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플러스_ 김준성


현상학과 건축

박창현(박): 김준성 선생님이 한국에 들어오셨을 때가 90년대 초반 이신데 그때 한국의 건축은 1990년에 출발한 4.3그룹 활동과 연장선 상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4.3그룹에서 서양 건축에 대한 일종의 답습과 함께 한국 건축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할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7년 대학원에서 설계 수업 내용에 현상적 상황을 설계로 연결하는 과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설계와 현상학 사이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해서 시작을 하게 되셨고 어떤 계기로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나요?


김준성(김): 1990년대 초 한국에 들어와서 현상학을 많이 이야기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컬럼비아대학 대학원 마지막 논문 학기에 스티븐 홀 선생님의 스튜디오를 선택한 것으로 시작되었어요. 그분이 현상학적 과정과 사고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때에는 사실 이해를 잘 못했어요. 그 당시 읽었던 책을 살펴보면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의 ‘지각의 현상학(Phenomenologie de la Perception)’이 있었는데 그 책을 사서 한 달을 읽어도 15페이지 이상을 못 나가는 거예요. 언어적인 장애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연속적인 지식이 없다 보니 이해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몇 페이지 넘기고 나면 다 앞부분을 잊어버리니까 다시 또 돌아가야 하고 그런 상황이 벌어졌었죠. 현상학을 계속해서 이야기하시는 교수님 밑에서 나는 이해를 못하고 있는데 큰일 났다, 큰일 났다’ 하면서 시간이 흘러버렸죠. 나 나름대로 현상학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도리어 서울에 와서 다른 계기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 나름대로 깨우쳐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라서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이지 현상학 자체가 중요해서 그것을 많이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 것 같네요.


박: 현상학에 대해 깨우쳐 가는 과정이 꽤 길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현상학에서 깨닫게 되신 부분과 설계에서 적용된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김: 제가 깨닫게 되었던 부분 중 현상학에서는 제일 걱정하는 것이 우리는 시각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감각에는 오감이 있어 시각 외 다른 감각 기관으로 인지되는 세상이 독립적으로 있다는 것을 잊는다는 것이죠. 우리는 다른 감각에 대해 무감각하다 보니 시각 중심으로 되어 있고, 이에 의해 사고가 한 곳으로만 쏠려 있다는 것이 걱정이에요. 그런데 나는 다른 감각에 대한 자각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작업할 때 이것을 어떻게 적용되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맞는 건가?’ 아니면 ‘이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인가?’ 와 같이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현상학이 좋기 때문에 현상학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작업을 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 중의 하나가 ‘현상학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작업을 보면 현상학적이지 않네?’ 라고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 현상학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던 거죠. 스티븐 홀이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과정들이 그대로 녹아 들어 작품에 나왔다? 라고 말하기에는 한국적인 상황이 나를 녹록하게 놔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을 통해서 얻었던 능력은 항상 질문하는 자세였던 것 같아요. ‘내가 왜 이런 걸 하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뭐지?’ 와 같은 해석을 내 나름대로 해보는 것이 내가 작품을 진행하는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너무 개인적이고 감상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을지 언정 ‘나의 컬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만 해도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박: 현상학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서 작업하고는 계셨지만 그것이 건축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은 다른 건축가들과는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것이었군요. 그래서 인지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시는 현상학과 관련된 방식을 비교해 보면 조금 더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프로젝트의 컨셉을 현상학에서 도출해 직접적으로 형태와 공간으로 풀어나가는 결과를 볼 때 건축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조금 더 논리적으로 읽히는 것 같습니다.


김: 논리적이라고 하는 것은 연결고리가 프로젝트를 아울러서 쭉 이어진다는 것 때문에 논리적이라고 이해가 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나 개인의 감성에 의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설득력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용을 파편적으로만 적용되면 변질되고 그러면 굉장히 논리성이 없다고 보는데 프로세스가 쭉 이어진다는 이유로 논리적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잘못 본 것 같지 않나요?


