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 Workshop_ 민우식

1974년 서울 출생, 1998년 테네시주립대학 미술대학 학사를 졸업하고, 2002년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2008년 크랜브룩 예술 아카데미 건축과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스티븐홀 건축사사무소, ㈜민설계에서 실무를 익혔다. 2009년부터 바우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로 활동하다가 2011년, 민워크샵을 개소하였다.



스티븐 홀과의 접점


박창현(박): 민우식 소장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민소장님의 작업을 보면서 여러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면서 관심이 더 갔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민소장님과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작업의 방향이라든지 진행해 나가는 방식이나 도구에서 보여지듯이 스티븐 홀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스티븐 홀과의 관계 혹은 영향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언제 처음 만나셨습니까?


민우식(민): 첫 만남은 미국 대학원생 시절 제가 스티븐 홀 사무실에 인턴지원을 했었는데 그때 운 좋게 뽑혀 2007년 DDP 프로젝트 팀에서 3개월동안 일을 했었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저는 자타공인 스티븐 홀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제 작업은 사실 논리적인 프로세스보다 직관에 의존하는 편인데 스티븐 홀은 직관적인 건축의 대가였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그의 모든 작품과 작업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제가 쓴 건국대 졸업논문도 스티븐 홀에 대한 것이었고요. 크랜브룩 대학원에 진학을 한 것도 그 영향이 있었습니다. 스티븐 홀이 설계한 건물도 있었고 수공예적인 성향도 있는 학교였기 때문에 저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박: 스티븐 홀이 크랜브룩에서 강의를 했던 것은 아닙니까?


민: 스티븐 홀이 강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 파트너가 크랜브룩의 건축과 교수로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를 통해서 연이 닿은 것은 아니고 제 스스로 여름에 일을 해보고 싶어서 스티븐 홀 사무소에 지원을 했었습니다. 제가 워낙 스티븐 홀의 팬이었기 때문에 포트폴리오에서 보여지는 성향도 비슷했을 것이고 또 스티븐 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쪽에서도 그걸 느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데요. 그래서인지 결과적으로 메일을 보낸 지 30분 만에 답장이 와서 읽어봤더니 뉴욕으로 와서 인터뷰를 해보자는 내용이었고 바로 가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턴을 했던 3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하고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3개월 후에는 모든 것을 다 경험해버린 것 같이 지쳤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 다시 정직원으로 지원을 했는데 결국 직원이 되진 못했고 어쩌다 보니 다니엘 리베스킨트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그곳은 제가 원치 않아서 거절했었습니다. 원래 제가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 목표가 40살 전에 제 사무실을 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박: 스티븐 홀 사무실에서 3개월 동안에 경험한 것은 어땠었습니까? 민소장님이 생각했던 그리고 그려왔던 모습도 있을 것이고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나 관점들 같은 것들이 보이지는 않으셨는지요?


민: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많았고 의외의 모습들도 많이 봤습니다. 제가 본 스티븐 홀은 평소에는 옆집 아저씨같이 소탈하고 편안했습니다. 그러나 일에 몰두할 때면 놀랄만한 집중력을 보여주었는데, 그 당시에 동시에 진행되고 있던 23개의 프로젝트에 모두 관여했었습니다. 대가들은 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 역시도 힘 조절에 굉장히 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는 학부 때부터 처음의 컨셉 스케치가 발전하여 건물이 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그런 환상이 조금 깨지는 경험도 했었습니다. 제가 했던 DDP의 경우에는 스티븐 홀도 힘들어했고 고민도 많이 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사실 초기에 스티븐 홀이 생각했던 안이 여러 개 있었는데, 비원에 굉장히 흥미를 느껴서 그것과 연관 지어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모형을 몇 개 만들고 보니 누가 봐도 아닌 그런 결과물이 나왔죠. 결국 팀장들에게 지시를 해서 다양한 제안을 도출해 내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팀장들이 스터디 한 것을 쭉 늘어놓고 보더니 저쪽 구석에 있는 한국 출신 팀장님 것을 집어 들고는 큰 틀은 이렇게 가고, 여기서 어디를 다듬고 어디를 더 강조하고 정리해서 이렇게 보여주자 하는 식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순간적인 직관과 판단으로 정해진 안을 진행시키는 데,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제 상상과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또 그것 역시 제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이었고 또 우리가 대가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전략가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박: 건축가가 모든 것들을 다 혼자 할 수는 없으니 어떤 특별한 자신만의 작업방식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흐릿한 것들을 건축가가 던지면 같이 하는 스텝들이 같이 생각하고 다듬고 하는 작업으로 진행되는 것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큰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스티븐 홀이 일일이 땅이 어떻고 현상학이 어떻고 하면서 모든 결정을 다 하는 것보다 그런 모습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저 역시도 사무실에서 스텝들과 이야기할 때 구체적인 그림이나 형태를 가지고 스텝들과 이야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단지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의 중점이나 방향, 전반적인 컨셉 등의 러프한 단어들을 이야기하면 스텝들이 또 그것을 듣고 자신의 색이 함께 담긴 결과물을 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민: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대가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은 그런 전략적인 대응을 해야지만 큰 사무실 유지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스티븐 홀의 사무실에도 개인 클라이언트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를 합니다. 심지어 치수의 mm까지 정해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도 봤었습니다. 반대로 국제 현상설계의 경우에는 반대의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DDP의 경우에도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가능성이 없으면 빨리 버리고 다른 사람들도 아이디어를 모으도록 합니다. 현상설계라는 것이 안될 것 같은 안을 끌고 가게 되면 안 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텝들이 아이디어를 가져왔을 그 중에 자신의 색과 비슷하면서 가능성이 있는 안들을 선별하는데 탁월한 눈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안을 조율하고 보여주는 방법 역시 굉장히 능숙하고 세련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서구적인 사고방식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권위 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대가인데 너희들이 감히......“이런 태도가 전혀 없이 스텝이 했는데 자기 것보다 좋으면 바로 너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박: 스티블 홀 사무실에서 혹시 스텝들의 아이디어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에 대해 스텝들의 불만은 없었습니까?


