확성과 굉장히 모순되게 읽히네요. 실제로
경험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졌나요?
김: 모순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정확성 때문에 시적이고 감성적인 공간들이 연출된 것이라 확신합니다. 범접할 수 없는 알바로 시자의 천재성이 만들어내는 공간적인 탁월함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박: 그것들을 실제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는 더 정확한 치수와 내용들을
바탕으로 해서 그것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인가요?
김: 알바로 시자는 모든 면에서 엄청나게 technical합니다. 솔직히 이런 부분들은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부분입니다. 알바로 시자는 미장을 이해하는 건축가입니다. 다시 말해서 건축물이 지어지는데 필요한 모든 산업적인 지식과 물리적인 이치를 이해하고 있죠. 이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수들이 나오고 훌륭한 공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 놀라운 것입니다.
FINELINK
박: 얘기한 그런 시자의 방식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게 본인 프로젝트에서 연결이 됩니다. 그러나 알바로 시자는 조건들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시자의 ‘아모레퍼시픽 R&D센터’와 김수영의
‘FINELINK’를 보자고 하면 의식해서 했는지 모르겠지만 화인링크가 훨씬 더 경직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모듈과 치수를 보고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모레 퍼시픽 R&D센터’는 형태, 재료, 공간 그것들을 조율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모듈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에 의해서 모듈이 흩뜨려지는 치수가 중간 중간
보였죠. 그걸 경험하고 화인링크를 보면 훨씬 더 잘 모듈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6000모듈에서 안에 한 부분만 치수가 다르게 정해진 것을 보면 6000모듈안에
갇혀 있습니다. 훨씬 더 기본 어법이든 치수에 대해서 더 신경을 써서 진행을 했구나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 그것이 스스로를 더 경직된 상황으로 되진 않았는가 생각이 들었죠. 단면도
마찬가지고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런 것에 대한 의식이
있었나요?
김: 화인링크는 숨비에서 지어진 첫 번째 건축물입니다. 그 때문이어서 인지 알고 있는 스케일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경직되게 보였을 수도 있죠. 하지만 알고 있는 것들을 숨비의 입장에서 어떻게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까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R&D센터와는 모든 면에서 상황이 달랐고, 모든 과정에서 다른 건축적 반응들이 필요했었습니다.
박: 알바로 시자의 표준화된 재료와 관련이 있나요?
김: 알바로 시자의 표준화하는 원리를 따르려고 하였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화인링크는 건축비가 낮은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표준화된 것을 사용하거나 표준화해서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어떤 방식을 취하냐에 따라 비용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재료들을 다루는 방식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했습니다.
박: 산업화에 의한 부산물의 치수인가요, 공간감에 의한 체득된 치수들인가요?
김: 산업화된 치수들과 공간에서의 치수를 적절히 조절하고 배치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건축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절한 치수들이 찾아지고 적용될 때에 좋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공사의 모든 과정들이 비용과 연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공간에 대한 욕심 때문에 건축주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꼭 필요한 부분들은 그것에 대한 가치를 건축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받아들여졌을 때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기는 합니다.
박: 그걸 찾아낼 수 있나요?
김: 하나의 건축물이 세워진다는 것은 필요한 모든 부분들의 치수들을 찾고, 모아서, 배치하고, 연결하고,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고 한다면 반드시 찾아내야 부분입니다. 이를 수행하는 직능이 건축가이죠.
박: 클라이언트의 요구조건은 의심에 여지없이 많이 받아들이는 편이었나요?
김: 건축주의 요구는 많이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짜장면을 요구하는데 짬뽕을 먹으라 하고 싶진 않아요. 오히려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작업이 많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우기는 건축주는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화인링크의 건축주는 설계과정에서부터 완공까지 전 과정에서 우리를 전적으로 믿어 주셨습니다. 아마도 평생 이런 건축주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죠. 다 완성이 된 후에 생활을 하시면서 더 만족하셨습니다. 건축가로서 존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매우 행복한 일이죠. 화인링크에서는 공간의 밀도를 조절해 보고 싶었습니다. 좀 조였다 풀고, 조였다 푸는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높낮이의 구성뿐만 아니라 직사광, 간접광, 음영 등 건축물이 품고 있는 빛의 밀도들도 조절하고 싶었습니다.
김: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건축적 체험을 주된 시퀀스에서 드러나도록 하였죠. 화인링크에서는 여러 겹의 공간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겹들은 전체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각 겹들을 연결해 주는 공간에 의해 나누어져 있기도 합니다.
김: 박창현 소장님이 너무 정확하게 말씀을 해 주셔서 할 말을 잊었습니다. 화인링크는 파주출판도시 2단계 부지에 다섯 번째로 완공된 건축물입니다. 사실 주변의 건물들은 없었지만 마스터플랜에 의해 계획된 도시이기 때문에 건축한계선들로 꽉 짜인 틀이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단지를 채울 건축물들의 성격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대략적인 맥락들이 정해진 단지라 할 수 있습니다. 블록에 대한 마스터 플랜을 진행할 당시 중요했던 것이 가로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주요한 가로에 대한 설정이 현재 주 출입구가 있는 쪽이었습니다. 사실 현재는 외부 데크 공간과 연결되어 휴식 등 부출입구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기는 하지만 블럭에 다른 건축물들이 모두 들어서게 되면 다른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맥락에서 주출입구는 외부가 내부와 연결되는 공간으로 건축물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전체적인 건축물의 맥락과는 이질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외부와 만나는 부분에 대한 건축물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은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것인데, (웃음) 입구에 대한 고민은 제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 건축물은 딱히 메인 파사드라는 면이 없기 때문에 주출입구에 대하여 더 많이 고민을 하였습니다. 또한 내부로 들어섰을 때 시선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 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박: 그게 실제로 강한 메시지를 가지고 형태를 만들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사실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주출입문 옆에 있는 기둥도 입구 면에 맞춰 45도 틀어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화인링크는 조각으로 보면 소조였습니다. 하나의 매스에서 각 부위별로 상황에 따라 반응을 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가로에 대해서 반응하고 있는 저층부는 주출입구, 부출입구, 하역과 주차 그리고 식당 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면들은 프로그램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덜어내는 방식과 스케일이 조금씩 다릅니다. 또한 상층부는 프로그램과 향에 따라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매스를 구성하는 것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박: 단면에서 보면 이전에 알바로 시자가 했던 건물에서 봤을 때의
단면의 유형과 상황들이 다릅니다. 물론 여기서도 적극적으로 반영했는지 모르겠지만, 단면에서 보면 중앙의 중정을 기준으로 대 공간들을 두고 주변의 작은 공간에서는 레벨을 내리고 올리기도 하는
시도와 이런 것들이 공간들이 실제로 전체 공간에서 의도하는 계획적인 내용이 잘 나타날 수 있을까가 궁금했습니다.