박: 결과물에서 읽히는 것으로 본다면 직접적으로 비교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하게 지각과 물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함에도 김준성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시는 현상학과 조병수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현상학을 비교하면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좀 더 관념적인 접근이라고 생각 하는 것 같습니다. 재료와 물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법에 관한 이야기나 프로세스의 과정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드러났을 때는 조병수 선생님의 결과물들은 몸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보였습니다. 반대로 김준성 선생님 건물에서는 몸과 직접적으로 연결 된다기보다는 컨셉을 풀어가는 과정이 머릿속으로 인지되는 쪽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김: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서울에 들어온 지 20여 년이 되면서 작년에 미메시스 미술관에서 강의한 것을 가지고 『개념에서 건축』으로 라는 책을 내게 됐는데 사실 『개념에서 건축』으로 라는 타이틀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미메시스 출판사에서 제안을 했어요. 사실 그 부분을 컨셉에서 건축으로 전개되는 과정이 색다르고 분명하다는 생각으로 쓰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걸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과거에는 건축에서의 사고를 새로운 것을 가지고 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지려고 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나의 모습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관념적인 건축을 과거에 했다고 하면 요즘에는 그것도 없는 작업을 하는 것 같네요. ‘설명이 되지 않아도 좋은 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어?’ 이런 생각으로 하는 것이라 그 책 제목을 보면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조병수 선생님과 나를 비교를 한다는 것이 어쩌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런 것은 있을 것 같아요. 현상학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프로그램이 주어졌을 때 해석을 하게 되는데, 기존에 건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대한 질문들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비승대 성당’에서 원심력에 관한 이야기도 사실 비승대가 제2군 사단에 있는 헬리콥터 부대에 있는 성당이었어요. 헬리콥터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부력이고, 부력은 어디서 나오느냐? 원심력에서 나온다. 이와 같이 본질에 조금 더 접근하기 위한 사고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 빨간 벽돌과 첨탑이 있는 뻔한 성당의 모습과는 달리, 조금 더 장소에서 프로그램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우리만의 독특한 본질을 좀 더 찾으려 했던 의도들이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조금 또 다르지 않았을까요? 또 젊은 나이에는 그런 것을 하면 소위 과정이 있어 보이기도 하니까 많은 시간을 소비하더라도 자족감을 위해 이러한 과정들을 거친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인가? 아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형 왜 요즘은 그런 작업을 안 해?” 그래서 “요즘 돈 버느라고 시간이 없어” 그랬더니 너무나도 그런 부분들을 아쉬워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에 요즘 왜 그런 작업물들을 생산 안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이가 변하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내가 중요시하는 것이 그때 당시에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라진 것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까 농담처럼 대답한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안 하는 것은 아니고 관심사가 바뀌는 것 같아요.

박: 방금 이야기하신 것과 같이 많은 건축가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장소와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선생님이 관심을 가지고 각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가거나 진행해 나가는 방법론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무게를 어디에 더 많이 두고 안 두고는 없는 것 같아요. 혹자는 그걸 방법론처럼 이야기하고는 하는데 나한테는 방법론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직감의 영역인 것 같아요. 건축이라는 것이 젊었을 때는 개념을 관념적인 열매를 따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면 나이 들어가면서는 시간의 소중함,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어요.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건축을 하니까 결국에는 장소와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잖아요? 어떻게 장소를 써서 프로그램에 더 자극을 줄 수도, 또 어떤 케이스에서는 프로그램이 공간적 특성을 중립적으로 만들어서 장소성을 없애 버리고 프로그램 그 자체를 부각할 수도 있으니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실은 비건축적이라고 하는 해석도 있는데 나는 보다 건축적일 듯해요. 건축의 본질은 사실 그쪽에 있었던 것인데 건축을 형태라고 하면 사실은 무의미해지니까요. 형태를 만드려다 보니 옥죄어지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거기 매달리다 보니 나머지 것들이 많이 잊히게 되고 나는 그 잊혀 있던 부분들을 불러오는 그런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권역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요.

박: 방금 말씀하셨던 잊혔다는 것을 불러온다는 것에서 잊혀있던 것은 뭐를 의미하는 것인가요?


김: 그 얘기를 되게 많이 해요.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고 존재감도 알고 있었던 것인데 잊혀 져 있다가 갑자기 우리가 설계할 공간에 왔을 때 존재의 기억을 되찾게 되는 그런 섬뜩함? 그걸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말로는 그것을 잘 설명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형태적으로 보이는 것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고요. 그렇다면 그것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걸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존재감을 불러들이는 것은 굉장히 달라요. 디테일이 요구되지 않는 상황에서 건축을 하다 보니까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는 것을 간과했던 것 같아요.

박: 집중해서 상황이나 기능에 맞춰 설계를 하다 보면 그런 중요한 내용을 잊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주거에서는 더욱 요구하는 내용이 많다 보니 그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김: 주거 프로젝트는 사는 사람이 정해져 있으니 설계를 하는 나보다 이용자가 더 중심이 되어야 하는 공간이기에 조금 더 설명해서 해결해야 할 영역이 많은 것 같아요. 이용자가 명확하게 결정되어 있는 프로젝트라면 어떻게 보면 또 다른 협업이라 볼 수도 있고요. 작으면 작을수록 물성에 대해서 신경이 가야하고 재료와 재료가 만나는 부분들이 부각되고 노출되는 것인데 요즘 새롭게 주거만 4채를 맡게 되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어느 채를 보더라도 똑같지는 않아요. 어떤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어떤 삶을 사십시오’ 이런 것을 제안하려고 해요. 그렇기에 이런 생각들이 잘 통하는 건축주를 만날 때가 즐거운 것 같아요.