민: 제가 초반에 한국 스텝이랑 이야기한적이 있었습니다. 스티븐 홀의 작업모습을 보면서 환상이 깨졌다고 하소연하니까 그분께서 그러시더군요. 모든 프로젝트들을 일관된 모습으로 끌어 나가기는 힘들다고, 워낙 국제적인 현상 프로젝트들도 많고 사무실에서 맡고 있는 일도 많으니 프로젝트마다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역할과 진행 방법을 바꿔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거라고. 돌이켜서 제가 이제 사무실을 운영하는 입장이 되니 그렇게 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박: 전체적으로 들어보면 스티븐 홀을 멀리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도 하고 가까이서 함께 일해보기도 했는데, 실제로 지금 Min Workshop을 운영하면서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민: 예전에는 좋아하기도 했었고 사실 작업방식을 많이 참고하기도 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모형을 만들 때 흰색으로 만드는데 스티븐 홀은 재질을 입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코르텐 스틸이 붙는 곳에는 실제로 모형에 부식된 동판을 붙이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 방식들을 저도 해봤었습니다. 그리고 수채화를 따라 그리기도 했었고요. 한때 열심히 그를 쫓아가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좀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설계도구로써의 그림

박: 민소장님은 작업을 진행하면서 스케치에 대한 부분은 이전부터 쭉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면서 다른 건축가들과는 다르게 스케치에서는 좀 다른 접근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른 도구보다도 스케치에서는 많은 생각과 작업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을 듯합니다.


민: 예전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대답을 못했을 겁니다. 제가 스티븐 홀을 좋아해서 따라 한 것도 있었고 또 저는 건축을 미술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스케치에서부터 작업이 쭉 이어져야 한다는 어떤 강박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건축은 사실 그런 것은 아닌데…… 어떤 때는 초기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서 그림만 그린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스케치가 바로 건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개념을 주는 것도 아닌데 거기에 그렇게 힘을 뺐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그렇게 강박을 가지고 스스로를 내몰지는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림은 중간에 그릴 때도 있고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릴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림이 이제는 저에게는 도구적인 의미보다 치유의 의미를 갖게 된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림을 그리면 무념무상이 되기도 하고, 생각이 안 풀릴 때 생각이 없이 따라 그리다 생각이 연결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오히려 순서 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자유롭게 저만의 그림을 사용하는 법이 생기면서 훨씬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박: 그렇군요. 스케치가 작업과 직접적인 연결보다도 더 좋은 효과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려왔던 스케치에서는 과거와 현재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은데요. 일반적인 건축을 하는 사람의 스케치는 단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간을 묘사하면서 또는 상상하면서 선을 이용해 사물의 바깥 경계를 그리는데 익숙하고 이것을 윤곽선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상황을 설명하거나 상상하기 위해 개략적인 형태를 그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소장님의 스케치에는 색이 들어가고 농담이 들어가고 더 나아가 어떤 경우에는 질감의 표현까지도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스케치에는 그 면에서 상상할 수 있는 빛의 변화나 상태도 표현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민: 예전에는 그런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색과 그림자를 표현한 그림들도 많이 그렸었고, 그리는 절대적인 양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이것이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감이 살짝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부터 스케치는 건축가들의 가장 가까운 도구였습니다. 수채화의 경우에도 예전에 많은 건축가들이 수채화를 그렸는데 지금은 그리는 사람들이 줄고 스티븐 홀이 혼자 남아 그리다 보니 수채화가 스티븐 홀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이 되어버린 경향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뭔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그림을 잘 그리는 데만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그런 목표나 방향 없이 즉흥적으로 제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결과적으로 더 좋기도 합니다.

박: 스케치에 있어서도 이전과 다르게 유연한 방식으로 도움이 되고 있어 보입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도구들이 많이 나오면서 건축 작업을 할 때 다양한 도구들을 동원해 작업이 진행됩니다. 어떤 분들은 사용하는 도구가 디자인에 아주 많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현재 작업하면서 쓰는 툴들은 어떤 것을 주로 유용하게 사용하나요?


민: 전 모형을 좋아하긴 하는데 스터디 모형을 많이 만드는 타입은 아닙니다. 많은 건축가들이 매스모형을 쭉 놓고 스티로폼을 깎고 덧붙이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모형을 통한 매스 스터디는 거의 하지 않고 큰 틀이 나와서 정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모형으로 진행을 하며 정리하는 타입입니다.