김: 이 질문에서 명확하게 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숨비 첫 번째 결과물은 알바로 시자의 작업을 책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숨비는 알바로 시자의 구별된 시선을 가급적 본질적인 부분에서 작업에 반영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숨비에서 생산되는 작업에서 장, 단점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숨비가 시자를 통해서 건축을 바라보려 하는 것처럼 외부에서 시자를 통해 숨비를 바라볼 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시야가 좁거나 경험이 적어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건축을 업으로 시작한 이후 그 누구도 건축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알바로 시자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임은 분명하죠. 분명한 것은 숨비를 통해 나가는 건축의 과정은 알바로 시자의 작업에서 본질적인 부분들이라 여겨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따라갈 것입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화인링크의 단면은 늘 하고 싶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것이 요구와 맞았을 뿐이죠. 앞으로도 필요한 빛이 담긴 공간을 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박: 넓은 공간은 사실 ‘아모레퍼시픽 R&D센터’에서 느꼈던 공간과 거의 같았습니다. 압축되고 넓은 공간. 그 세가지 공간이 연결되고 변화해서 더 넓어
보이게 조절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김: 사실 6mX6m의 오픈플랜의 공간은 매우 흔한 공간입니다. 또한 이 모듈은 사무공간으로 매우 효율적일 뿐이죠. 화인링크에서 알바로 시자의 언어가 드러나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결론적으로는 시자의 공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간이라는 것이 단순히 치수가 유사하다고 해서 같은 공간 일 수가 없습니다. 공간은 빛의 질감, 프로그램의 요구, 스케일 등 건축적인 섬세한 것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단순히 마감이 비슷하다고 같다고 볼 수는 없죠. 특히 2층의 넓은 사무공간은 구조, 천정의 높이, 구성방식, 조명방식, 설비방식 등 모든 것에서 ‘아모레퍼시픽 R&D센터’와는 다릅니다. 높고 밝은 빛의 2층 홀 공간을 통과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고 압축된듯한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숨비건축이 하는 작업
박: 건물에 대한 기능과 성격은 다른 젊은 건축가들이 해내는 작업의
방향이든 기능이든 그 포커스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김: 음, 사실 다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위 젊은 건축가라 칭하는 집단의 수많은 스펙트럼 중 하나의 입장이라고 보면 될 듯하네요. 왜냐하면 각자 자라온 건축적 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것에서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스펙트럼 중 어느 것이 좀더 지속 가능한 작업 방식이냐 하는 것일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박창현 소장의 인터뷰작업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듯 싶습니다.
박: 특별하게 건축적인 부분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김: 창호입니다. 물론 알바로 시자와 작업할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시스템 창호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내 외부에 미치는 영향도 알게 되었죠. 창호에 대한 사랑은 각별합니다. 숨비에서 나가는 도면에서 가장 많은 장수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창호 자체에 관심이 많고, 내 외부가 만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창호 주변 디테일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아마도 창호와 창호주변의 퀄리티가 건축물의 퀄리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숨비표 창호를 꼭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설계도면에 대한 부분입니다. 참고로 화인링크의 실시도면을 오픈소스로 하여 원하는 사무소에 모든 세트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숨비는 건축물이 세워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도면에 실재크기로 그려 넣으려고 합니다. 또한 숨비의 실시도면의 특징은 엑소노메트릭을 많이 그립니다. 하지만 아직 시공사들이 도면을 읽어내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죠. 그래서 다음 고민은 어떡하면 시공사가 읽을 수 있는 필요한 도면들을 그려낼까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구법에 대한 도면도 그려 놓고 싶고 제품들이 만들어지고, 설치되는 과정도 잘 드러내고 싶습니다.
박: 더 새로운 제품이든 기술이 좋은 제품은 계속 나오기 때문에 관심을
계속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능이 아닌 한국사회의 건축가
박: 그것 말고 이외의 다른 관심들은 어떤 것이 있나요? 건축 바깥을 이야기하거나 발언할 수 있는 기회나 관심이 있나요? 알바로
시자는 이론적이고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에 따른 책임이 자신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적인 상황들을 저버리지 않고, 계속 관심 가지면서 진화시켜 지금의 자신의 것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이 일본과 다른 것이 일본은 고베, 후쿠시마
대지진, 원전사고 등 국가 재난 사건들이 많이 있었죠. 그것에
대해 건축가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서 해결해 나가려고 하고 실천에 옮기는 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재작년
한일건축교류전에서도 그런 부분에 대한 전시를 하며 그것과 관련된 의논하길 기대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건축 그 자체 안에서만 의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조성룡 선생님은
건축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실제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준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사건이나 사회적인 변화들을 겪게 될 텐데,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사회적인 책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 사실 그 문제는 정말 많은 고민이 되는 문제입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건축 베이스는 근본적으로 일본 혹은 유럽과는 다릅니다.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가가 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건축가의 역할이 어떤 것을 예쁘게 만드는 디자이너 정도라 생각하면 다른 문제이긴 한데, 책임질 게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건축가의 사회적인 외적 책무를 논하기에 앞서 건축을 만들어내는 영역 내에서의 책임과 역할 그리고 소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앞섭니다. 건축 내에서 조차도 불분명하고 이야기되지 않는데 건축 외부적인 것을 함께 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의 책무 자체도 모호한 상태에서 그에 딸린 수많은 협력업체들은 정말 말할 것도 없죠. 건축가만이 알고 있다 생각하는 건축적인 가치들을 건축주, 시공사, 협력업체에게 이해할 것을 강요하고, 외국건축물 사진을 보여주며 왜 이렇게 못하냐는 물음 자체가 미안할 뿐입니다. 한마디로 건축은 내부적으로 너무 빈약합니다. 건축가가 원하는 건축물의 가치에 도달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고 심지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도 힘들죠. 일본이나 유럽처럼 명확하게 구분된 책임과 역할을 토대로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면서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외국의 상황과 같지 않기 때문에 불평만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런 상황을 껴안고 가는 수 밖에는 없는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라도 건축을 직능으로 삼고 있는 건축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한국적으로 다시 규정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건축가를 직능으로 봐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알 것입니다. 또한 건축가를 직능으로 생각하는 건축가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죠. 이런 건축구조에서 사회의 요구에 대한 반응 혹은 결과물의 질은 매우 낮거나 잘못된 방향을 만들어내곤 하는 것 같습니다. 지속 가능하며 명확한 스텐스를 갖추기 위해서는 건축가 만이 다룰 수 있는 직능을 규정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은 사실상 다음 문제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건축가의 책임 혹은 소통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려운 건축을 쉽게 표현하는 것도 능력이고 젊은 건축가의 소임이라 하면 좀더 분발해야 할 부분이기는 합니다.
김: 늘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건축가는 지휘자와 비교된 곤 합니다. 사실 내 자신조차 이 의미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지휘자가 각각의 악기와 그것을 다루는 연주자들의 특성, 기질 등 모든 것 대해 잘 알고, 그것들을 잘 연결해야 하는 것처럼, 건축가들은 재료와 구법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다룰 수 있는 직능을 수행하는 사람이죠. 사실 이 부분에 대한 교육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가를 멋진 스케치나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너무 많습니다. 건축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오히려 건축가의 영역을 협소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하게 됩니다. 요즘은 건축주들이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수준 높은 경험과 취향이 오히려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가 명확한 건축적인 의견들을 밝히지 못하면 끌려가기 마련이죠. 어떻게 하든 건축주의 신뢰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숨비는 그 토대를 기술적인 부분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술적인 부분들로 엮어진 공간, 그리고 빛 이것이 숨비 하려는 것이죠. 기술적인 판단에 대한 명확함이 소위 말하는 디자인에 대한 신뢰를 획득하게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 듣고 보니 많이 공감이 됩니다.