박: 최근 주택을 의뢰하시는 건축주에게 삶에 대한 질문이나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드리면 다양하게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살 집을 위치와 크기 그리고 브랜드만 선택하면 되는, 카탈로그에서 고르듯 쉽게 결정을 했는데 지금은 자신들만을 위한 삶을 제안한다는 것에 대해 아주 흥미를 느끼고 그 주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주택에서 중요한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김: 결국에는 바깥 공간이죠. 소위 말해서 옛날에 우리는 마당이라는 공간이 있었잖아요? 그 안과 밖의 관계성이 어떻게 맺어질 지 예상을 하고 어떻게 만들어주는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박: 요즘 저희 사무실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단독주택도 그렇고 집합주택도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까 결국에는 집 안과 함께 바깥 공간에 집중하게 되고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파트가 좋았던 부분들도 있지만, 그것에 익숙해져 있거나 그것만 경험해본 사람들은 다른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억이 없거나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김: 사실 아직 건축에서 풀어내는 평면을 봐도 아직 아파트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뻔한 그런 공간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아쉽습니다. 바깥을 이야기하다 보니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얼마 전에 ‘힐리언스’라고 홍천에 있는 일을 했었는데 사실 많은 것들이 우리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한가지 좋았던 것이 그걸 계기로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작업 자체가 환경적이지는 않았지만…(웃음) 설계하면서 또 깨닫았던 것은 환경은 우리 건축에서도 환경이 이슈가 되어서 단열 성능이라든지 여러 가지 규제도 많이 생기고 대체 에너지도 많이 있잖아요? 근데 그렇게 볼 것은 아니죠. 사실 의식 속에 있는 것인데 제일 환경적인 것은 가난하게 사는 게 환경적이잖아요?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것이 가장 환경적인 것인데 그것을 환경적인 것이라고 안 느끼는 거잖아요? 에너지를 가장 적게 사용하는 것이 환경적이라고 느끼는 것이니까 근본적으로 뭔가 그런 것들을 건축주에게 생각을 밝힐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디자인에도 반영이 되는 것 같고요. 만나자마자 삼중창 얘기를 하는 분도 계시는데…(웃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처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박: 어쨌든 상대에 따라 대응하는 방식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사무실도 건축주의 상황, 나이, 직업, 가족 관계에 따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삶을 제안을 할 것인지 달라지는 것 같네요.


김: 그런 것이 선수가 되어간다는 소리죠(웃음). 건축은 내가 내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니기에 설득작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 설득력을 갖춰갈 것인지는 개인에 따라 다른 것 같네요.

박: 설득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대화를 통해 설득을 시킬 수 있는 영역이 있고, 또 어떤 방식으로 설득을 해야 할지 어려운 부분들이 있잖아요? 공간에 대한 분위기, 느낌은 실제로 경험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인데 선생님께서는 이런 부분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시나요?


김: 개인과 공공의 프로젝트가 다르기는 한데 개인의 경우에는 찾아오는 분들이 우리의 작업물의 결과물 혹은 태도를 알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처음에 설득하기가 조금 수월한 것 같아요. 이때 뭐가 중요한지를 말하려고 해요. 그 이후로는 중요하게 잡아 둔 것이 흔들리지 않고 그 안에서 설계를 풀어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설득을 해요. 하지만 공공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동숭동 아트센터’나 영주에 대한 복싱 협회의 ‘복싱 전용 훈련장’ 설계 같은 경우에는 복싱 협회라서 그런지 간섭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공모전에 가지고 갔던 그대로 지어졌어요. 동숭동 아트센터 같은 경우는 대통령도 바뀌고 그에 따라 아트센터 재단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바뀌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포함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많은 계획했던 부분이 바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때 우리가 제일 아끼던 아이디어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극장에 대한 아이디어였고 두 번째는 마당에 대한 아이디어였어요. 하지만 극장에 대한 아이디어는 우리의 생각을 관철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최소한 마당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박: 좀 전에 주택에서 선생님께서 건축주와 만나시면서 이것은 꼭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주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내용이 있나요?


김: 사실 요즘 저희 같은 경우는 평면적인 이야기보다 단면적인 아이디어들인 것 같습니다. 주택을 지을 때 단층으로 짓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 2, 3층이 되고, 지하까지 계획하는 경우 레벨이 거의 3개 층 이상이 되기 때문에 조금 전 이야기한 바깥 공간을 세 개 층의 단면에서 바깥 공간이 어떻게 조우하게 되는지 그런 부분이 나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방법이 있어서 모든 프로젝트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족 구성원이나 그 사람에게 전해 들었던 집에 대한 것을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적용해서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4건 중에서 2건은 엄청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주셔서 거의 100% 적용해나가고 있는데 나머지 2건은 처음에만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박: 4개의 주택에서 단면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합니다.



포르투갈과 한국에서의 건축

박: 남미와 미국, 그리고 포르투갈 등 해외에서 계속 계셨었기 때문에 90년대에 선생님께서 한국으로 들어오시면서 이전에 느꼈던 한국의 정서와 스타일, 한국의 상황 이런 부분들이 실질적으로 몸으로 확 와 닿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의 작업에 대한 부분들을 포함해서 작업 환경의 차이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 사실 어찌 보면 다르고 어찌 보면 또 크게 다르지도 않아요. 건축가로서 가지고 있는 본능으로서의 다뤄야 할 상황들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거든요. 기본적으로 가장 크게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시간에 대해 차이가 많은 것 같아요. 건축이 지어지는 과정들을 보면 포르투갈 같은 경우 처음 계획이 될 때부터 설계자가 같이 시작되고 무르익어 가는데 한국의 경우 그렇지가 않으니까 계획하는 단계는 제외되어 있어 하나의 용역 업체처럼 계약이 되고 그러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 작업을 하는 환경이 차이점인 것 같아요. 앞서 이야기했던 나의 건축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잘 없는 것이 안타깝긴 해요. 부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만 또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뉴욕이나 포르투갈에서 느꼈던 것은 프로젝트가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길었다고 느껴졌는데 여기서는 프로젝트를(나쁜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내에 굉장히 많이 또 다양하게 일들을 해결을 해야 하고 접해야 했기에 다각도의 구조로 가게 된다는 것은 또 나름대로 긍정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건축을 생각하는 근본이 다른 것 같은데, 우리는 굉장히 사업적인 마켓(경제적 상황)에 맞춰가는 필드 같은 것이고, 그쪽에서는 건축이 나름의 독립적인 세계, 나름의 존경이나 배려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그런 환경이 없는 부분을 생각해보면 조금 아쉬운 것 같네요.