작업의 시작방법과 작업의 변화

박: 지금 일련의 작업들을 보면 형태적인 변화가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몇 작업에는 정형화된 육면체의 단순 박스 형태가 있고, 또 몇 작업에는 빼고 덧붙인 육면체의 형태가 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땅의 조건이나 제약 조건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 프로젝트들임에도 불구하고 결과로 나오는 형태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떤 접근에 의해 나온 작업인지, 또 프로젝트의 시작을 무엇으로 하기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듣고 싶습니다.


민: 아마 시작은 다 비슷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컨셉에 따라 조금씩 강조하는 부분이 다를 뿐이지. 초기 아이디어는 영감에서도 오고, 대지 분석에서도 오고, 법규나 프로그램에서도 올 수 있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에는 초반에도 말씀드렸듯이 직관적이라 어떻게 보면 좋을 수도 있고 독일 수도 있는데, 현장 가서 고민을 하다 보면 뭔가 나옵니다. 조금은 막연하게 여기에는 이렇게 되어야 할 것 같다라고 해서 만지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저는 대부분 주변 맥락보다는 땅 자체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건물의 형태적 변화에 대해서는 박소장님께서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예전에는 빼낸 용적률을 외부로 썼습니다. 틀고 덧붙이면서 발생한 것들을 발코니로 쓰거나 캔틸레버나 천창으로 쓰는 식으로 외형에 좀 집착을 했었습니다. 내부에서 공간을 만들어내기 힘드니까 나오는 것인데, ‘오드코너 하우스’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프로그램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 요구조건을 다 맞추다 보면 수직적인 공간을 만들기 힘드니 조금씩 틀어서 나오는 공간들을 천창으로 만들어서 아예 빛을 다양하게 만들어 내거나 외부에서 봤을 때 형태적인 특색을 갖추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용적률은 그대로 내부에다 많이 사용합니다. 건물은 그대로 올라가고 내부에서 수직적인 보이드로 공간을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이제는 주택에서의 수직적인 공간감이 아니라 좀 큰 규모의 건물에서 수평적인 공간감이 느껴지는 것도 하고 싶습니다. 한 30미터씩 공간이 쭉 느껴지는 그런... 정리하자면 요즘에는 덩어리를 가지고 만지기보다는 내부 공간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박: 역시 건물의 시작은 영감이나 직관에서 시작한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처음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 영감에서는 우연과 필연이 어느 정도 프로젝트에 관여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민: 그것은 우연적인 것이 크다고 봅니다.

박: 그렇다면 분석에 의해서 다양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요?


민: 그것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박: 그렇다면 클라이언트와 이야기하는 과정은 어떻습니까?


민: ‘Concave lens’를 예로 들면 대지가 삼거리인 조건이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반영하되 제가 만질 수 있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모서리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모서리부분을 꽉 채우는 것을 너무 싫어합니다. 사선으로 되어있는 덩어리가 그대로 올라가는 방식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저의 조형적인 강박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모서리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생각하다 보니 둥글게 처리하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고 마침 지하층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dry area가 나올 수 있는 쪽으로 설계가 진행이 된 경우입니다. 건축주도 저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한 덕분에 잘 진행되었습니다.


빛과 공간감을 구현하는 방법

박: ‘Concave lens’의 경우 그 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상황이나 내부 공간감이 궁금했었는데 이것과 연결해서 공간감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전에 인터뷰했던 김수영씨가 구현하는 공간감에 대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알바로 시자의 경우에 알바로 시자 만의 치수가 있어서 그것을 기반으로 공간을 구현한다고 하는데 알바로 시자에게서 영향을 받은 김수영씨의 경우에도 김수영화 된 치수가 있어서 프로젝트마다 그것을 통해 공간을 구현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을 줄여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치수라는 것은 객관적인 것이니 상황만 맞는다면 확실한 공간 구현 수단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부분에서 직관적인 민소장님은 생각하셨던 내용을 어떻게 자신의 공간감으로 구현합니까?


민: 뻔한 대답일수도 있는데 공간감이라는 것이 그 구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 빛이나 재료 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저는 중점을 두긴 하는데 그렇다고 치수로 공간을 재단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도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공간 내부에서 빛이나 재료나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바뀔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설계를 진행하면서 치수들을 결정할 때 생각하는 근거나 기준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민: 그런 치수들은 경험에 의해서 단련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제가 지금 많이 하고 있는 주택의 경우에는 그런 감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데, 또 스케일이 다른 건물을 진행한다면 다시 쉽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프로젝트들 중에 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500평정도의 평소에 해보지 못한 스케일을 다루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스케일 감 역시 타고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의 경우에는 정말 타고난 스케일 감각을 가지고 계신데, 여기서 저기까지 몇 미터라고 하시면 정말 줄자로 쟀을 때 오차가 10센티도 안 납니다. 심지어 스케일이 큰 곳에 가서도 멀리 한번 쳐다보시고는 몇 킬로 남았다고 맞추실 정도니까. 그런데 저는 그런 스케일 감은 아쉽게도 물려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경험으로 그것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박: 만들어진 것에 대한 공간감과 계획할 때의 공간감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경험적으로 체득한 감각과 현재는 없는, 앞으로 만들 공간감을 유추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은데 좋은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방법 같은 것은 혹시 있습니까?