오히려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넘겨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내가 정말 관심
가져야 하는 상황들을 잊고 그 흐름에 따라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김: 우려가 되는 것은 건축가의 빈약한 위치가 학생들한테도 나타납니다. 저조차도 학생들이나 건축 초년생들이 건축가의 길에 대해 물어올 때 어떤 이야기를 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지어지는 일이 많은 곳에 가서 건축물에 대한 전체적인 경험을 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좋은 건축물을 만들려고 애쓰는 아키텍트가 있는 곳에서... 꾸준히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근육들을 키우는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근데 지금 현실은 그런 게 어렵습니다. 늘 전문가적 직능을 다루는 사람이 건축가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겪기가 그리 만만한 것 같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첫 직장이 숨비인 세 명의 직원들 보며 희망은 얻기도 합니다. 방향만 잘 설정해준다면 매우 빠르게 작업을 익히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됩니다. 사실 감각적으로 보면 나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또한 관계에 대한 유연함도 나보다 낫죠. 내가 자라온 배경 탓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잘 숙련돼서 건축가로서 좋은 입지를 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박: 어쨌든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고 그 부분들은 회복해야 되는
중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무실을 하면서 처음에 일이 많지 않을 수 있는데 이때 어떤 일이
들어왔을 때 그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가 궁금하고, 처음에 일 들어오면 ‘무조건 다 해야지!’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일이 있을 땐 정신이 없어 재미있고 시간도 잘 가지만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없을
때 그 시간을 사무실에서 어떻게 보내는지가 점핑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사무실에서 일이 없을 때 뭐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김: 아직 일을 선택할 만큼 풍족하지 않아서... (웃음) 굳이 기준이라 하면 1. 지어지는 것인가? 2.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3. 이 일을 통해 성장이 가능한가? 정도... 1,2,3이 모두 연결되는 것 같은데 모든 사무실이 비슷한 거 아닌가요?! 아, 또 있습니다. ‘돈이 되는가?’ 사실 맨 마지막이 가장 큰 거 같습니다. (웃음) 작은 사무실이다 보니 일이 연속적으로 있지 않고 중간 중간 여유가 생깁니다. 이제껏 그 시간들은 좀 다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짧은 기간동안 현상을 했습니다. 또한 숨비에서 기획하고 있는 책을 만드는 시간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워낙 방대하고 긴 시간을 요하는 것이라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숨비가 하는 일
박: 다음 책 소개는?
김: 가제가 <Manufaturing>이란 기록입니다. <Constructing>이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이 구축되어가는 큰 그림을 주제로 삼았다면 다음 서적은 작은 부분에서의 구축을 말하고 싶습니다. 재료와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에서부터 현장에서 시공되는 과정을 숨비의 작업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싶은 책입니다.
박: 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에서는 많은 국제적인 스타 아키텍트들이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대 자본을 가진 기업들로부터 대학교, 관공서의
공무원까지도 스타 아키텍트 쇼핑을 하는 것 같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찬 반의 의견이 있기도 하지만 일본의
버블 시대의 상황과 많이 흡사하게 보입니다. 사실 성격은 좀 달라 보이긴 하지만 알바로 시자도 그런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 솔직한 심정은 소위 스타 아키텍트라는 사람들이 한국적인 상황들을 잘 인식하려고 하고, 그들과의 작업이 협업이라는 테두리에서 컨트롤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찬성입니다. 최근에 접했던 국내 사무소에서 설계된 대규모 공공시설들을 보고 있자면 참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물론 턴키라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냈다고는 하나 좀 심한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국내 건축가에 대한 발주처 측의 신뢰도 많이 부족한 것 같고... 이유야 어쨌든 건축적으로 기준이 될 수 있는 좋은 건축물이 세워지면 좋겠습니다.
명료한 공간으로 만드는 su:mvie 이야기
1971년 출생, 95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97년 경기대 건축전문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 때 스승인 김준성의 사무실과 김종규 소장의 M.A.R.U.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2010년 숨비건축으로 독립했다. M.A.R.U.에서
근무할 때에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아모레 퍼시픽 기술연구원’의
실무작업을 맡았으며, 설계부터 시공되는 과정을 기록한 『CONSTRUCTING』이란
서적을 숨비에서 출간했다.
www.sumvie.com
1995년 한국에서 교육받은
박창현(박): 1970년대
생은 이전세대와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전 세대는 최루탄과 시간을 보냈던 세대이죠. 반면에 90년대 학번부터는 정치적 격변의 시대가 사라지고 오렌지
세대, X세대라는 단어들이 등장하고, 이전 세대와 나눠진 386 이후의 세대. 이 세대는 적극적으로 인터넷이 실생활에 적용된
세대, 윈도우95세대입니다.
졸업을 한 시기는 IMF시기와 맞닿아 있으며, 정치적
주체가 아닌 대중 문화의 주체로서 본격적으로 해외 유학을 많이 가기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당시에 건축계에선 4.3그룹의 고민에 의해 국내에서 건축 교육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시작되었고,
이전에 유학을 갔던 세대가 한국에 돌아와 건축 교육 내용에 다양한 시도를 했었죠. 당시
서울건축학교,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선경스튜디오, 한국예술종합학교 등과 같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에 생겼던 해외 유학 규제가 1980년
해외유학자율화가 되면서 유학생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시기에 김수영씨는 대학 졸업 후 국내
여러 건축 교육의 시도 중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경기대 건축전문
대학원의 교수이자, 알바로 시자 사무실 출신의 김준성 건축가의 영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김수영(김): 학부를 졸업할 당시 바로 유학을 간다고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다. 유학을 가더라도 실무를 좀 한 후에 가야지 라는 막연함은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도 갈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졸업할 때 가장 이른 시기에 신입사원 공채가 있었던 공간건축에 지원해서 일을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12월말쯤에 건축가 김준성을 중심으로 한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이 설립된다는 사실을 접했어요. 93년도로 기억되는데 학부 때에 월간 건축과 환경에서 김준성의 특집을 보았고, 그 때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때 당시 좋아하는 건축가, 철학자, 예술가 top 10을 수시로 노트에 적어 놓곤 했었어요. 그때 당시 좋아하는 건축가 1위가 건축가 김준성이었습니다. 2위는 알바로 시자... (웃음)
박: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과 역사를 가진 ‘공간’건축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 신입사원공채가 11월로 당시 가장 빨랐어요.
박: 당시 ‘공간’건축은 한국 현대 건축의 1세대이신 김수근 선생님에 의해 시작된 사무소이기도
하고 건축 설계 사무소로서도 굉장히 의미가 있었을 텐데요?