박: 사업적인 마인드로 보는 건축이 규모도 예산도 크고 자본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 지금 주어진 환경인 것 같습니다. 그런 좋지 않은 환경에서 드러낼 수 있는 한국 건축의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나요?


김: 네. 있어요. 나는 우리 건축가들을 굉장히 믿고 있어요. 이게 한국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컨디션도 있고, 건축법규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카테고리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복잡하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게 반칙적인 건축을 못 하게 하기 위해 규제를 위한 법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작업을 하기 힘들 정도로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그 속에서도 풀어내는 것을 보면 세계 어디를 가든지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들 천재들 같다. 또 어찌 보면 3차원적으로 다루면서 나름의 여분 공간을 찾아 나가는 것은 세계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것 같네요.

박: 그렇다면 반대로 단점이라고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나요?


김: 근본적으로 보면 형태적인 것입니다.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더 근본적인 것들이 성숙되어 있지 않으면서 뭔가 형태적으로 진행되어 있는 것이 아쉬운 것 같아요.

박: 그렇군요. 말씀하신 그런 장점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한두 번 정도 전시 주제로 이어져 왔던 것 같네요. 그러다 보니깐 해외에서 스텝으로서 한국인 건축가를 선호한다고 하더라고요. 프랑스, 덴마크,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한국인 스텝을 선호하는 회사의 리스트가 나올 정도로 좋아하더라고요. 그 이유가 지금 말씀하신 것과 같이 스킬, 속도, 열정도 그렇고 이런 부분들이 뒷받침 되니깐 가능한 것인데 한편으로는 ‘그런 모든 것들을 하기에 앞서 생각하는 것에 대한 훈련 혹은 준비가 되어 있나?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 그런데 그것을 건축을 하는 사람한테만 탓할 수는 없고 사회가 같이 완숙되어 가는 과정이 또 있어야 할 것이에요. 사실 우리사회에는 설계 관련 일을 하는 곳이 주로 설계사무소 뿐이잖아요? 그와 관련된 전문가들이 독립적으로 같이 공존하고 있질 않아요. 그러다 보니 모든 걸 설계사무실 내에서만 해결을 해야 하고 매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다시 바닥부터 파헤쳐야 하는 상황은 건축환경을 힘든 상황으로 만든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건축 설계 일이 바쁘기만 하고 우아하지가 않아요. 나는 건축가랍시고 우아해야 하는데 그런 우아함이 하나도 없어요. 사회에 누적되어 있는 전문지식들이 뒷받침을 못 해줘서 그런 것 같아요. 완숙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나 혼자서 완숙돼서는 안 되는 것이고 사회적인 환경도 같이 완숙되어 가야 해요. 이러한 관계적 부족함 외에, 중요한 내부적 단점도 있지요. 너무 사고가 한 곳에 몰려 있는… 건축적 사고를 위해서는 도리어 조금 건축에서 떨어져 거리를 좀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붙어있는 것 같아요.