민: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아직 그런 것에 대한 감도 없고 경험도 많이 없고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교과서적인 답변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 한번이라도 더 가려고 합니다. 이번에 진행했던 주택의 경우에 원래 지하에서 올라오는 계단의 난간을 매스로 처리해 하얀 솔리드가 되도록 계획을 했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솔리드로 그 부분을 막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리 난간을 별로 안 좋아함에도 유리 난간을 썼는데 지나고 보니 굉장히 잘한 결정이 된 경우였습니다.


판교에 대하여

박: 판교에 프로젝트를 많이 하셨는데 판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지난번에 재료 때문에 시공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판교에 시공이 끝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오랜만에 가봤더니 온갖 재료뿐만 아니라 건물들도 너무 다양하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 ‘공간’잡지에서도 판교에 대한 이야기와 분석이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1970~80년대를 지나면서 분당에 단독주택 필지로 구획되어 있는 도시계획 필지들이 개발에 의해 나오기 시작했었는데 그 이후에 일산에 나왔던 것은 전반적으로 접근이나 색채가 약간 달랐었습니다. 역시 조금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만 그 후 2000년대 초에 헤이리로 이어지고 그것이 지금은 판교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각의 지자체들에서 내놓는 한계들도 있고, 색깔도 있을 텐데 실제로 프로젝트들을 해보면서 어땠습니까?


민: 판교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욕망의 분출구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건축가에게는 처음 볼 때는 매력적인 시장임에 틀림없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건축비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학군이 좋다 보니 강남에 살거나 혹은 살려고 계획을 하는 사람들이라 젊은 전문직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사비에 대한 걱정이 적어서 건축가의 욕망이 더 발현되기도 하고 또 커뮤니티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정해 놓은 건축가 블랙리스트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성의 없이 하거나 잘하는 건축가인데 너무 작가 주의적인 성향을 띄는 경우에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각각 건축가가 요구하는 설계비나 시공사 리스트까지 다 공유되고 있습니다. 또 법규 지구단위 계획 등도 건축주들이 기본적인 건축법을 다 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 건축가들의 각축장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박: 판교에서 건축주가 원하는 특별한 방향이나 선호하는 내용이 있습니까?


민: 다른 지역에 비해 판교에서 그런 것이 뚜렷한 편입니다. 크게 분류하면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그냥 모던하고 세련된 집을 찾는 사람들과 또 나머지 하나는 좀 임팩트 있는 작품을 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크게 나눠진 시장에서 구체적으로는 좀 더 설계비가 경쟁력이 있고 튼튼하게 하자 없이 잘 지어줄 사람을 찾는 식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시는 건축가분들 중에는 가격 경쟁력으로 접근하시는 분들도 있고 타협하지 않고 높은 금액을 고수하시면서 높은 설계비를 유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현재 판교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판교의 지구단위 계획이 그리 잘 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판교에 대한 판단은 한 5년후로 미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박: 지금까지 판교에서 작업을 해오면서 취하고 있는 Min Workshop의 입장, 자세는 무엇입니까?


민: 지금까지 몇 년 동안 판교를 포함한 일을 해오면서 느낀 것은 내가 뭔가를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판교 주택들의 경우 소개도 없이 그냥 딱 저랑 하겠다고 오신 분들이 전부인데요. 아무래도 제가 인테리어 출신이다 보니 보통의 건축가들과는 내부에서 조금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좋게 봐주셔서 찾아오시는 분들과 지금 작업을 하고 있고, 과거에는 좀 저와 안 맞는 분들과도 억지로 작업을 끌고 나간 적이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적이 많아서 지금은 그런 경우를 조금 피하려고 합니다.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박: 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일을 하다 보니 그런 방향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떤 클라이언트도 나와 다 맞을 수 없고 다양한 사람들을 다 만족시킬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것들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주변 아는 건축가들끼리 서로 인사처럼 “요즘 일 많아? 몇 개하고 있어? 직원이 몇 명이야?” 이런 말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프로젝트를 많이 끌고 가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한 분위기를 만들곤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결국 서로에게 어느 정도는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비약일수도 있지만 그 악영향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상황에 영향을 주고 그게 결국 전체적인 사무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민: 저는 판교에서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 보니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보통 건축주가 건축가들을 만나기 어려우니까 현장에 있는 시공사를 통해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투어를 하듯이 판교에 프로젝트를 많이 한 건축가들의 리스트를 따라 쭉 돌아보는 건데요. 처음에 그걸 알았을 때 기분이 상했습니다. 요즘은 그게 거의 없어졌지만… 최근에 느끼는 것은 건축가와 건축주의 합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로인데 높은 설계비를 주고 건축가와 건축주가 그렇게 잘 맞는 경우가 있고, 다른 잘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꼭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으시고. 이렇게 사람 성향에 따른 궁합이랄까요? 이런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잘 맞는 사람들은 결국 같이 하게 되고 프로젝트도 잘 진행되는 것을 보면 쓸데없는 힘을 빼지 말고 자신과 맞는 사람과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박: 저는 아직은 경험이 적어 건축주들의 요구조건을 잘 풀어내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떤 건축가는 건축주를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고 건축주의 요구를 무조건 반영한다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은데 민소장님은 그런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합니까?