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좋아하는 선배가 지원해서 덩달아 따라 갔습니다. (웃음) 은연중에 공간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실무라는 영역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공간이라는 걸출한 사무실에 대한 의미를 크게 두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2월에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에 대한 입학 홍보를 하기 시작했을 때, director가 김준성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공간’을 그만 뒀다. 95년 1월에 퇴사하고 김준성 선생님을 찾아갔고,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에 들어가서 4학기 중 김준성 스튜디오가 없는 학기를 빼고 3학기를 김준성 스튜디오만을 들었습니다. 그 때 당시 같은 선생님을 두 학기 이상 듣지 못하는 규정이 있지만 그냥 우겨서 3학기를 들었죠. (웃음)
학교에서 만난 김준성 건축가
박: 학교에서 만난 김준성 선생님과 잡지에서 본 김준성 선생님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입장이나 아이디어를 유출해내는 방법이 제가 알고, 배웠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허접 했던 사진첩 4권을 포트폴리오라 들고 김준성 선생님이 운영하고 계셨던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갔었습니다. 그 당시 김준성 선생님은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책상 앞에서 예쁜 오렌지색 자켓을 입고 일을 하고 계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좋아했던 분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리고 좋았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선생님께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 가려고 하는데 괜찮나, 나는 모험하는 거다. 공간을 그만두고 간다.’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답이 걸작이었어요. ‘나도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 차린 건 모험이야.’ 그렇게 시작된 김준성 선생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박: 김준성 선생님을 보고 학교에 들어갔지만, 당시 여러 재능을 가진 다양한 교수진이 많았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건축 교육을 받고 돌아온 조병수, 김헌, 김헌태, 토마스한, 민선주, 서혜림 등 학교에서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김준성 선생님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해체주의가 유행처럼 등장했고, paper architects 등 기존의 고전적인 건축의 언어가 아닌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김: 그렇습니다. 당시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에 한국 건축계에 바람을 일으키고 계셨던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고민하진 않았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언제나 김준성이었습니다.
박: 제가 기억하는 김준성 선생님은 현상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했어요. 모던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태가 active하거나
역동적인 건축을 했습니다. tectonic에 대한 얘기도 많이 언급이 있었습니다. 수업 받았을 때 받은 영향이나 좋았던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그것을 건축적인 결과물로 끌고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박: 건축의 프로세스를 말하는 것인가요?
김: 그렇습니다.
박: 학교에서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프로세스 도출에 대한 베이스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김: 아이디어를 어디서, 어떻게 도출하느냐의 문제인데 그것은 수업 중 김준성 선생님이 예로 든 스티븐 홀의 스콜로프 피난처 계획안<image3>에 대한 설명을 통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장의 스케치는 도시가 보이는 강에서 배 저어 네 개의 텅 빈 유리블럭의 탑으로 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수면에서 4센티 아래에 위치한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어 들고 바지를 걷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두 장의 스케치를 보여주시며 땀 흘려 노를 저어 피난처에 도착하여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는 행위 자체가 아이디어라고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처음으로 접하는 접근방식에 놀랐을 따름이었어요. 이것이 기존에 생각했던 프로세스와 다르다고 말했던 부분입니다. 학부 때에는 주어진 프로그램을 가지고 매스 스터디를 통해 형태를 예측하고, 평면을 구성하며 동선을 풀어내는 과정의 반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준성 선생님은 출발 자체가 다른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원리나 영화 같은 다른 장르에서도 건축적 접근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런 것을 현상학보다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런 경험을 통해 건축적 아이디어를 도출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 실무를 경험하고 난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김: 글쎄... 실무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건축을 바라보는 입장이 변하긴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 당시 때만큼 김준성 선생님께 광분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웃음)
3명의 스승
박: 그런 다양한 건축적 접근을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그
당시에는 많았습니다. 한국의 기존 건축이 가지고 있던 접근의 무거움이나 중압감에 의한 결과들과 시작에서
차이가 컸죠. 완전히 다른, 생각과 접근의 대조가 심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그 다른 것이라는 차이에 의해서 봤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에 많이 휩싸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와서 본다면 어떤 차이일지, 그리고 가능성은 무엇인지, 그것이 나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김: 아마도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질문처럼 건축설계라는 과정에 대한 지루함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크기만 다를 뿐 항상 같은 프로세스에 비슷한 결과물들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학교에서는 건축물이 어떻게 지어지는 것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결과물이 예쁘게 보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기존에 협소했던 건축적 언어들이 김준성 선생님을 비롯한 유학1세대들을 통해 훨씬 더 다채롭게 전해졌었습니다. 신기했다고 해야 할까... 그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문장이 ‘재료의 물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장에 빠져서 도면 한 장 없이 졸업작품<image4>을 마칠 수 있는 무식함을 보였으니까 말이죠. (웃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현재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건축을 바라보는 패턴을 좀 더 확장시키는 계기가 된 것 만은 확실합니다. 학교 때 김준성 선생님을 만나 실무를 시작하고 김종규, 알바로 시자와 작업을 하면서 건축물을 바라보는 관점뿐만 아니라 건축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해온 것 같습니다.
박: 숨비건축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김준성의 무엇, 김종규의 무엇이 있나요? 김준성과 김종규는 많이 다릅니다. 감성적인 김준성과 냉철한 김종규의 서로 다른 성향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70년대 생들이 사무실을 다니던 때는 4.3건축 세대와 연결이 끊어진, 이전 세대처럼 어디 출신이라는 연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영씨는 지금까지 스승과의 연결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작업의 종류와 접근 방향 자체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의 젊은 건축가들은 주택, 리노베이션, 인테리어 등과 같이 작은 일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이전 세대의
스승과 연결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젊은 건축가들은 박물관, 오피스 같은 규모가 크거나 자신의 의지를
좀더 개입 가능 할 수 있는 건축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방향은 고민해야 하는 것도 다르고, 공사비 단가도 다릅니다.
김: 좋은 질문입니다. 저는 좀 전에 언급되었고 직접적으로 함께 작업을 하였던 세 명의 스승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준성, 김종규, 알바로 시자입니다. 숨비건축에서 보이는 건축적 영향이나 작업의 종류에 대해서는 별개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현재 건축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스승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상황에서 결정을 하기 전에 ‘이 스승은 어떻게 할까? 아님 저 스승은?’이란 상상을 통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갑니다. 다른 젊은 건축가들에 비해 창조적인 결정이 부족할 지는 몰라도 숨비건축이 하고자 하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긴 실무과정을 지나고 비교적 늦게 독립해서 이것저것 실험을 하기 보다는 완성도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다음 질문들 가운데 있을지는 모르지만 숨비건축이 지향하는 바는 진짜(?) 젊은 건축가들과는 다릅니다.