박: 건축의 변화를 요구하기 이전에 사회의 변화가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한국에 오셨을 당시에 비해 지금 한국 사회도 많이 바뀌고 있고 또한 선생님도 30여 년 동안 작업하는 과정 안에서 순간순간 변화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되돌아봤을 때 선생님의 작품에서 어떤 변화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김: 나는 건축을 기본적으로 외국에서 배웠잖아요? 브라질에서 시작해서 뉴욕에서 공부했고 기회가 되어서 포르투갈로 가서 일을 배웠는데 어느 날 잠시 다녀가겠다고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못 나가고 계속 있게 된 거죠. 못 나가는 이유는 젊은 나이에 일이 생겼으니까… 일을 하면서 받았던 충격은 컸어요. 왜냐면 내가 배워왔던 알바로 시자나 스티븐 홀 선생님이 하는 건축은 완성도에 있어서 굉장히 높은 건축이었어요. 건축을 공예(CRAFT) 정도의 수준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 밑에 있으며 그런 건축을 배워서 들어왔더니 여기는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는 것이더라고요. 90년대 초 그때는 경제도 너무 좋았고 그러니까 ‘토네이도 하우스’ 같은 경우에도 우리가 했을 때 건축 드로잉도 드로잉이지만 가구나 창호 드로잉이 70여 장이 있었는데 하나도 사용이 되지 않았어요. 창호는 모두 이건 창호로 대체되었고, 가구 같은 경우는 ‘어? 왜 건축가가 속사정까지 간섭하고 디자인하려고 하지? 뼈대만 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하며 집 내부의 내용물은 안주인께서 알아서 채워 놓게 되었어요. 그게 나름대로는 그 당시에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충격이 좌절로 가기보다는 또 하나의 현실로, 어찌 보면 내가 적응해야 할 조건들처럼 받아들여졌어요. 그렇게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다가 10여 년이 지나고 나니 뭔가 빈 껍데기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다시 그러면 빈껍데기 같은 느낌이 들지 않게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이 많아졌었어요. 그때 마침 헤이리 예술문화 단지의 코디네이터를 맡게 되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자 선생님과 함께 다시 작업을 할 기회가 왔죠. 시자 선생님 사무실에서 2년가량 있었지만 당시에 지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게 한국에 와서 안양 파빌리온이 처음이기는 했는데 안양 파빌리온은 거의 설치 작업하듯이 퍼블릭 아트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했기 때문에 시자 선생님의 건축을 시간과 노력을 가지고 완성해 나가기는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시자 선생님이 그 작품을 좋아하기는 했었죠. 그 이후로 제가 시자 선생님의 냄새를 가장 많이 맡고 내가 굶주려 있던 것을 조금 다시 접하게 된 케이스가 ‘미메시스 뮤지엄’이예요.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이 자극됐어요. 20년이 지난 다음에 기회가 되어서 선생님을 만나 다시 또 배우는구나 싶었고, 한국적인 컨디션에 굉장히 적응되어 있던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박: 그러면 도리어 외국에서 경험했던 것이 한국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이었고 그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그 뒤로 다시 시자 선생님이랑 작업하시면서 가구 창호 드로잉에 대한 디테일들이 살아나게 된 계기가 되었군요.


김: 조금 더 이가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 더 주도적인 연출을 할 수 있는 건축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때까지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보다 좀 더 새로움을 추구했던 것 같은데,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는 내가 새로움의 선봉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보였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주책같이 그 터 속에 계속 있다가 어느 순간에 이게 다 허상이었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깨닫게 되었어요.

박: ‘미메시스 뮤지엄’을 작업하신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는데 그 뒤로의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김: 나한테는 사무실이 서촌으로 이사 온 이후로 좀 더 정신이 들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현명해진 거죠. 하루 시간을 보내는 법에 대해서 배우게 됐고요. 그전에는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하며 항상 쫓기는 삶이었던 것 같아요.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같은 경우도 만들어 놓고 4년 반 만에 내가 나오게 됐는데 그 계기는 내가 너무 지친 것이었어요. 사실 가르치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극의 방법이기도 한데, 그렇지만 누굴 가르치기 위해서 건축을 처음부터 배운 것이 아니었고, 궁극적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객이 전도된 내 모습을 보고 지치고 회의감을 가졌었죠. 방에 널브러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좀 추슬러 보자고 다시 학교에서 나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나오고 나서도 10여 년 동안 별로 다를 것 없이 같았던 거죠. 추스를 의지만 있었지 행동으로 옮기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강북으로 이사 오면서 그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박: 서촌으로 이사 온 것에서 조금 자극을 받으시면서 변화가 있으셨나요?


김: 시간을 쓰는 법인 것이겠죠? 무조건 밤을 새워야 되는 선입견이 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고 이제는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거죠. 그게 강북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랑 되게 많이 어울렸고 평창동만 해도 바로 산 밑이니까 산을 볼 수 있는 것이 하루 생활에서 매우 많은 기운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더 내면적으로 현명해지게 되었어요. 늦기는 했지만…(웃음). 건축을 하면서 혜안이 떠지는 경험은 다 30대에 일어났는데 4~50대에 거의 없다가 최근 들어서 조금 몇 가지 계기들로 인해서 혜안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것이 과거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건축, 내가 알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나름대로 건축에 대한 이해에 관한 것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나 자신에 대한 혜안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해야 현명할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굉장히 좋은 거죠.


건축 교육

박: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특별하게 코어(비전공자 과정)라는 과정을 가지고 있는 경기대와 건국대에서 가르쳐 오셨는데 그것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경기대나 건국대에서 코어 과정에 대해 언급하신 것을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김: 90년대 초중반에 우리나라 건축 교육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어요. 다들 알음알음 학생들끼리 공부를 하거나 그랬고, 그래서 그런지 더욱 자존감 같은 것들도 있었죠. 지금은 그렇지는 않고 가르치는 선생들이 많이 해외 교육을 받고 와 있어서 이전과 많이 달라졌지요. 지금 건축 교육의 문제는 인증제라는 것이 존재해서 건축학 인증에 합당하게 하는 SPC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그 항목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인증 자료들을 준비하다 보니 각 학교마다의 색깔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네요. 뭔가 한쪽은 많이 비어 있어도 한쪽으로는 진솔하게 갈 수 있는 학교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지금 획일화되고 있어서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학생들의 생각이 다들 너무 얇은 것 같아요. 요즘 굉장히 많이 느껴지고 있는 부분이에요. 박소장님 때와 같이 열심히 하겠다는 멘탈 자체가 지금은 없어졌어요. 사회가 바뀌기도 했어요. 정보의 홍수 속에 살다 보니 너무 많은 정보 속에 노출되어 있고 더 이상 과거처럼 모르면서 착취당하는 삶을 안 살겠다고 하는 취지를 보면 좋고 또 어떤 측면으로 보면 너무 빨리 시간 내에 자기 것을 하겠다고 나가다 보니 문제도 생기고 바로 서지 못하는 것 같아요.