민: ‘파티오 하우스’의 경우에는 제 첫 작품이었는데 그때는 패기가 넘쳤습니다. 부류로 따지면 완전히 전자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제 스스로도 너무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건축주도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서 지어진 집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오드코너 하우스’였는데 그때 정말 임자를 만났죠. 건축주가 명문대 출신의 똑똑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갈등들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싸우다 보니 나중에는 위약금 물어주고 계약 파기까지 생각했었는데요. 저도 에고가 강한 사람이다 보니 이런 식의 집을 만들 바에는 그냥 위약금 물어주고 포기하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어쩌다 보니 결국 끝까지 끌고 나가서 건축주의 요구조건을 거의 다 들어주면서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기대를 버리고 있던 제 생각과는 달리 결과물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만족도는 좀 떨어질지 언정 쓰는 사람이 불만이 별로 없어지고 ‘파티오 하우스’에서는 심했던 AS 요청이 없어졌습니다. 어찌 보면 항상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건축가가 아닌 사용자라, 건축가가 제안을 하더라도 결국 보면 그들이 자신의 입맛대로 고쳐서 쓰게 되는 상황이 온다고 봐야 하는데, 그것에 반하는 건축가의 욕망이 너무 세면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드코너 하우스’를 진행할 때 건축주의 요구조건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사석에서 서승모 소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해? 요구하는 거 다 들어줘. 그리고 나서 생기는 문제를 푸는 것이 건축가가 할 일이지.” 하시더라고요. 말을 들었던 당시에는 흘려 들었는데 조금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프로젝트를 끝내고 또 다른 주택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조금 제 스스로를 비우고 저의 욕망과 건축주의 욕망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주택을 여러 번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적어도 개인 주택만큼은 건축가의 욕망보다는 건축주의 욕망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가의 역할과 비중

박: 사실 저는 건축가와 건축주, 시공사, 그리고 스텝까지, 모두의 욕망들이 골고루 들어오려면 건축가는 한 발짝 물러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의 경우에도 사무실을 운영하는데 있어 제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관여하기보다 저는 큰 방향을 잡고 가고 나머지는 스텝들이 제안을 하는 모습의 사무실이 이상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또 쉽지는 않지만 천천히 그렇게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민: 말씀하신 대로 여러 사람이 관여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건축이고 건축가는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서서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저도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제가 질문을 드리자면 저 역시도 박소장님의 작품들을 꾸준히 보고 있는데 그 작품들 역시 박소장님의 색깔이 없이는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런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건축가의 비중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 저도 계속 빼려고 노력 중입니다만 아직은 미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지면 언젠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은 합니다.


민: 그것이 쉽지 않다고 봅니다. 에이라운드건축의 색깔은 분명히 있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나의 결과로만 따라가다 보면 누구의 것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어찌 보면 한 발짝 떨어져서 사무실을 운영하면서도 일관된 색깔을 내는 것이 일일이 간섭해서 결과물을 내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봅니다.

박: 맞습니다. 그래서 결과물을 보면 그 사무실이나 건축가의 성향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 명이 다 하게 되면 그 사무실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다 똑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무실에서 나오는 작업들이 더 폭넓고 다양하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무실에서 저보다 스텝들의 의견이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궁금한 것은 건축가가 한 발자국씩 물러서서 자신의 비중이나 역할을 조금씩 빼 간다면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빛에 대한 관심과 개구부

박: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지금 스케치를 통해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빛에 대한 이야기를 몇몇 매체에서 언급해 왔고, 작업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 같은데, 민소장님이 관심 가지는 빛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민: 모든 건축가들이 빛에 민감하게 작업을 합니다. 사진에서도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 저는 어떤 드라마틱하게 떨어지는 한줄기의 빛 이런 것에 집착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빛을 조각한다 이런 생각으로 하기도 했었고…… 그런데 요즘에 제가 이제야 좀 배우기 시작한다고 느낀 것이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직사 광보다 산란 광이 더 좋다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산란 광은 어찌 보면 극적인 느낌은 훨씬 덜하기 때문에 스스로 평가절하했던 것이지요.
저는 알바로 시자의 빛 사용도 좋아하는데, 알바로 시자 작업의 뿌리는 알바 알토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중 벽이나 천장의 반사판 같은 채광방식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알바 알토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루이스 칸의 작품 같은 클래식한 것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광교에 했던 프로젝트를 보면 남향에 일반적인 창을 내지 않은 것이 물론 외관상인 이유도 있지만 그 안의 보이드를 통해서 빛이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사는 사람에게는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했는데 실제로 그것이 들어 맞은 경우입니다. 클래식한 것들을 차용했을 뿐인데 그런 것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보면서 아직 한참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 서승모 소장님의 경우에도 입면과 창에 대한 의도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자신이 만드는 입면의 창의 위치나 크기는 철저히 내부에서 바깥으로 보는 뷰에 의해 결정한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창은 빛이 유입이 되는 양이나 방향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부분들도 많이 관여합니다. 안에서 밖을 보는 시야라던지 또 밖에서 건물을 봤을 때의 상황들도 있는데 그런 창에 대한 고려는 어떤 기준으로 작업을 진행하십니까?