알바로 시자를 만나고
박: 제가 느끼는 것은 아무리 김준성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시자와 김준성의 성향은 많이 다릅니다. 결국 추구하는 목적, 결과물이 많이 다르게 될 것입니다. 영향을 받고 맨 마지막으로 연차가
올라가면서 디테일에 대한 부분을 하면서 시자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왜 궁금한가 하면, 학교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내용들이나 시도들을 접근을 많이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준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서, 결국엔 알바로 시자와 연결된 것이죠. 알바로
시자는 역사적으로 본다면 훨씬 고전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모더니즘에 가까운 작업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작업하는 것들이 그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다시 모더니즘으로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알바로 시자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지나고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김: 맞습니다. 현재의 영향에 절대적인 부분은 알바로 시자입니다. 후배의 표현에 따르면 ‘씨빠’이죠. 숨비건축이 다른 사무소와 차이점이 있다면 첫 작업이 책이었다는 것입니다. ‘Constructing’ 제목으로 전 사무실(MARU)에 있을 때 알바로 시자와 작업을 하면서 설계부터 시공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결과물입니다. 보통은 사무실을 시작하게 되면 하나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에 반해, 숨비는 먼저 알바로 시자의 어깨에 올라타서 건축적인 스테이터스를 먼저 밝히고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첫 건축 결과물인 화인링크에서도 다수의 지인들을 통해 알바로 시자의 영향이 보인다고 들었을 뿐만 아니라 저 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숨비에서 밝히고자 했던 것은 한국에서 건축물이 구축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와 한국 건축가의 책임과 역할에 따른 지속 가능성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숨비에서 지어지는 건축물은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통해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보이는 모습이 알바로 시자이든 김준성이든 김종규든 개의치 않습니다.
박: 건물이 구축된다는 것을 포함해서 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에 대한
것이 있었나요?
김: 사실 알바로 시자라는 건축가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있었지만 책을 만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가장 곤욕스러웠던 것은 건축적인 언어의 부재였죠. 한국이라는
땅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며 Architect라는 직능을 수행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한국에 지어진 건축물에
대해 알바로 시자의 시선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들이 부족했습니다. Constructing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건축물이 구축되는 과정을 설명한 책입니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5개의 장들도 역시 구축(tectonic)을 염두에 둔 단어들 이죠. 어찌 보면 이를 관통하는 주제는 구축을 위한 치수의 원칙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설계와 시공의 과정 내내 치수와의 싸움이었고, 이 책을 통해서 밝히고
싶었던 것도 구축, 즉 tectonic이라는 것이 하나의
건축물이 세워지면서 필요한 모든 부분들의 치수들을 모아서, 배치하고,
연결하고,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하며, 이를
수행하는 직능이 Architect라는 것입니다. 가장 크게
배운 건 건축가로서의 책임과 역할들을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컨트롤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나머진
디자인 언어들에 대한 것이죠. 구축을 통해 디자인 언어들이 따라온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박: 알바로 시자는 진행해 왔던 프로젝트든 개인적인 관심사든, 삶이든 처해져 있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사회적인 관심과 이슈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를 맡아서 했습니다. 포르투갈 같은 경우에 1974년 민주화 운동인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혼란의 시기였고, 독재와 맞싸워서 작업들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프로젝트에서도 그런 것들이 쌓여
있을 텐데, 그것과 연결되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김: 알바로 시자의 배경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포르투갈에서 건축가의 위상은 사회적으로 상당히 견고하고 믿음직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이 보였죠. 아마도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 질문과 같이 험난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건축가의 견고함과 사회적인 험난함이 부딪치면서 서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뭐 현재 포르투갈의 안 좋은 상황을 보면 다른 관점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이란 곳에서의 건축가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그 모습은 사회적으로 볼 때에는 빈약하기가 이를 때 없어 보입니다. 역할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무튼 알바로 시자와의 작업을 통해서 건축물과 건축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었습니다.
박: 본질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인데 건축물이 구축되는 것이란 것과 건축가는 지어지는 것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연결시키는 역할이란 것입니다. 그것이 디자인이고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물을 구성하기 위한 모든 협력관계, 즉 구조, 기계, 전기, 토목, 각종 재료 및 제품과 관련된 협력업체들과의 관계에서 디자인이 형성된다는 것이죠. 이것이 구축인 것 같습니다.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등 모든 것을 건축적인 토대 위에서 형성해가는 것이 구축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건축에 있어서 본질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제 겨우 하나의 건축물을 만든 마당에 너무 많은 확신을 해서 좀 민망하네요. 다시 주워 담아야겠습니다. (웃음)
공간의 명료함이 만들어지는
박: 건축 과정 전반에 걸쳐 협업자들과의 관계와 진행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내용들입니다. 협력업체들과 어떤 관계, 어떤 위치에서 조정
또는 진행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김: 모든 부분에 있어 우리가 하고 싶은 공간에 대한 센스,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지어지는데 필요한 모든 것에 정확한 치수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놓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숨비에서는 가능한 건축물에 관련된 모든 부분을 실제 스케일로 도면화해서 내보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외국과 같이 건축가를 중심으로 건축주, 시공사, 협력업체들이 끊임없는 협의를 통해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돈과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현장조정이라는 것이 말같이 쉽지가 않죠. 현장에서의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변경을 가능한 줄이려고 합니다. 대가가 되면 이런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을 지 몰라도 현재는 아닙니다. 능동적으로 건축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시공사나 협력업체가 적기 때문에 더욱 명확한 치수원칙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공사나 협력업체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가 갑니다. 시공사는 저가수주에 시달리고, 협력업체는 저가 설계비에 시달리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능동적으로 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건축가의 위상도 빈약한데 협력업체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점점 빈약해져만 가는 건축생태계를 생각하면 고민이 많이 됩니다. 이 모든 출발이 건축가의 역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박: 그런 움직임에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 나갔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잠깐 언급했지만 모든 설치물의 위치, 높이 등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천정고가 2400이면 그 높이를 맞추기 위해 모든 협력업체들이 움직였죠. 시자에게 받았던 큰 인상 중에 하나는 치수에 대한 명료함이었습니다. 마치 실재 스케일의 건축물을 들여다보면서 스케치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스케치를 반드시 모델작업으로 확인한 후 결정을 했지만 경이에 가까웠고 어떤 원칙에 따라 치수를 정할지 늘 궁금했었습니다.
박: 실무와 연결해서 계획과 관련된 질문을 한다고 하면 그 부분이
화인링크에서도 많이 연결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나타난 치수들이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 여기서 보여준, 제가 느꼈던 공간감과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공기는 많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잘 정리되어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기뻐했었습니다. (웃음) 아까 얘기했던 2400나 2150
같이 이런 류의 치수들이 알바로 시자선생은 어디로부터 온 건지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바뀌어질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 치수들을 다 외워서 똑같이 적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상황상 창이 어디에 그려져 있고 색이 어떻게 바뀌고 질감이 어떻게 달라지냐에 따라서 치수는 계속 변화를 줄 수 있는 요인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그 치수들은 어디서 오는지? 경험인지, 감각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훈련되어왔던 그런 치수에 대한 데이터일지는
그 세가지가 각각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김: 중요한 질문입니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들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건축가들의 치수가 그려진 도면들입니다. 틈만 나면 천정고는 얼마인지, 모듈은 몇 인지 등 도면에 표시된 치수를 모두 암기(?)하려고 합니다. 알바로 시자는 물론이고 치퍼필드, 올지아띠, 마끌리 등 소위 명확한 건축적 어휘들을 구사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건축가들의 도면들을 통해서 건축물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편입니다. 사진에서 읽히는 것도 있겠지만 왜곡되는 면이 있어 가능한 도면으로 건축물을 읽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나는 좋은 공간에 대한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떠한 공간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국내의 건축물도 그렇지만 국외의 것들은 거의 가보지 못하였죠. 물론 다른 나라에서 좋은 것이 한국에서는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탓에 화인링크에서도 그 치수에 대한 영향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죠. 헌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좀 전에 나열하였던 건축가들의 언어들은 재미있게도 고전적이고 예전부터 있어왔던 보수적인 언어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건축언어들을 현재의 상황과 건축가의 선택에 따라 변형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변형 또한 건축적인 명확한 원리에 따라 발견된 것이지 발명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최근 치수 즉 스케일에 대해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스케일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와 의미가 있다면 ‘어떤 스케일이 발견될 수 있는가’ 입니다. 뭐 건축을 하는 동안이면 계속해서 들게 될 ‘풀리지 않는’ 생각이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박: 그렇게 나오는 치수들, 공간과
공간을 연결시키는 방법, 그 다음에 한 번씩 한 번씩 정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돌발적인 그런 것들이 나오는
내용들을 포함해서 라파엘 모네오가 하는 시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침묵적 서정성’, ‘응축된 공간’이라는 표현들을 씁니다. 그런 것들이 설명한 알바로 시자의 정확성과 굉장히 모순되게 읽히네요. 실제로
경험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졌나요?