박: 건축학 인증에 관련한 것을 질문을 드려 보고 싶습니다. 건축학 인증제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초창기에는 건축학 교육에 필요로 한 물리적인 것들을 채워주는 장점이 있었다고 하면 그 뒤로 인증 연장하는 과정에서는 똑같은 것들을 계속 반복하는 과정이 소모적으로 느껴집니다. 인증을 준비하는 학교 교수님들도 학생들도 너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5년 인증을 받으면 다시 또 3년을 자료 준비 후에 1년 동안 또 인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과정까지 너무 비생산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인증원에서 만들어 놓은 SPC항목 속에서 교육을 하려다 보니 학교들이 모두 다 똑같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학교에서도 사실은 SPC항목을 최소한의 교육 내용으로 봐야 하는데 이것만 충족되면 패스라고 생각을 하고 SPC 위주로 교육이 되니까 학교마다 다 똑같아지는 것 같습니다. 학교마다의 성격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현 상황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몇 학교 같은 경우 5년 인증을 포기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건축학 교육과 관련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 건국대가 유일하게 건축전문대학원으로서 인증을 받고 있는 학교이잖아요? 그런데도 대학원의 특징이 학부에서 기본기를 가르치는 데에 충실했다고 하면 대학원은 어떤 면에서 조금 더 실험적으로 갈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그 인증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왜 이렇게 됐냐고 하면 인증이라는 것의 문제가 있지만 학생들 자체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20여 년 전 박소장님 때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룹들이 아닌 거죠. 그런 요구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니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뭔가 그런 요구를 받았을 때 풀면서 깊이 들어갈 때 그런 실험들이 나타나는 것인데 모든 것들이 다 그냥 겉핥기 식으로 되어 있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박: 선생님께서 사무실 이름(핸드플러스)으로 사용하고 있는 ‘핸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디테일이든 드로잉과 같은 것들이 기본적으로 몸을 사용하는 거잖아요? 학교에서 보는 지금 젊은 세대들은 완전히 그와 다른 경험을 해왔거나 자신한테 익숙해져 있는 툴 자체가 신체와 직접적이지 않아 많이 달라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신체를 통한 지각 부분들이 이 친구들한테는 어렵거나 괴리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김: 이게 아마 우리 때도 그렇고 박소장님 때도 그렇고 너무 정보가 없다 보니 목표가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그런 목표점이 없어졌어요. 조건들만 알지 뭘 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모르고 있는 거죠. 그런 부분이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박: 학교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방향과 내용이랑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거나 배울 수 있는 상황과의 괴리는 여전히 있긴 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교육에 대한 지향점에 대한 고민도 생기는데 변화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김: 그 부분에서는 교육도 당연히 도전을 받고 바뀌어야겠죠. 하지만 인간사라고 하는 것이 20년 전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이 바뀐 것은 아닌 거잖아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많이 바뀌지도 않았고요. 이런 이야기는 교육에 대한 질문뿐만이 아니고 요즘에 소위 말해서 나오는 건축의 행위들의 결과물을 보면 과연 저게 아름다운가? 하는 질문이 드는 것 같아요. 요즘은 아름답지가 않은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근데 건축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아름답지 않은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면서 왜 아무도 그것에 대해 질문을 안 하지? 저 결과물이 본인한테는 아름답게 보였나? 그럼 아름다움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가? 그렇게 차이가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신인류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 거란 말이죠. 사회 통상적으로 기본적으로 깔린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조금 더 도달하게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완전히 학생들을 무시하고 내 식대로 하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학기초에 잡아 놨던 목표들은 꼭 이루려고 아이들을 밀어주는 편인 것 같아요.


박: 그런 부분들을 계속 이끌어 나가시려고 하시는군요.