민: 저도 서소장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창 디자인이 사실 입면 디자인이지 않습니까?  저는 의외로 입면이 예쁘고 그런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최소한 보기 흉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고 창의 역할은 외부에서 보는 시각적인 역할보다는 내부에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장식과 디테일

박: 일반적으로 건물에서의 완성도를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것이 내부 디테일의 퀄리티라고 봅니다. 서승모 소장님의 경우 그런 퀄리티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반에 인테리어 작업을 많이 하면서 현장에서 그런 디테일들을 보고 만들고 한 경험이 이제 건축에서도 큰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우식 소장님께서도 ‘민설계’에 계시면서 봐왔던, 혹은 영향을 받았던 부분이 실제로 지금 진행하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민: 우선 저는 ‘민설계’에서의 경험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처음에 스티븐 홀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는 사실 저희 아버지에게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민설계’에서 했던 일들이 실내장식 위주로 일들이 진행되었다기보다는 재료도 최소한으로 절제해서 쓰고 건축적인 계획까지 포함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거기서 세계 최고의 디테일들을 경험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서도 이 디테일들이 전세계 어디를 가도 부족하지 않은 디테일이라는 걸 느꼈고, 그렇게 본다면 저는 굉장히 복받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디테일로만 이야기하면 저는 지금 아직 흉내만 내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축의 개념이나 현학적인 것들은 정말 싫어하는 쪽인데요. 그래서 개념이나 설계가 조금 부족한 건물이라도 일단 완성도 있게 디테일이 살아있는 건물이면 저는 지금도 가슴이 뛰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테일에는 관심이 정말 많은 편이고, 어쩌면 빛보다 더 중요한 제 작업의 화두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박: 일부 건축가들이 이야기할 때 인테리어를 단순히 장식 정도로 폄하해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어찌 보면 그 분야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한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 더 그 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는데요. 


민: 저는 우선 인테리어라는 것은 사실 가구가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축가가 설계한 평면을 가지고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에 마감을 어떻게 하고 가구가 어떻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가벽이 어떻게 설치되고 조명이 어떻게 들어가고 하는 것들을 10년을 경험했으니 그런 점에서 조금은 차별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건축가들이 인공조명을 쓰는 것에 약하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 있어서는 저는 그쪽으로 공부도 했고 경험도 했기 때문에 조금은 노하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디테일은 일단 너무 눈에 띄어서 과시하는듯한 디테일은 별로 관심 없습니다. 크게는 덩어리로 보이거나 작게는 손으로 느껴지는 부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디테일들을 좋은 디테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제 디테일을 보시면 많은 사람들이 ‘저게 왜 돈이 많이 든다는 거지?’ 라는 의문을 품는데, 조금만 아는 분들께서 보시면 와서 깜짝 놀라십니다. 예를 들어 문 같은 경우 문짝은 60mm 원목 도어를 써서 닫히는 중량감을 느끼게 해야 하고, 프레임은 반드시 벽 안으로 감춰야 하고, 문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완전히 짜서 전체가 열려야 하는 등의 저만의 원칙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디테일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패턴을 넣는다든지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미스의 디테일처럼 모든 걸 숨기고 덩어리로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저의 목표인데 그게 사실 또 어렵기도 합니다.

박: 디테일이라는 것이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실제로 사용자들이 의외로 가장 잘 느끼는 부분인기도 합니다. 특별히 디자인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무엇인지 설명은 못하겠는데 뭔가 다른 것 같다 하는 그런 느낌들이죠.


민: 하지만 또 어려운 것이 그것들을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60mm 원목 도어만 달아도 틀어짐 방지를 위해 안에 일일히 쌈질을 해야 하고, 경첩이나 손잡이 같은 것들은 주문제작을 해야 하니 비용이 많이 상승하곤 합니다. 이런 것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대부분 건축가들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해서 설득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이 일반인에게 전달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설득하는 방법을 저희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하루는 어떤 회장님 주택을 설계하는 데 공사비때문에 민감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모 회장님이 뭐가 그렇게 비싼 건데? 라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때 저희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회장님, 소나타의 문짝을 안 닫아보셨죠? 그건 닫을 때 ‘창’ 소리가 납니다. 회장님은 벤츠를 타시는데 어떤 소리가 나던가요? ‘쿵’ 소리가 납니다. 회장님의 집에 소나타의 문짝 소리가 나서는 되겠습니까?” 그러자 바로 오케이 하시더라고요. 바로 쉽게 연상이 되는 겁니다. 하드웨어적으로 딱 들어맞는 느낌, 그리고 닫으면서 맞물릴 때 나는 소리 같은 것들이 어떤 형이상학적인 설명보다 쉽게 와 닿으니까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 사실 일반인들은 너무 아파트와 기성품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공간에 살아보지 못하고 다른 문을 열어본 경험이 없으니 문을 여는 것이 다 똑같은 거지 다를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제가 했던 ‘나무282’ 작업의 경우 무게를 굉장히 무거운 문으로 만들었는데, 문의 무게를 몸으로 밀고 들어가는 경험이 없으면 그런 감각에 대한 맛을 전혀 몰랐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에 대한 가치는 사람들이 인정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제안 단계에서 설득은 쉽지 않은 부분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경험이 없으니까. 그래서 아버님이 그렇게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저 역시도 비유가 그런 부분들을 쉽게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세부적으로 장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장식에 대한 자신만의 뜻이나 개념, 혹은 장식에 대한 입장과 호불호 같은 것들은 어떻습니까?