김: 모순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정확성 때문에 시적이고 감성적인 공간들이 연출된 것이라 확신합니다. 범접할 수 없는 알바로 시자의 천재성이 만들어내는 공간적인 탁월함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박: 그것들을 실제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는 더 정확한 치수와 내용들을
바탕으로 해서 그것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인가요?
김: 알바로 시자는 모든 면에서 엄청나게 technical합니다. 솔직히 이런 부분들은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부분입니다. 알바로 시자는 미장을 이해하는 건축가입니다. 다시 말해서 건축물이 지어지는데 필요한 모든 산업적인 지식과 물리적인 이치를 이해하고 있죠. 이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수들이 나오고 훌륭한 공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 놀라운 것입니다.
FINELINK
박: 얘기한 그런 시자의 방식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게 본인 프로젝트에서 연결이 됩니다. 그러나 알바로 시자는 조건들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시자의 ‘아모레퍼시픽 R&D센터’와 김수영의
‘FINELINK’를 보자고 하면 의식해서 했는지 모르겠지만 화인링크가 훨씬 더 경직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모듈과 치수를 보고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모레 퍼시픽 R&D센터’는 형태, 재료, 공간 그것들을 조율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모듈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에 의해서 모듈이 흩뜨려지는 치수가 중간 중간
보였죠. 그걸 경험하고 화인링크를 보면 훨씬 더 잘 모듈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6000모듈에서 안에 한 부분만 치수가 다르게 정해진 것을 보면 6000모듈안에
갇혀 있습니다. 훨씬 더 기본 어법이든 치수에 대해서 더 신경을 써서 진행을 했구나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 그것이 스스로를 더 경직된 상황으로 되진 않았는가 생각이 들었죠. 단면도
마찬가지고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런 것에 대한 의식이
있었나요?
김: 화인링크는 숨비에서 지어진 첫 번째 건축물입니다. 그 때문이어서 인지 알고 있는 스케일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경직되게 보였을 수도 있죠. 하지만 알고 있는 것들을 숨비의 입장에서 어떻게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까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R&D센터와는 모든 면에서 상황이 달랐고, 모든 과정에서 다른 건축적 반응들이 필요했었습니다.
박: 알바로 시자의 표준화된 재료와 관련이 있나요?
김: 알바로 시자의 표준화하는 원리를 따르려고 하였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화인링크는 건축비가 낮은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표준화된 것을 사용하거나 표준화해서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어떤 방식을 취하냐에 따라 비용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재료들을 다루는 방식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했습니다.
박: 산업화에 의한 부산물의 치수인가요, 공간감에 의한 체득된 치수들인가요?
김: 산업화된 치수들과 공간에서의 치수를 적절히 조절하고 배치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건축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절한 치수들이 찾아지고 적용될 때에 좋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공사의 모든 과정들이 비용과 연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공간에 대한 욕심 때문에 건축주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꼭 필요한 부분들은 그것에 대한 가치를 건축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받아들여졌을 때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기는 합니다.
박: 그걸 찾아낼 수 있나요?
김: 하나의 건축물이 세워진다는 것은 필요한 모든 부분들의 치수들을 찾고, 모아서, 배치하고, 연결하고,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고 한다면 반드시 찾아내야 부분입니다. 이를 수행하는 직능이 건축가이죠.
박: 클라이언트의 요구조건은 의심에 여지없이 많이 받아들이는 편이었나요?
김: 건축주의 요구는 많이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짜장면을 요구하는데 짬뽕을 먹으라 하고 싶진 않아요. 오히려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작업이 많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우기는 건축주는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화인링크의 건축주는 설계과정에서부터 완공까지 전 과정에서 우리를 전적으로 믿어 주셨습니다. 아마도 평생 이런 건축주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죠. 다 완성이 된 후에 생활을 하시면서 더 만족하셨습니다. 건축가로서 존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매우 행복한 일이죠. 화인링크에서는 공간의 밀도를 조절해 보고 싶었습니다. 좀 조였다 풀고, 조였다 푸는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높낮이의 구성뿐만 아니라 직사광, 간접광, 음영 등 건축물이 품고 있는 빛의 밀도들도 조절하고 싶었습니다.
박: 건축의 시퀀스적인 관점인가요?
김: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건축적 체험을 주된 시퀀스에서 드러나도록 하였죠. 화인링크에서는 여러 겹의 공간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겹들은 전체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각 겹들을 연결해 주는 공간에 의해 나누어져 있기도 합니다.