김: 그런데 조금이라도 객관성을 띠면서 주관성을 보여야지 우리는 인정을 해주잖아요? 매우 많은 자료들을 쉽게 볼 수 있으니 학생들의 입장에서 첫발이 쉽게 안 떨어지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거기에 몰두해야 하는 시간이 사실 그 얄팍한 미디어 도구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조금 더 어떤 형태라든지 뭔가를 얻거나 계기가 돼서 작업에 들어가면 작업이 익어가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건데 자꾸 괴로운 조건들만 생각이 나니까 ‘이건 못해!’ 하고 쉽게 포기하고는 하는 것도 보입니다. 우리 이전 세대에서 봤던 그 많은 어마어마한 작업의 양과 결과들이 지금은 어느 학교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박: 젊은 건축가들을 인터뷰를 하면서 받았던 느낌 혹은 느끼는 흐름 중 하나가 한국 사회의 경우 유럽(서구권) 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비의 속도도 아주 빨라지는 것이죠. 이미지도 너무 많이 쉽게 소비하다 보니 유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훨씬 금방 캐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축에서 사고에 대한 깊이를 드러내기도 전에 결과가 이미지로 소비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들을 보면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죠. 상황 자체가 작업을 빠르게 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 결과물은 또 미디어에 순식간에 소비되어 버리니까 다음에 또 다른 소비될 것들을 찾아내는 데 급급한 조급한 경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업에 대한 깊이와 농익음을 목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 작업을 ‘빨리’ 만들어서 ‘빨리’ 소비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이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같은 돈이 주어지면 이미지에 돈을 쓸 것인지 디테일에 돈을 쓸 것인 지라고 물어본다면 한국의 환경은(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빨리 눈에 띄어 관심을 받게 만들 수 있는 이미지 쪽으로 가야 하는 쪽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밀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왜냐면 ‘나는 농익은 작업,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할 거야’ 라고 하더라도 다른 친구들이 더 빨리 호기심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작업들을 막 만들어 내면 미디어에서는 상업적으로 소개하기도 쉽고 전달하기도 쉬워서 소비되어버리는 것인데 이런 분위기에 의해 농익은 작업은 드러나기도 전에 도태되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런 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으로 고착되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이런 고민들이 우리 때만 하더라도 그러한 질문을 할 것 같아요. ‘과연 내가 하는 있는 행위가 건축인가?’ 자문해 볼 수 있는 인식들이 있던 것에 비해 요즘은 자문의 기회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건축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건축이 넓어지면 좋을 텐데 건축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박: 그런 면에서 선생님이 보는 시각에서 특히 한국 건축가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내용이나 이야기가 있을까요?


김: 한편으로는 이런 것이 꼭 농 익어서만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건축에는 필수 과정들이 있어서 그 과정들을 거치는 것은 필요해요. 건축이라는 작업 자체는 통시적인 것이라 사고 그 자체에서 조금 그런 것들을 아우르고 있는 마인드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것이 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나도 한 50대 들어오면서 그걸 깨닫게 된 거예요. 새로운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그렇게 바보스러운 행위가 없어요.

박: 선생님께서 작업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계시잖아요?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 무엇 때문에 작업을 하고 계시는지요?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이 무언인지요?


김: 기본적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박: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그게 건축적인 제안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김: 그렇죠. 그 동안 못했던 것을 계속 쌓아 가다보니 그걸 풀 기회가 왔을 때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기회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또 그런 제안들이 나 스스로 안에서 설득력이 굉장히 있는 것 같아요. 자기 만족을 위해서 건축을 하는 것 같은데 죽을 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본성이 있는 것 같네요. 그러니 건축가들이 오래 사나 봐요(웃음). 재미있어요. 건축이. 제가 만나는 사람들의 부류가 건축을 하는 사람이 가장 많고 건축가를 빼고 보면 출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건축가와 출판인들의 사고가 제일 공정해요. 음악가나 미술가들을 만나보면 사고의 밸런스가 좀 치우쳐져 있는 경향이 있어 묘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건축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건축이라는 직업이 나를 굉장히 밸런스 있는 사고를 하게 끔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을 해야 해요? 한 가지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되는 작업이잖아요.

박: 건축에서의 밸런스 말씀을 하시니까 다양한 사고와 관심을 가져 완성되는 관점으로 본다면 초반부에 토네이도 하우스에 가구와 창호 드로잉이 쓸모 없어졌다고 이야기를 하신 부분이 궁금합니다. 그런 관심과 내용이 최근 들어서는 계속 살아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스티븐 홀이 현대 건축은 ‘카탈로그 건축’이라고 말하면서 요즘 건축가들은 다 기성 재료 선택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의 현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산업화, 공업화 되면서 분야별로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분야들이 생기기도 했고 건축에서 그런 부분들 모두 다 할 수 없으니 그런 제품들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인 상황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제품보다 우리는 물성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물성에 대한 본질, ‘내가 이걸 왜 써야 되느냐? 어떻게 써야 이걸 맞게 쓴 것이냐?’ 하는 생각 때문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이게 또 사실은 독창성, 독특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 중 제일 답답한 부분이 창호인 것 같아요. 다들 이건 창호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에 맞춰줘야지 제품의 틀 안에서 프로젝트를 맞추게 되는 현실이 너무 답답합니다. 건축가, 디자이너의 의사에 맞춰지는 창호들의 시스템들이 하루빨리 구성되어야 할 텐데… 사회에 업자들은 있는데 전문가들이 없는 게 아쉬워요.

박 맞습니다. 아쉬운 것 같습니다. 유리도 그렇고 창호도 그렇고 다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만 이야기하지 새로운 것을 개발하거나 할 생각을 가지지 않는 독점적 구조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탓에 발전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한 부분이 없지 않죠.



협업과 공모전

박: 그 동안 선생님은 많은 건축가나 건축 회사와 협업하면서 일을 해왔습니다. 기억나는 것만 하더라도 알바로 시자, 서혜림, 김종규, 토마스한, 피터 페레토, 아론탄, 범건축, 숍 아키텍츠, 박영일, 조종우 소장 등 많은 건축가와 협업하는 것이 건축가로서는 힘든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일관된 작업의 결과가 장점으로 이어 왔는데 어떠셨는지요?