민: 지금의 장식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위장의 개념은 지나고 스스로 더 돋보이게 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식에 대한 관심은 있는데 저보고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잘 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능과 공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 덧붙여지는 것에 대해서 관심은 있지만 저는 보기보다 섬세하지가 못해서 만약 제 일에서도 그런 것이 필요한 순간이 생기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 저는 요즘 개인적으로 장식과 공예에 관심이 좀 생겨서...... 저는 대학에서 가구를 전공했었습니다. 1,2학년때는 가구, 도자기, 목칠공예를 다 해보고 3학년때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공예와 장식에 대해 경험해 본 것이 이제 와서 관심이 조금 가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민: 제가 나온 Cranbrook이라는 학교가 기본적으로 Craftsmanship이 있는 학교라 장식과 공예가 대단한 학교입니다. 캠퍼스만 가봐도 엄청난 것들을 볼 수 있죠. 그런 것들을 보면 너무 좋기는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구분이 확실해서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눈으로 보고 즐기는 선에서 끝내려고 합니다.


한옥과 목구조 주택


박: 지금 있는 사무실이 독특하게 한옥인데 설계사무실의 공간으로 독특하기도 하고 스케일이나 정서가 느껴집니다. 사무실로 한옥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 지요


민: 한옥은 저의 의도는 아닙니다. 그냥 사무실을 위한 장소를 둘러보다가 여기를 봤을 때 너무 좋아서 그냥 들어온 것이라 이 한옥과 제 작업의 관심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사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한옥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습니다. 물론 부석사나 관가정 같은 훌륭한 한옥들은 너무 좋아하긴 하는데 한 번도 이것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근처에 있는 이용재 소장이 하는 것들을 보고 듣다 보니 조금씩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또 요즘 하는 프로젝트가 목조주택이기 때문에 관심이 막 생기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박: 모형으로 만든 저 목조주택은 왜 RC로 하지 않고 중목 구조로 하게 되었습니까?


민: 중목 구조로 건물을 짓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건축주가 가지고 있던 확고한 조건이었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프리컷 시스템으로 하겠다는 것까지 정해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을 정도인데 제가 중간에 마음을 돌리려고 설득을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건축주의 의견대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박: 실제로 중목 구조의 장점은 있습니까?


민: 중목 구조의 장점은 구조를 노출할 수 있다는 것인데 주택에서는 조금 한계가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장점으로는 단열성능 우수하고 시공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있는데요. 제가 이번에 놀랐던 것이 원래 RC구조로 하면 창호는 골조 시공 이후에 실측을 해서 하게 되는데 이것은 벽체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창문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끼웠는데 오차가 5mm미만이더라고요. 그런 모듈화 시공이 탁월해서 그런 점이 편한 점일 것입니다. 다만 안 좋은 점은 아무래도 구조의 한계가 뚜렷하니까 캔틸레버나 큰 공간을 만드는 설계는 힘들고 창의 제한도 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박: 디테일에 대한 한계는 없었습니까? 왜냐하면 일반 목조의 경우 기성품에서 벗어나게 되면 훨씬 비싸지는 문제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민: 모듈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 한계가 유연성이 생기도록 지금 같이하는 시공업체가 해결해주었습니다. 처음 할 때는 무조건 모듈에 맞춰야 하는 제약이 많아서 도면 싹 다시 그린적도 있었는데 이번에 이 업체를 만나니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해주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이전의 업체가 일본에서 수입한 재료들을 쓰기 위해서 일부러 힘들게 그걸 맞추도록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잘 모르니까 그렇게 해야 하나보다 해서 했는데, 입찰을 하면서 바뀐 시공사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다고 하는 바람에 좀 화가 났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이런 경험들을 하고 나니까 공부는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다음에는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어 시행착오고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박: 전체적이 중목구조의 시공 가격은 어떻습니까?


민: 비쌉니다. 비용을 따졌을 때 RC구조보다 10%이상 더 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지하를 만들어서 비용이 올라갔는데, 만약 지하를 안 파고 시공사를 잘 만난다고 했을 때는 워낙 공기가 짧기 때문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박: 규모에 대한 한계는 어떻습니까?


민: 지금 유럽에서는 30층짜리도 짓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일본에 견학 가서 본 것이 슬라브를 집성목 30cm정도로 만들어 놨는데 방화에 대한 부분만 해결하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

박: 공사기간도 그렇고 금액도 그렇고 규모도 그렇고 젊은 건축가들이 그런 조건에 있다 보니까 경량 목구조를 많이 씁니다. 다만 형태나 부재 사이즈가 한계가 있다 보니까 좀 아쉬운 부분들이 있긴 한데 또 공기는 굉장히 빨라서 그 아쉬운 부분들이 어느 정도 상쇄되는 것 같습니다.


민: 맞습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목조 주택도 기둥 세우는데 3시간, 골조는 이틀 만에 다했습니다. 일본에서 다 만들어 넘버링까지 해서 가져오니까 조립식으로 착착 쌓으면 정말 시공 속도가 빠릅니다. 저는 사실 규모가 작은 주택에서는 중목 구조를 많이 추천하고 싶기도 합니다. RC구조와는 달리 집안에 은은하게 나무냄새도 나고 구조의 노출도 어느 정도 있고 하다 보니까 좋은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의 원칙

박: 저는 작업을 하다 보니 무엇을 해야겠다 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건축주의 이해 조건과 민우식소장님이 생각하는 것의 괴리에 의해 트러블이 있다거나 이런 경험은 있으십니까? 혹시 그런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은 있습니까?