박: 그것에서 자신이 의식적으로 의도하거나 얘기하고 싶은 부분들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시적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런 것들이 어떻게 구현되는지요? 좋았던 부분은 시퀀스에 대한 부분과 같이 의도한 바가 잘 전달되는 부분입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입구의 방향을 왜 그곳으로 설정했는가가 궁금했었는데 모듈에서 벗어난 잉여의 사이즈가 모여 있는 곳이 입구였고, 직교가 아닌 예각을 입구에 두고 시작을 했던 것이 입구에서 건물 전체에서 주는 경직성을 풀어주었습니다. 건물 내부 안으로 들어와서는 건축주의 요구도 있었겠지만 내부 높이가 무척 높고 장방형의 긴 공간 안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주 날씬한 기둥 두 개가 버티고 있는 상황들이 그런 공간감을 만들어 주었죠. 그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넘어갈 때는 책을 천천히 넘기는 것과 같은, 계단을 거쳐서 상부에 있는 공간과 연결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기능이 달라지는 방식과 그 변화되는 속도가 계단을 오르며 시간을 늘여줍니다. 여기에서 공간감과 빛에 대한 질감은 상부에서 천창을 타고 오는 빛의 공간과 수평적이고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실내가 만나면서 공간의 대비를 보여줍니다. 배치와 관련해서 궁금했던 부분들은 평평한 인공의 땅에 건물을 계획할 때 주변이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나요? 두 개의 입구와 처음 시작할 때 컨텍스트를 읽어낼 때의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김: 박창현 소장님이 너무 정확하게 말씀을 해 주셔서 할 말을 잊었습니다. 화인링크는 파주출판도시 2단계 부지에 다섯 번째로 완공된 건축물입니다. 사실 주변의 건물들은 없었지만 마스터플랜에 의해 계획된 도시이기 때문에 건축한계선들로 꽉 짜인 틀이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단지를 채울 건축물들의 성격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대략적인 맥락들이 정해진 단지라 할 수 있습니다. 블록에 대한 마스터 플랜을 진행할 당시 중요했던 것이 가로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주요한 가로에 대한 설정이 현재 주 출입구가 있는 쪽이었습니다. 사실 현재는 외부 데크 공간과 연결되어 휴식 등 부출입구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기는 하지만 블럭에 다른 건축물들이 모두 들어서게 되면 다른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맥락에서 주출입구는 외부가 내부와 연결되는 공간으로 건축물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전체적인 건축물의 맥락과는 이질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외부와 만나는 부분에 대한 건축물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은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것인데, (웃음) 입구에 대한 고민은 제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 건축물은 딱히 메인 파사드라는 면이 없기 때문에 주출입구에 대하여 더 많이 고민을 하였습니다. 또한 내부로 들어섰을 때 시선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 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박: 그게 실제로 강한 메시지를 가지고 형태를 만들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사실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주출입문 옆에 있는 기둥도 입구 면에 맞춰 45도 틀어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화인링크는 조각으로 보면 소조였습니다. 하나의 매스에서 각 부위별로 상황에 따라 반응을 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가로에 대해서 반응하고 있는 저층부는 주출입구, 부출입구, 하역과 주차 그리고 식당 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면들은 프로그램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덜어내는 방식과 스케일이 조금씩 다릅니다. 또한 상층부는 프로그램과 향에 따라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매스를 구성하는 것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박: 단면에서 보면 이전에 알바로 시자가 했던 건물에서 봤을 때의
단면의 유형과 상황들이 다릅니다. 물론 여기서도 적극적으로 반영했는지 모르겠지만, 단면에서 보면 중앙의 중정을 기준으로 대 공간들을 두고 주변의 작은 공간에서는 레벨을 내리고 올리기도 하는
시도와 이런 것들이 공간들이 실제로 전체 공간에서 의도하는 계획적인 내용이 잘 나타날 수 있을까가 궁금했습니다.
김: 이 질문에서 명확하게 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숨비 첫 번째 결과물은 알바로 시자의 작업을 책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숨비는 알바로 시자의 구별된 시선을 가급적 본질적인 부분에서 작업에 반영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숨비에서 생산되는 작업에서 장, 단점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숨비가 시자를 통해서 건축을 바라보려 하는 것처럼 외부에서 시자를 통해 숨비를 바라볼 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시야가 좁거나 경험이 적어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건축을 업으로 시작한 이후 그 누구도 건축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알바로 시자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임은 분명하죠. 분명한 것은 숨비를 통해 나가는 건축의 과정은 알바로 시자의 작업에서 본질적인 부분들이라 여겨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따라갈 것입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화인링크의 단면은 늘 하고 싶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것이 요구와 맞았을 뿐이죠. 앞으로도 필요한 빛이 담긴 공간을 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박: 넓은 공간은 사실 ‘아모레퍼시픽 R&D센터’에서 느꼈던 공간과 거의 같았습니다. 압축되고 넓은 공간. 그 세가지 공간이 연결되고 변화해서 더 넓어
보이게 조절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김: 사실 6mX6m의 오픈플랜의 공간은 매우 흔한 공간입니다. 또한 이 모듈은 사무공간으로 매우 효율적일 뿐이죠. 화인링크에서 알바로 시자의 언어가 드러나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결론적으로는 시자의 공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간이라는 것이 단순히 치수가 유사하다고 해서 같은 공간 일 수가 없습니다. 공간은 빛의 질감, 프로그램의 요구, 스케일 등 건축적인 섬세한 것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단순히 마감이 비슷하다고 같다고 볼 수는 없죠. 특히 2층의 넓은 사무공간은 구조, 천정의 높이, 구성방식, 조명방식, 설비방식 등 모든 것에서 ‘아모레퍼시픽 R&D센터’와는 다릅니다. 높고 밝은 빛의 2층 홀 공간을 통과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고 압축된듯한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숨비건축이 하는 작업
박: 건물에 대한 기능과 성격은 다른 젊은 건축가들이 해내는 작업의
방향이든 기능이든 그 포커스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김: 음, 사실 다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위 젊은 건축가라 칭하는 집단의 수많은 스펙트럼 중 하나의 입장이라고 보면 될 듯하네요. 왜냐하면 각자 자라온 건축적 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것에서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스펙트럼 중 어느 것이 좀더 지속 가능한 작업 방식이냐 하는 것일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박창현 소장의 인터뷰작업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듯 싶습니다.
박: 특별하게 건축적인 부분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김: 창호입니다. 물론 알바로 시자와 작업할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시스템 창호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내 외부에 미치는 영향도 알게 되었죠. 창호에 대한 사랑은 각별합니다. 숨비에서 나가는 도면에서 가장 많은 장수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창호 자체에 관심이 많고, 내 외부가 만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창호 주변 디테일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아마도 창호와 창호주변의 퀄리티가 건축물의 퀄리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숨비표 창호를 꼭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설계도면에 대한 부분입니다. 참고로 화인링크의 실시도면을 오픈소스로 하여 원하는 사무소에 모든 세트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숨비는 건축물이 세워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도면에 실재크기로 그려 넣으려고 합니다. 또한 숨비의 실시도면의 특징은 엑소노메트릭을 많이 그립니다. 하지만 아직 시공사들이 도면을 읽어내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죠. 그래서 다음 고민은 어떡하면 시공사가 읽을 수 있는 필요한 도면들을 그려낼까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구법에 대한 도면도 그려 놓고 싶고 제품들이 만들어지고, 설치되는 과정도 잘 드러내고 싶습니다.