김: 여러 상황들이 우리에게 허락해줬던 것 같아요. 케이스가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같은 무게를 가지고 같이 협업을 한 케이스가 있고, 또 다른 케이스는 우리가 로컬로서 작동된 케이스가 있어요. 후자의 경우는 대부분 협업을 한 사람이 과거의 스승이었거나 어쩔 수 없이 관계 때문에 안 할 수 없었기에 했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계속 그 일을 하면서 또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어떠한 믿음과 기대에 기반해서 한 것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같은 또래의 같은 무게를 가지고 같이 부딪혀 봤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을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어서 한 것 같습니다. 또 저는 제가 저 자신을 알아요. 앞서 제가 논리적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렇게 논리적이지는 않아요. 개인의 해석을 가지고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설득력을 갖췄을 뿐 사실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예요. 그런 부분이 위험할 때가 매우 많은데 협업을 통해 그것을 체크를 받을 수 있기에 아주 유용한 것 같습니다. 과거와 달리 건축이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과 작업을 같이 하는가에 따라서 결과물도 더 나은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해 나가야 제가 생각했을 때 오랫동안 건축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지 않고는 다른 분들처럼 그냥 사라져가는 늙은 건축가가 될 텐데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 구조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에요. 저는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나는 죽을 때까지 건축을 할 거라고. 죽을 때까지 건축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더 현명한 건축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현명하게 할 수 있을 때 하나라도 더 하기 위해 협업을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박: 또 공모전에 자주 참가하고 있어요(평창동 미술 문화 복합공간, 한국영상자료원, 상암 DMC 외국인학교, 국립현대미술관, 대구 대교구 100주년 기념성당, 태권도공원…). 최근 동숭동 아트센터 리모델링의 당선도 있었지만 그 동안 많은 제안과 아이디어가 묻혀 갔을 텐데 계속 공모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공모전은 이런 거예요. 꼭 당선만이 목적은 아니에요. 사실 우리는 판촉 행위 이런 것도 하지 않아요. 찾아오시면 하는 어찌 보면 소극적 영업이죠. 이처럼 공모전도 안 해도 되는 것일지 모르는데 그러다 보면 면역력이 없어지니까 면역력 차원에서 일 년에 2개 정도는 하자라고 해서 하는 작업이죠. 가급적이면 조건보다도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박: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공모전의 수는 유지하면서 작업을 진행하실 계획이신 거죠?


김: 나도 (공모전을 하는 것이) 싫어요(웃음)

박: 방금 말씀하신 두 가지 조건인 협업과 공모전이 어떻게 보면 선생님을 더 긴 시간 동안 건축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인 것 같습니다.


김: 나한테는 채찍인 거죠.

박: 마지막으로 지금 한국 현대 건축을 비평적 관점으로 바라본다고 봤을 때 선생님께서 보셨을 때는 지금 어떤 상황으로 읽히고 있는 가요?


김: 나는 도리어 비평적으로는 안 보이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에는 잘 지어진 건축물이라 하면 몇 년에 하나씩 나온 것 같은데 요즘은 숨겨져 있는 좋은 것들 것 굉장히 많더라고요. 큰 흐름에서 보면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 비평을 하자면 굉장히 상업적인 부분에서 보면 좋은데 그것을 뛰어 넘었을 때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한 좌절을 메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서울시에서 그렇게 많은 공모전이 나오는데 서울시청사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당선된 건축가가 이것은 내 것이라고 하는 작품이 몇 개나 되냐는 거예요. 거의 없어요. 다들 자기의 작품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 자체만으로도 뭔가가 잘못되고 있는 거거든요. 형식만 갖추고 있어요. 형편없는 근생 건물을 뻥 튀겨 놓은 똑같은 것들이 계속 지어지고 있으니 그런 부분에서 보면 너무 암울한 현실이죠.

박: 많은 건축가가 제도나 행정이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많은 건축가가 많이 이야기도 하고 공감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행정에서 구조적으로 어떻게 풀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 맞아요. 공모전 심사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을 뽑은 것이지 건축가를 뽑은 건 아니잖아요? 공모전을 보면 다 무기명으로 하는데 그러면 그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심사위원들도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뽑고 나면 끝나는 현실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당선작을 뽑을 때 조금 더 신중하기도 하고 실현되었을 때 모든 것들이 다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모전에서 뽑아 놓고 그냥 끝나 버리니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면서 이 사람 이야기가 다르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다 다르니 결과적으로 뽑은 사람들은 안이 좋아서 뽑았지만 진행과정에서 초기의 내용에서 남는 것 없이 끝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박: 그 결과들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상황으로 개선되어 나가야 할 것 같네요. 그런 부분에서 심사를 하고 있는 분들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김: 그렇지만 전반적으로는 저는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사실. 소위 말해서 젊은 건축가들이 너무 빨리 쉽게 나왔다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이 또 세상이 달라진 것이겠죠. 마켓 구조가 달라진다고 해서 세상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닌데 그런 것을 또 오판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영원히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은 존재하고 있어요. 그것은 돈과 기계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박: 한국에서 건축 상황이 노력으로 바뀌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좋은 쪽으로 바뀌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2019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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