민: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박창현 소장님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일단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법적인 것에 대해서는 원천봉쇄를 하는 편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의외로 먼저 불법을 먼저 권장하시는 분들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재료를 3가지 이상 쓰는 것에 대해서는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내부와 외부를 통틀어서요. 형태가 복잡한 것은 상관없는데 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저의 기준으로는 참을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일을 거절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건축주가 원래 인테리어를 하시던 분이었는데 저에게 이런 형태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구체적인 입면까지 그려 오셨습니다. 그렇게 가져온 그림을 프로의 솜씨로 재해석해서 건물을 지어달라고 하셨는데 처음에 진행을 조금 시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평면이나 이런 부분은 협의가 잘 되었는데 입면에서 도저히 제가 제안한 것들을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원한 것은 거의 모든 입면에 재료가 다다르고 입면에만 들어간 재료가 총 5~6가지는 되었는데 제가 도저히 진행을 못 시킬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박: 민소장님이 해왔던 작업과 그 사람의 성향이 많이 다른 경우인 것 같은데 저희 같은 경우에도 그런 상황이 되면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편입니다.


민: 저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는데 또 말을 할 때는 직접적으로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주가 이 부분만 양보하면 제가 온 힘을 다해서 해드릴 수 있는데 그 부분을 설득하지 못하면 저는 그 작품에 애정이 식어서 제대로 노력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특히 외부의 재료도 그렇지만 내부의 재료에 대해서는 백색이 아닌 다른 재료가 들어가는 것은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빛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 건축의 그룹핑과 미래

박: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을 가만히 보면 일정한 성향이나 공통점이 눈에 보이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가에 따라서 일을 하는 기간에 영향을 미쳐 쉽게 지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한쪽을 보면 지금 와서 적극적으로 작업을 하거나 발표를 하거나 컨셉, 생각, 의지를 이야기하는 50~60대 건축가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현재 젊은 친구들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흐름이 눈에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민: 제 또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박: 네, 그나마 예전에 비해서는 인원이 많이 늘었다고 보여집니다.


민: 저 같은 경우에는 오지랖이 넓은 편은 아닌데 그렇다고 담 쌓고 사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인터넷으로 누가 어떤 작업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이 있는지는 확인은 하는 정도입니다. 예전에 우연히 어떤 사람의 블로그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의 대형사무소부터 중견 아뜰리에, 젊은 건축가들의 홈페이지를 다 모아 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또 막상 그렇게 모아 놓으니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들어가보게 되는데 그것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정말로 잘 몰랐던 사람들도 너무 많고 또 잘한다는 것입니다. 프로필들도 화려하고 또 젊기까지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겁도 좀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와이즈건축의 장영철소장님은 이런 것을 보시면서 이래야 건축이 살아나고 우수한 작업들이 나오고 이런 유토피아적인 상상을 하시는데, 저는 약간 시니컬한 편이라 내가 건축주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더 젊고 학교도 좋고 설계비가 조금이라도 더 싸고 또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라도 그 사람들에게 맡기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무리 짓는 상황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물론 과거에는 주류를 중심으로 그것이 더욱 심했는데, 그래도 요즘 들어 약해진 이유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봅니다. 세계적인 추세가 다원화되었잖아요. 어떤 주류가 없고 이것저것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추세가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가 느끼는 우리의 문화는 구분 짓기가 심합니다. 건축가끼리만 봐도 젊은 건축가와 그에 반대되는 나이든 건축가 이렇게 구분해서 우리는 새롭고 저쪽은 낡은 것처럼 취급을 한다든지 학연으로 똘똘 뭉친 그룹이 있다던지 하는 마치 내편 아니면 적이다 하는 극단적인 생각들이 건축에도 아직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전 그런 것이 너무 싫은데 말이죠.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해 좀 더 자유롭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박: 제가 인터뷰를 하는 이유 중에서도 그런 이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와 지금 함께 건축을 해 나가는 주변 사람들이 누가 있고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생각을 들여다보고자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민감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가 주체적인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무엇인가에 의해 자기 주변에 그룹이 형성되는 경향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런 모임이나 그룹핑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더 다양하고 많은 그룹핑이 있으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그 중에서는 교집합에 속하는 건축가들도 있을 것이고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건축가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민: 저는 대단한 건축가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주변의 평가보다는 제 자신의 만족을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특별히 제가 이루고 싶은 현실적인 목표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사실상 가업인데 지금 40년이 넘게 하고 계십니다. 언젠가는 그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만 체급이 너무 달라서 (웃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혈연관계여서 물려받는 안일한 계승이 아니라, 충분한 실력과 업적을 제 나름대로 쌓아서 자연스럽게 대등한 관계로 협업을 했으면 하는 것이 아주 구체적인 제 목표이자 꿈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건축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분야까지 토탈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버님이 오랫동안 하고 계신 가업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너무 거창한 것 같네요.)

박: 좋은 선례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어져 나간다면 앞으로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 나눠서 좋습니다. 앞으로의 ‘민워크샵’의 작업들과 생각들에 대해 기대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2015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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