박: 더 새로운 제품이든 기술이 좋은 제품은 계속 나오기 때문에 관심을
계속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능이 아닌 한국사회의 건축가
박: 그것 말고 이외의 다른 관심들은 어떤 것이 있나요? 건축 바깥을 이야기하거나 발언할 수 있는 기회나 관심이 있나요? 알바로
시자는 이론적이고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에 따른 책임이 자신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적인 상황들을 저버리지 않고, 계속 관심 가지면서 진화시켜 지금의 자신의 것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이 일본과 다른 것이 일본은 고베, 후쿠시마
대지진, 원전사고 등 국가 재난 사건들이 많이 있었죠. 그것에
대해 건축가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서 해결해 나가려고 하고 실천에 옮기는 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재작년
한일건축교류전에서도 그런 부분에 대한 전시를 하며 그것과 관련된 의논하길 기대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건축 그 자체 안에서만 의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조성룡 선생님은
건축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실제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준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사건이나 사회적인 변화들을 겪게 될 텐데,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사회적인 책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 사실 그 문제는 정말 많은 고민이 되는 문제입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건축 베이스는 근본적으로 일본 혹은 유럽과는 다릅니다.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가가 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건축가의 역할이 어떤 것을 예쁘게 만드는 디자이너 정도라 생각하면 다른 문제이긴 한데, 책임질 게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건축가의 사회적인 외적 책무를 논하기에 앞서 건축을 만들어내는 영역 내에서의 책임과 역할 그리고 소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앞섭니다. 건축 내에서 조차도 불분명하고 이야기되지 않는데 건축 외부적인 것을 함께 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의 책무 자체도 모호한 상태에서 그에 딸린 수많은 협력업체들은 정말 말할 것도 없죠. 건축가만이 알고 있다 생각하는 건축적인 가치들을 건축주, 시공사, 협력업체에게 이해할 것을 강요하고, 외국건축물 사진을 보여주며 왜 이렇게 못하냐는 물음 자체가 미안할 뿐입니다. 한마디로 건축은 내부적으로 너무 빈약합니다. 건축가가 원하는 건축물의 가치에 도달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고 심지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도 힘들죠. 일본이나 유럽처럼 명확하게 구분된 책임과 역할을 토대로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면서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외국의 상황과 같지 않기 때문에 불평만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런 상황을 껴안고 가는 수 밖에는 없는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라도 건축을 직능으로 삼고 있는 건축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한국적으로 다시 규정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건축가를 직능으로 봐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알 것입니다. 또한 건축가를 직능으로 생각하는 건축가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죠. 이런 건축구조에서 사회의 요구에 대한 반응 혹은 결과물의 질은 매우 낮거나 잘못된 방향을 만들어내곤 하는 것 같습니다. 지속 가능하며 명확한 스텐스를 갖추기 위해서는 건축가 만이 다룰 수 있는 직능을 규정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은 사실상 다음 문제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건축가의 책임 혹은 소통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려운 건축을 쉽게 표현하는 것도 능력이고 젊은 건축가의 소임이라 하면 좀더 분발해야 할 부분이기는 합니다.
박: 그런 부분들이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바뀌고자 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나마 최근 들어서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얘기했던 내용과 연이어서 그전에
제가 들었던 내용 중에 건축가가 일반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들을 생각해 보았나요? 무엇을 가지고
일반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디자인 같은 것이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을 가지고 탄탄히 해서 전문가로서의
어떤 위치를 다시 만들거나 아니면 다시 잡아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던 내용들 하고 좀 다른 관점입니다. 기술적인 부분들을 어떤 관심을 가지고 진행시켜 나가나요?
김: 늘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건축가는 지휘자와 비교된 곤 합니다. 사실 내 자신조차 이 의미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지휘자가 각각의 악기와 그것을 다루는 연주자들의 특성, 기질 등 모든 것 대해 잘 알고, 그것들을 잘 연결해야 하는 것처럼, 건축가들은 재료와 구법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다룰 수 있는 직능을 수행하는 사람이죠. 사실 이 부분에 대한 교육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가를 멋진 스케치나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너무 많습니다. 건축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오히려 건축가의 영역을 협소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하게 됩니다. 요즘은 건축주들이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수준 높은 경험과 취향이 오히려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가 명확한 건축적인 의견들을 밝히지 못하면 끌려가기 마련이죠. 어떻게 하든 건축주의 신뢰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숨비는 그 토대를 기술적인 부분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술적인 부분들로 엮어진 공간, 그리고 빛 이것이 숨비 하려는 것이죠. 기술적인 판단에 대한 명확함이 소위 말하는 디자인에 대한 신뢰를 획득하게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 듣고 보니 많이 공감이 됩니다.
오히려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넘겨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내가 정말 관심
가져야 하는 상황들을 잊고 그 흐름에 따라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김: 우려가 되는 것은 건축가의 빈약한 위치가 학생들한테도 나타납니다. 저조차도 학생들이나 건축 초년생들이 건축가의 길에 대해 물어올 때 어떤 이야기를 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지어지는 일이 많은 곳에 가서 건축물에 대한 전체적인 경험을 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좋은 건축물을 만들려고 애쓰는 아키텍트가 있는 곳에서... 꾸준히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근육들을 키우는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근데 지금 현실은 그런 게 어렵습니다. 늘 전문가적 직능을 다루는 사람이 건축가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겪기가 그리 만만한 것 같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첫 직장이 숨비인 세 명의 직원들 보며 희망은 얻기도 합니다. 방향만 잘 설정해준다면 매우 빠르게 작업을 익히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됩니다. 사실 감각적으로 보면 나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또한 관계에 대한 유연함도 나보다 낫죠. 내가 자라온 배경 탓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잘 숙련돼서 건축가로서 좋은 입지를 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박: 어쨌든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고 그 부분들은 회복해야 되는
중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무실을 하면서 처음에 일이 많지 않을 수 있는데 이때 어떤 일이
들어왔을 때 그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가 궁금하고, 처음에 일 들어오면 ‘무조건 다 해야지!’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일이 있을 땐 정신이 없어 재미있고 시간도 잘 가지만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없을
때 그 시간을 사무실에서 어떻게 보내는지가 점핑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사무실에서 일이 없을 때 뭐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김: 아직 일을 선택할 만큼 풍족하지 않아서... (웃음) 굳이 기준이라 하면 1. 지어지는 것인가? 2.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3. 이 일을 통해 성장이 가능한가? 정도... 1,2,3이 모두 연결되는 것 같은데 모든 사무실이 비슷한 거 아닌가요?! 아, 또 있습니다. ‘돈이 되는가?’ 사실 맨 마지막이 가장 큰 거 같습니다. (웃음) 작은 사무실이다 보니 일이 연속적으로 있지 않고 중간 중간 여유가 생깁니다. 이제껏 그 시간들은 좀 다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짧은 기간동안 현상을 했습니다. 또한 숨비에서 기획하고 있는 책을 만드는 시간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워낙 방대하고 긴 시간을 요하는 것이라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숨비가 하는 일
박: 다음 책 소개는?
김: 가제가 <Manufaturing>이란 기록입니다. <Constructing>이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이 구축되어가는 큰 그림을 주제로 삼았다면 다음 서적은 작은 부분에서의 구축을 말하고 싶습니다. 재료와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에서부터 현장에서 시공되는 과정을 숨비의 작업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싶은 책입니다.
박: 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에서는 많은 국제적인 스타 아키텍트들이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대 자본을 가진 기업들로부터 대학교, 관공서의
공무원까지도 스타 아키텍트 쇼핑을 하는 것 같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찬 반의 의견이 있기도 하지만 일본의
버블 시대의 상황과 많이 흡사하게 보입니다. 사실 성격은 좀 달라 보이긴 하지만 알바로 시자도 그런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 솔직한 심정은 소위 스타 아키텍트라는 사람들이 한국적인 상황들을 잘 인식하려고 하고, 그들과의 작업이 협업이라는 테두리에서 컨트롤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찬성입니다. 최근에 접했던 국내 사무소에서 설계된 대규모 공공시설들을 보고 있자면 참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물론 턴키라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냈다고는 하나 좀 심한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국내 건축가에 대한 발주처 측의 신뢰도 많이 부족한 것 같고... 이유야 어쨌든 건축적으로 기준이 될 수 있는 좋은 건축물이 세워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